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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5. 2022

돌아돌아 돈까스

돌아버릴 만큼 질린, 딴 거 한번 먹어보려다가 결국엔 돌아돌아 돈까스.


무려 옥돔 미역국이란다. 졸지말고 다 먹으렴 아가야.


돌아돌아 돈까스를 저녁으로 먹었다. 정말 진심으로 다른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가고 싶은 순대국 집에는 아이들이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고, 생태탕, 아구찜 집에도 딱히 아이들을 위한 음식은 계란찜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있다가 없다가 해서 애들은 눈치 보며 김 싸먹거나, 집에와서 김 싸먹거나 할 판 이니 뭐 먹을까 뭐 먹을까 딴거 한 번 먹 어보려다가 결국엔 돌아돌아 돈까스를 먹었다. 밖에서 돈 주고 돈까스 외식은 진심으로 지겹고 돈이 아깝다. 집에 거의 언제나 돈까스가 냉장고에 있다. 냉동으로 산 거든, 튀긴걸 사다가 냉동으로 얼린거든, 내가 만들어서 냉동해 둔거든. 거의 밑반찬 수준으로 김치 냉장고 처럼 돈까스 전용 냉장고가 있어도 무방하겠다 싶을 정도로. 사실 치킨까스도 있는데, 우리집 아이들에게는 그냥 다 돈까스이다.


매운걸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해 떡볶이를 무려 2종이나 했다. 짜장밥, 파스타도 도 역시나 단골 메뉴.


아이들과 밥을 먹는 일은 상당히 단조롭고 지겹다. 나도 자극적인 음식 정말 좋아하던 20대 여성이었지만 임신, 출산, 육아를 반복하며 입맛은 놀라울 만큼 순해졌다. 나이가 들어서 이기도 하지만, 밀가루와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정말 소화가 안된다. 옛날처럼 과식에 과음을 하면 최소 이틀은 굶어야 하니 이제 밤문화, 야식, 과식 이런걸 점점 못 해지는 그런 인생의 내리막을 시작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면요리, 계란요리, 고기 부침.


오늘의 저녁, 돌아돌아 돈까스. 돈까스 먹기도 돌겠고, 결정적으로 거의 여름방학 3주에 육박하는 삼시'새끼'들에 질릴만큼 질렸다. 맥도날드 두 번의 외식 빼고는 (해피밀 장난감 때문에) 외식도, 배달도 하지 않은 3주간의 식사기록은 정말이지 너무 지겹다. 단순히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아침먹으면서 점심 뭐먹지, 점심 먹으면서 저녁 뭐먹지 하는 생각은 정말 내가 이렇게 본능적으로 먹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까지 한 생활이었다.


내 샌드위치에만 치즈가 두장이란다. 이런게 바로 요리하는 자의 특권!!!! 이렇게 라도 정신승리ㅠㅠㅠ


아이들과 시간도 때울 겸, 만들면서 먹으면서 조금 더 수월 하게 먹일 겸 쿠킹 시간도 자주 갖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할 만하게 준비 해 주고, 아이들이 깨작대도록 앞접시며 쿠킹 도구들을 더 넉넉히 준비 하고, 저지레한 부분들을 치우다 보면 에너지는 더욱 더 고갈된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뭐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더 힘들기에 내가 그래도 해 줄 수 있는 쿠킹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하는 편이다. 엄마는 머시마들 데리고도 잘 한다고 하는데 그냥 아이들이면 아이들이지 굳이 왜 머시마들 이라고 하는지,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엄마. 자기 밥은 자기가 해먹는데 머시마가 어디 따로 있겠어.


지손 지싼, 지싼 지먹. 즐거운 시간.


제일 힘든 부분은 메뉴 선정, 장 보기, 요리 하기, 치우기, 다음 요리 생각 하기, 입맛에 맞게 맞춰 드리기 등등이지만  모든 것들이 후추 사용도 조심 스러울 만큼 매운 것을 조심해야 하는 맵찔이 아이들을 위한 요리 여야 하는 부분이다. 일단 고추장 빠진다. 제육, 떡볶이, 진미채 볶음, 멸치 볶음, 어묵 볶음이 모두 간장 베이스여야 한다.맛이 어째 다 비슷하다. 후추도 안 된다. 농심 멸치 칼국수와 사리곰탕도 후추 때문에 매워 해서 사리면에 멸치육수, 치킨 스톡으로 간을 하여 간단한 건조 야채 토핑을 얹어 홈메이드로 끓여준다. 치킨스톡 조미료의 맛으로 시판 라면 못지않은 맛이 난다.


만두 만들기, 준비가 번거롭지만 애들이 좋아한다.


외식은 거의 항상 가던 집만 가야 한다. 우동, 프라이드 치킨, 칼국수 등도 처음 가는 식당에 가면 육수 베이스에 고추씨가 들어가 맵게 서빙되는 곳이 생각보다 많다. 돈쓰고, 음식 남기고, 집에와서 다시 계란 밥이나 김을 싸서 먹여야 한다. 애들이 깨작대며 물만 켜니, 나도 편하게 먹을 수가 없어 외식이나 배달도 먹는 것만 먹어야하니 먹기가 질려서 정말 지겹다. 돈까스, 프라이드 치킨이 지겹다고? 이젠 짜장면이 맛이 없다고? 배부른 소리 작작 해라 소리가 여기까지 나오지만 정말이다. 이렇게 7년을 살고 있으니, 나도 이제 먹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다. 캡슐 하나 먹고 싶다. 오죽하면 뉴케어 환자식을 알아보았을까. 그거 하나 먹으면 내 밥은 안 챙겨도 될까 싶어서 말이다. 나의 엄마가 알면 기절 할 일이지만, 지난 번에도 말 했둣 나는 애들 밥 먹이고 내 밥도 따로 준비해 먹고 치우는 것이 더 힘들고 서러운 사람이다. 다행인 것은 남편은 그냥 주는 대로 먹는 편이라는 것.


아이들과 먹기 시작 한 후로는 김치도 짜고, 라면도 짜다. 입맛이 예민해 지고 순해졌다. 외식이나 배달음식이 위장에 상당히 부담을 준다는 것을 인지 한 후로는 배달과 외식도 조심스러워 지니 정말 지겹도록 집밥을 먹게 되는데 아. 진짜 지겹다.


찜닭에 떡사리, 중국 당면이 들어어요. 얼마 받으면 될까요


오죽 하면 오늘은 돌아돌아 돈까스란 말을 했을까. 먹기도 돌겠고, 차리기도 돌겠고, 딴 거 한 번 먹으려고 돌고 돌다가 결국엔 돈까스를 집에서 차려 먹었다. 유일한 위안은 외식비가 상당부분 세이브 되었다는 것. 나의 인건비는 무시했을 원가만 계산한 거긴 하지만 말이다. 


애 엄마들은 안다. 왜 아구찜 집에서 돈까스를 파는지, 부대찌개 집에 함박 스테이크가 있고, 추어탕 집에 오무라이스가 있는지. 돈까스 안 파는 순대국 집은 도통 가기가 힘든 곳이고, 어린이 메뉴가 없는 아구찜 집은 발도 못 들인다. 이것 저것 많은 뷔페? 애들은 우동 한 그릇 먹고 나면 배부르다고 집에가자 하는데? 게다가 나는 이제 뷔페를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신기하게 날계란 찍어먹는 불고기를 좋아한다.


아침 먹으며 점심 뭐먹지, 점심 먹으며 저녁은 뭐 먹지, 저녁 먹으며 내일은 뭐먹지를 걱정하는 내가 한심 스럽다가도 안쓰럽다가도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며 끼니 걱정에 있어서는 아무 생각도 없는 남편에게 화딱지가 나는 동시에 고맙기도 하다는 걸. 도움도 안 되지만 투정도 안 한다.


오늘은 돌아돌아 돈까스로 저녁을 먹으며 조금은 서글펐다. 정말 외식을 하고 싶었는데, 짜장면 스파게티는 먹기가 싫었고, 돈까스는 죽어도 먹기가 싫었고, 가고 싶은 식당엔 애들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고, 애들 돈까스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서 우리 먹을 배달 어플을 찾아보는데 배달료며 음식값이 그새 또 오른 것 같아 그냥 포기 하고 같이 돈까스를 먹었다. 기분을 내려 샐러드 셋팅도 하고 오뚜기 옥수수 스프도 끓여 내었다. 유일한 위안은 톡톡 뿌린 후추, 아그들아 너희는 못 먹지. 매운 후춧가루 말이야.


돌아돌아 돈까스. 그래도 예쁘게 차려냈다. 이 정도면 훌륭.


얼마전 페이스 북이 알려주는 과거의 오늘에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가 쭉 적혀있었다. 무려 스물 아홉살쯤 작성 한 글. 거기에는 너구리에 청량고추, 고춧가루, 후춧가루 추가 금지라고 되어 있더라.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려 쓴 다짐이었다.  그 나는 지금의 나와 동일 인물이 맞는지, 한참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나는 총량 불변의 법칙을 믿는 편인데 평생 먹는 자극적인 음식의 양에도 총량이 있나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 한다. 아이들은 나를 닮아 작고 말랐고, 그것에 대한 부채감이 항상 있다. 그래도 너흰 나보다 잔병치레는 안 하니 효자다.


돌아돌아 돈까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내가 식당을 차리면 이름을 돌아돌아 돈까스집을 지을 거다. 맛있는 으른 음식에 퀄리티 좋은 돈까스를 아이들 몫으로 소량 서빙 할 예정이다. 돌아돌아 돈까스집에 찾아오면 어른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이들에게 맞는 적당한 양의 퀄리티 좋은 돈까스를 내 놓고 싶다. 어른을 위한 음식으로는 애 낳고는 식당에서 맘 편히 사먹어 본 적이 손에 꼽는 곱창 전골, 아구찜, 낙지 볶음, 묵은지 김치찌개 이런 것들.


카레도 단골메뉴, 두시간 볶은 양파와 생크림이 들어가야 맵다 소리가 안 나온다.

길고 긴 여름방학 3주간의 부엌데기 노릇에 지쳐 오늘 밤에는 밥 얘기가 술술 나온다.   


내일은 뭐 먹지?


식단 좀 공유해 주세요. 안 매운걸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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