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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07. 2023

큰별쌤의 강연을 듣다.

마흔에도 칭찬 받으니 너무 좋아요.

 나의 한국사 능력시험 1급 합격에 가장 큰 도움을 주신 최태성 선생님의 강연이 집 근처에서 있어서 다녀왔다. 차로 30분 거리, 영원한 초보운전인 나에게는 난이도가 높은 운전거리 였지만 발발 떨며 그래도 꿋꿋하게 다녀왔으니 선생님은 여러 방면에서 제자를 크게 하신다.


강연의 큰 주제는 자녀교육이었고 작은 주제로 김득신이라는 조선시대의 인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득신은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 아빠는 경상도 관찰사, 즉 지금의 경상도지사쯤 되는 빵빵한 양반집안이었는데 머리가 영 좋지 않았다. 글씨를 못 배우고 아이가 영 우둔하니 집안 어른들은 이 아이를 퇴출시키고 양자를 들이자고까지 하셨다는데 아빠가 어른들 앞에 납작 엎드려 책임지고 가르칠 테니 그것만은 말아달라고 싹싹 빌었다고 한다. 내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 더구나 머리가 안 좋은 아들을 머리가 좋은 아빠가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서로에게 울화통 터지고 상처받는 일이었을까. 그렇게 십 년을 가르쳐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겨우 글을 한 편 써냈고, 어린아이 수준만도 못 한 글을 보며, 드디어 글을 한 편 지었구나, 이렇게 쓰고 쓰고 또 쓰면 언젠간 될 것이니 계속 쓰거라, 네가 예순이 될 때까지 내가 가르쳐주마 했다는 아버지라니, 그 얘기를 칭찬으로 알아듣고 호로록 시험을 보러 가서 낙방에 낙방을 거듭했던 아들이라니. 그렇게 그 김득신 이란 인물은 읽고 읽고 읽고, 쓰고 쓰고 쓰며 서른아홉에 초시에 합격, 쉰아홉에 대과에 합격하여 사또 같은 관직을 몇 년 하다가 은퇴하였다고 한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재주가 부족하거든 한 가지에 정성을 쏟으라. 이것저것 해서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죽을 때 이런 비문을 스스로 남겼다. 천재 시인은 아니어도 그 와중에 시 쓰는 재주가 있었고 고통 속에 한 글자 한 글자 뽑아가며 쓴 시가 그래도 훌륭했다 한다. 그리고 300년 후 우리는 이것저것 잘했던 아무개들이 아닌 김득신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이 김득신의 꾸준함에 대한 이야기와, 사실 공부도 타고나는 재능이 큰데 그것만 너무 정답인 듯 몰아가면 아이들이 아파질 거라는 이야기, 선생님이 고3 담임을 할 때에 공부 잘했던 애들은 따로 불러 칭찬을 해 준 적이 많지만, 다른 걸 잘했던 아이들은 칭찬해 준 적이 별로 없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게 지금도 미안하다는 이야기, 공부 잘했던 놈, 못 했던 놈 다들 지금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시며 막연한 불안감으로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강연의 전반적인 주제였다.


 내가 생각하기엔 사실 김득신이란 인물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양반 집안덕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집안이었다면 아이가 공부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었을 것이고, 알았다 하더라도 공부엔 영 재능이 없으니 노동을 하며 한평생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예순이 다 되도록 과거공부만 하고 책을 읽으며 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신분제도 불합리함의 끝판왕이 아니었을까. 그런 빵빵한 집안에도 김득신 같이 조금 모자란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인간적이었고, 머리 나쁘다고 아이를 집안에서 퇴출시키자는 말까지 나온 것 보면 양반가의 체면치레가 어느 정도로 비인간적이었나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공부 공부 하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안 되는 사람은 예순 살까지 해야 한다는.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강연이 끝나고는 선생님께서 원하는 참석자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사진을 찍어 주시고 간단한 인사와 말씀을 나누어 주셨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지만 모두들 한가득 사연을 안고 합격증을 내밀고, 저서를 내밀며 사인을 받고 선생님과 따뜻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니,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았다.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1급 합격증과 <역사의 쓸모>에 사인을 받았으며 나의 브런치 글에 댓글을 달아 주신 분이 선생님 본인이 맞다는 확인을 받았고 글을 잘 쓴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기분이 참 좋았다. 나이 마흔에도 칭찬받으니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이 칭찬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공부 할 필요 없다는 강연을 듣고 와서 아이에게 평소에 하듯 공부를 시켰다. 영어를 조금 하고, 간단한 연산을 열 문제 정도 풀고 말이다. 신문을 보니 챗 GPT라고 또 한 번 인공지능이 진화한 모양이다. 우리 엄마 아빠와 내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 거라는 생각이 더 굳건히 든다. 그럼에도 나는 내 식대로 공부를 시키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다가도 10분 15분 잠깐 엉덩이 붙이는 연습 하는 건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엄청난 강의를 듣고 와서도 달라짐 없이 하루를 마감하였다. 나란 인간, 나란 엄마. 참 ㅡ


좋은 강의, 좋은 시간, 감사합니다. 선생님.


너의 때가 온다. -박노해-

너는 작은 솔씨 하나지만
네 안에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들어있다.

너는 작은 도토리알이지만
네 안에는 우람한 참나무가 들어있다.

너는 작은 보리 한 줌이지만
네 안에는 푸른 보리밭이 숨 쉬고 있다.

너는 지금 작지만
너는 이미 크다

너는 지금 모르지만
너의 때가 오고있다.


#최태성

#큰별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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