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Jan 03. 2023

아이라는 숲

주옥같이 풀어낸 내 마음속 이야기.

올해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이진민 작가의 <아이라는 숲>이다. 처음에 이민진 작가와 헷갈려서 파친코의 작가가 이런 책도 썼나 했는데, 이진민 작가라는,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고 브런치 작가이기도 하며 브런치 대상 수상작가 이기도 하다. 몰라 뵈어서 죄송.


 아이를 키우며 육아 서적 중에 완독 한 책은 거의 없다. 오은영 박사의 책도 한 권 사다 둔 것이 있는데 목차를 쭉 보고 중간중간 챕터를 읽다 말다 하였다. 육아서적은 무언가 부담스럽다. 라면 하나 겨우 끓일 줄 아는 사람에게 7첩 반상은 어려우니 5첩 반상으로 차려내는 걸로 봐주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의 하루하루도 버거운데 아이의 앞일까지 도모해 줘야 할 것 같은 이야기에 금세 기가 죽고 말기도 하며 그런 게 반복되다 보면 지금 처한 나의 상황에 대한 원망에 나의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가는 책들이 많았다. 내가 운이 없게도 그런 책들만 고른 건진 몰라도. 이유식에 관한 책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계량과 시간 조절, 불 조절에 약한 사람이라 이유식 레시피를 보아도 그대로 나오지 않았다. 갖가지 재료를 레시피 대로 준비해 따라 하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아 집 앞 도서관에서 빌린 이유식 만들기 책 몇 권도 몇 번 들추다가 미련 없이 반납을 했다. 엄마표 공부도 마찬가지. 인별에 나오는 책 육아 하시는 분들, 엄마표 영어를 하시는 분들처럼 몇 시간씩 체계적으로 읽어주고 들려주고 노출해 주지 못한다. 무슨 무슨 맘의 무슨 공부법이 유명하다고 하는데도 한두 번 들추어 봤을 뿐, 뭔가 나랑은 생각의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 집에는 뽀로로 장난감부터 클래식 레고까지 전 연령의 유아기 장난감이 섞여 있고, 책장엔, 달님 안녕 등의 유아책부터 초등학교 1학년을 위한 책 몇 권까지 정신없이 꽂혀있다. 아! 내 책 포함. 마구 뒤섞인 채. 우리집은 인스타에서 볼 법한 책육아, 엄마표 영어와는 그림이 너무 다르다. 나는 내 식대로 아이를 공부시키긴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내 방식이었고, 이유도 큰 건 없다. 아직은 사교육비를 조금 아껴보고 싶은 마음이고, 아이에게 엄마랑 공부를 빨리 끝내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주고 싶었으며, 아직은 내 머리와 성질이 아이와 공부를 할 만 하기에 그냥 내 식대로 시작했다. 아이와 공부를 하면 내가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볼 때가 있는건 일종의 보너스. 돌아보면 아무도 6세에 그림일기를 시작하지 않았고, 7세에 영어 라이팅을 하지 않았다. 영어 노출의 기본 순서라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어찌 보면 정 반대로 가고 있는 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사실 잘 모르겠을 때가 많다.


 그러다 브런치를 통해 이진민 작가를 알게 되었고 아이라는 숲이란 책을 구매해 읽었다. 철학하는 엄마라 그런지 인문학적, 철학적 지식이 매우 풍부한 문장이 조금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읽기 쉽게 쓰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려운 건 무식한 내 탓, 책의 문장들은 하나하나 버릴 것이 없이 나의 생각과 결을 함께 했다. 읽는 내내 나의 육아를 지지하는 사람이 저 멀리 어딘 가에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도 하였다.


공부는 왜 할까? 공부는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고 생각의 힘을 키워 성숙한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근육이란 게 하루 이틀 잠깐 운동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생각의 근육도 마찬가지이다. 근육이 생기려면 내 능력보다 조금 벅찬 무게를 들어야 하는 것도 우리는 안다. 공부를 한다고 앉아서 계속 쉬운 것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각의 근육이 생길 수가 없다. 공부가 괴로운 건 그래서다. 늘 조금 벅차야 하기에. 나는 아이를 키우느라 그간 키웠던 생각의 근육을 많이 잃었다. 조금이라도 다시 회복하려면 엄청난 근육통을 앓아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애초에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 구절에서는 아이에게 약간 어려운, 그러나 해 낼 수 있는 과제를 주는 내 못된 엄마 심보가 어루만져졌다. 내가 아이를 공부시키는 건, 방방거리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남자아이를 앉아 있게 하는 것이고, 주어진 과제를 조금 어려워도 끝까지 해 내는 기쁨을 알게 하려는 것인데 내 마음을 유려한 문장으로 유식한 표현으로 완벽하게 풀어준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


나는 친구 같은 엄마라는 표현에도 살짝 반대한다. 엄마는 너희 말고 그냥 엄마의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들은 내가 종종 들러서 그 속에 편히 들어앉아 있을 수 있는 대나무 숲과 같은 존재라면 아이들은 내가 매일 가꿔야 할 꽃밭이기 때문에. 나는 내 아이들이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홀가분하게 나를 떠나기를 바란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다. 신이 모두를 챙길 수 없어서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데, 나는 모두에게 엄마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세상에 친구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랑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가서 좀 쉬라고.


나는 아직도 두 아이를 양팔에 끼고 잔다. 첫째는 내 팔을 베고 자는데 나를 하나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 폭 안겨 잔다. 둘째는 안겨서 자다가 엄마는 너무 딱딱하다며 이제 그만 베개를 끌어안겠다며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커다란 쿠션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하지만 두 녀석 모두 내가 몸을 한 번만 뒤척이면 닿는 지근거리에서 잠을 자고 내가 어쩌다 화장실을 가느라 일어나는 기척이 있으면 같이 일어나 앉아 있다가 내가 돌아와 누우면 같이 누워 다시 잠든다. 다 큰 어린이들의 잠자리 분리도 아직 못 한 나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홀가분하게 나를 떠나기를 바란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잠자리는 곧 알아서 분리될 것임을 안다. 지금은 내 손을 놓고 산책을 가다가도 몇 걸음 못 가 다시 돌아와 손을 잡고 걷지만, 그 손도 곧 놓게 될 것임을 안다. 아이들이라는 꽃밭을 내 뜻대로 가꿀 수 있는 시간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마지막으로 가지 치고, 거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곧 아이들의 꽃밭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줄기를 뻗어 나갈 것임을 안다. 엄마는 그저 비빌 언덕으로 존재하고, 친구라는 존재와 함께 이 세상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 우리 아이들이 누구를 만나더라도 행복한 친구와 사귀었으면 좋겠는 건 내 욕심인가, 사실 소액이지만 기적으로 기부를 하고 후원을 하며 기도를 하는 것도 조금은 이기적인 이런 마음 에서이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친구가 많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이쯤 되면 나도 어지간한 고슴도치이다. 돌아 돌아 결국은 내 새끼만 생각하니 말이다.


책 표지에 떡 하니 부모를 위한 12가지 철학 수업이라고 쓰여 있어 내용이 조금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모두가 주옥같은 문장들이었다. 내 마음을 훤히 읽고 대신 써 준 것 같은 느낌도 들어 감사하기도 하다. 환경 교육, 경제 교육, 성교육, 놀이 교육등 내가 언급한 것 외에도 부모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들을 진지하게, 그러나 이해하기 쉽게 다루어 주었다. 노로 바이러스로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읽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읽기를 참 잘했다. 배탈이 나서 누워 있을 시간이 있어 이 책도 읽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올해의 첫 책. <아이라는 숲>


#아이라는숲

#이진민작가




매거진의 이전글 긴긴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