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손이 참 예쁘다.
아이들과 손바닥 쿠키로 네일아트 놀이를 했다. 손바닥 발바닥 모양으로 쿠키를 구워 초코펜으로 매니큐어를 칠하고 스프링클과 펄슈가로 장식을 했다. 손가락 몇 개에 반지도 끼워주었다. 이렇게 밀대로 밀어서 굽는 쿠키는 두께가 균일해야 하는데 홈베이커는 솜씨가 부족하여 두께도 제각각, 그러다 보니 구움색도 제각각이다. 상관 없다. 우리 손도 다 다르게 생겼으니, 그리고 나는 그냥 집에서 먹는 간식을 만드는 홈베이커이니 말이다. 아이들한테 말해주었다. 얘들아. 손가락에는 지문이라는게 있어. 우리 얼굴 모양이 다른 것처럼 지문 모양이 다 달라. 그러자 큰아이가 대답한다. 알아. 그래서 지난번에 경찰아저씨한테 가서 지문등록 했잖아. 엄마 잃어버리면 찾을 수 있게. 그리고는 덧붙인다. 얼룩말도 얼룩무늬가 다 달라. 지문처럼. 우리 얼굴처럼.
그래 너 잘났다 이 놈아.
나는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한다. 그것도 벌써 25년이 되었다. (뭐 만하면 25년,30년 이다. 올해 나이 서른 아홉) .특별히 배운 적이 있거나 전공한 것은 전혀 아니고, 그냥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성당엔 언제나 반주자가 부족하니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내가 처음 겁도 없이 미사 반주를 해 보겠다고 나섰을 때 서울 베네딕도 수녀회에 계시는 우리 큰 이모 수녀님께서 수녀원으로 나를 부르셨다. 아무나 막 하는거 아니라고, 한번 배우라고 말이다. 그 수녀원에는 몇 십년동안 오르간을 담당해서 치시는 할머니 수녀님이 계셨는데 그 수녀님한테 한번 배우라 하셨다. 얼마나 영광스런 기회인가. 나는 수녀님 앞에서 연주할 가톨릭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를 연습해서 수녀원으로 갔다. 우리집에서 수녀원을 가려면 한남대교를 건너야 한다. 할머니 수녀님은 내 옆에 앉으셔서 내가 치는 주여 임하소서를 가만히 들으셨다. 아마 엉망진창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오르간 주법은 거의 모르면서 치지만 그때는 더 미숙했을 시절이니 말이다. 마지막 소절이 끝나고 수녀님을 바라보았는데 수녀님께서 딱 한 말씀 하시더라. 손이 너무 예쁘다. 그게 끝.
나는 그렇게 손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남대교를 건너서 집으로 왔다. 어떤 가르침도 없었고 아무 지적도 받지 않은 채로 그렇게 그 다음주일부터 미사 반주에 투입되어 그 이후로 꾸준히, 한결같이 삑사리를 내며 반주를 한다. 나는 성당에 가면 일반 신자석 보다 오르간 앞, 피아노 앞이 더 익숙하다. 거기에 앉아야 비로소 내 자리에 앉은 것 같다.
가끔 그 손이 너무 예쁘다 란 말이 생각난다. 만약에 그때, 이것 저것 너무 많이 배워야 했다면, 이렇게 하는건 틀린 거라고 지적을 받았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오르간 반주를 하고 있을까. 그 한 말씀은 25년동안 혼자 연습하고, 코드도 독학하고 복음을 읽으며 가장 어울리는 묵상 성가를 찾아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잘 치고 못 치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나는 손이 예쁘다. 그거면 됐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손이 너무 예쁘다 라는 말을 했어야 할 때가 많이 있다. 즉, 그냥 지금 이대로, 틀려도 괜찮다고, 그냥 너 이면 된다고 하지 못 할 때가 많다. 그냥 손이 너무 예쁘다 한 것 처럼, 그대로 봐 주기만 하면 알아서 자랄 아이들인데 언제나 쫓아다니며 지금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잔소리를 바락바락 하고, 일기에 너무너무 열받았다고 써 놓고는 며칠 후엔 뭐 때문에 그렇게 열을 냈는지 기억을 못한다.
아이들과 손바닥 쿠키를 만들며, 손이 너무 예쁘다를 여러 번 생각 했다. 여러가지 초코펜을 놓아주며 마음대로 칠하라고, 스프링클과 펄 슈가를 내어 주며 마음대로 꾸며보라고, 우와 정말 멋지고 예쁜손을 만들었다고 그렇게 말해주며 함께 놀다가 초코가 다 굳은 후 하나씩 골라 뜯어 먹었다.
유민아, 니 손 참 예쁘다. 그치? 난 반지도 꼈어.
유진아, 니 손도 참 예쁘다. 응. 난 초코렛 많이 발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