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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14. 2023

<일타 스캔들>

드라마를 기다리는 일주일이라니.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재밌게 보고 있다.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으면 완결된 후 몰아보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본방 사수를, 하루 후 넷플릭스 시청을 하고 있으니 찔끔찔끔 보는 맛이 감질난다. 아직 종영 전이지만, 드라마의 인물과 스토리가 매우 탄탄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보면서도 나를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지 않아서 좋다. 어떤 드라마들은 (예를 들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같은), 폐부를 찌르는 대사에, 너무도 절절한 인물의 감정에 보는 내가 너무 슬프고 아파서 시청이 힘든 경우도 있는데 이 드라마는 그렇지가 않다.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에 스릴러 양념이 뿌려졌달까, 드라마 전개를 보며 한국 드라마의 성장을 느끼기도 한다. 옛날 같았음, 남주의 파트너로 어린 제자가 엮이고도 남았을 텐데, 이젠 무려 연상의 학부모라니. 옛날의 청춘 드라마와 본부장님, 실장님이 나오던 신데렐라 드라마를 생각하면 상상도 어려운 파격의 전개이다.


 드라마의 두 주인공이 내가 아는 배우들이라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이다. 벌써 20년 전, 대한민국을 휩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최윤을 기억한다. 그때도 병약미 넘치던 최윤역에 정경호 배우였다. 전도연 배우도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절절한 여주인공이 바로 그녀였으니, 내가 내 인생 로맨스의 주인공이던 시절, 로맨스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두 남녀 배우가 20년 후에도 로맨스의 남녀 배우로 대 활약한다는 것은 아주 반갑고도 기쁘고 왠지 위로가 되는 일이다. 나에게는.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이런저런 촉촉한 감정도, 부드러운 감정도, 빛나는 피부도 다 사라진 마흔이 되었지만, 나와 같은 시절을 보낸 티브이 속 저 배우들이 아직도 옛날의 설렘을 보여주니, 나도 덩달아 설렌다. 옛날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대중문화,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나의 감상은 소외감이었다. 당연하다. 그것들과 가까울 틈이 없으니 나와 요즘세상의 틈이 점점 벌어졌다. 특히 대중음악이 그러한데, 우리 엄마가 HOT와 젝스키스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사춘기 소녀는, 이제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들이 다 똑같아 보이는, 노래도 다 똑같은 노래처럼 들리는 아이 엄마가 된 것이다. 작정을 하고 들어보려 유튜브에서 최신 가요를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기도 하는데 노래는 흐르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왜 요즘 노래는 다 똑같지, 옛날엔 목소리도, 스타일도, 장르도 다양한 가수들이 동시대에 활동했는데 요즘은 왜 다 똑같은 애들만 나오는 것 같지.이다. 실제로 90년대가 다양하긴 했다. 언젠가 90년대 연말 가요대전 차트를 본 적이 있는데, 김정수, 서태지, 신승훈, 룰라, 김정민, 이소라, 김건모, HOT, 핑클로 매년 다양한 개성의 가수들이 차트를 휩쓴 걸 보고는 90년대를 살았음에 감사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티브이를 안 봐서 그런지 차트 1위 하는 노래들, 가수들을 도통 모른다. 티브이를 봐도 재미가 없으니 끄게 된다. 가끔 요즘 아이돌들이 옛날 노래 = 내가 청소년일 때 노래들을 리메이크해서 부르곤 하는데 그러면 그 영상은 조금 찾아서 본다. 옛날 생각을 하면서, 옛날에 핑클이 나미 노래를 리메이크했었는데, 요즘과 나의 학창 시절의 거리감이 그때 내가 느꼈던 핑클과 나미의 거리감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얼마큼 옛날 사람이 되었나 체감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봐도 내가 아는 배우가 누구 하나는 있어야 보게 된다. 요즘 처음 나오는 배우들은 얼굴이 익숙지가 않아 얼굴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내가 시지각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지 사람 얼굴이나, 만화 캐릭터를 구별하고 익히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어서 그렇기도 한 모양이다. 아마 <일타 스캔들>을 종영 전에 보기 시작 한 이유도 두 주연배우가 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컸을 것이다. 나는 이토록 과거의 향수에 젖어 산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빠르게 트렌드가 변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대중문화의 진도를 따라잡기가 힘들고도 힘든 일, 그러니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몇 년 전 나훈아 콘서트가 우리나라를 뒤흔든 적이 있었다. 나훈아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들은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충 노래들은 다 들어보았지만, 완창을 들은 적이 없고 대부분 개그맨들의 패러디로 들은 것이 전부였는데 그 콘서트를 보는 마음은 감동 그 자체였다. 노래를 정말 잘하신다. 나훈아 콘서트에서 오빠를 외치던 우리 윗세대들이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돌 1세대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대에 느꼈을 소외감을 생각해 보았다. 티브이를 틀어도 아는 노래가 나오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는 죄다 젊은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던 시대, 여배우가 스캔들만 나도 로맨스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시대에 우리 엄마들은 무슨 위로를 받았을까. 물론 아침드라마와 일일 연속극이라는 장르가 있긴 했지만 그 장르 특성의 한계는 분명 있었기 때문에. 대중문화의 주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소외감이 분명 있었을 것 같다. 나는 감히 상상조차 안 된다.



<일타 스캔들>의 열혈 시청자이다. 내가 열혈 시청하는 드라마가 화제성 1위에 유튜브에 메이킹 영상도 인기가 좋은 걸 보니 내가 기분이 좋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드라마 보는 재미에 내 나이, 나의 시절, 우리 세대에 대한 위로도 받는 것 같고 대한민국 로맨스 드라마의 스펙트럼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는 기쁨이기도 하다. 끝까지 잘 됐으면 좋겠다. 드라마를 기다리는 일주일이라니,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일타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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