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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Feb 08. 2023

꼬리를 무는 집밥.

초록불에서 열일하며 빨간불을 기다립니다.  

설 연휴가 지나고 명절 음식들을 이리저리 돌려 먹으며 한동안 새 반찬을 만들지 않는, 마치 정지 신호에 멈춰 선 듯한 집밥 빨간 신호등기간을 보냈다. 냉장고에 있는 거 데워 먹고, 냉동실에 있는 거 녹여 먹고 가공식품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고, 여기저기서 얻어먹고 사 먹고, 시켜 먹고 말이다. 집밥에도 권태기가 있어 이렇게 손을 한 번 놓게 되면 계속하기가 싫다. 그렇게 냉장고가 점점 비어 가고, 재료가 없을 때가 많으니 당장 요리를 하려고 해도 뭐가 마땅치가 않아 집밥 휴식기는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냉장고가 제대로 텅텅 비어 버리면 큰 장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또 집밥에 초록 신호가 들어온다. 열심히 열심히 만들어서 쭉쭉 나가야 재료들이 무르기 전에 다 소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집밥 메뉴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 번 장을 본 것으로 또 요리조리돌려 먹어야 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장을 봐서 소진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많이 사야 싸고, 많이 사야 무료 배송이고, 세일하니 담아 보고, 궁금해서 신상도 한 번 담으면, 장바구니와 냉장고는 그렇게 가득 또 채워진다. 그렇게 재료로 가득 찬 냉장고를 보면서 또 한숨을 쉬는 건 무슨 심보인지, 저거 다 해 먹는 건 또 내 몫이니 말이다. 


채소의 꼬리 물기.

 

일단 채소가 많으니 볶음밥으로 시작한다. 채소를 썰며 채친 당근은 따로 담아 두고 김밥을 쌀 때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채소는 잘게 다져 볶는다. 채소를 듬뿍 볶으며 한 접시를 빼놓았고 나머지로 굴소스 볶음밥을 만들어 한 끼 해결. 그리고 남겨둔 다진 채소 볶음을 돼지고기 다짐육에 섞어서 떡갈비처럼 구워볼까 하다가 유통기한이 간당간당 하는 스트링 치즈를 넣고 볼카츠를 만들었다. 동그랑땡이랑 거의 비슷한데 동그랑땡은 잘 안 먹으면서 이렇게 튀김옷 입고 기름에 들어갔다 나온 볼카츠는 잘 먹는다. 그 다음엔 토종닭을 한 마리 푹 고았다. 아이들은 백숙을 잘 먹는데 신랑이 물에 빠진 닭은 또 먹지 않아 항상 고기가 남는다. 잘게 찢은 닭고기와 남은 채소들을 넣고 토마토 카레를 만들어 먹었다. 토마토 카레 위에는 지난번에 먹은 볼카츠가 토핑으로 올라갔다. 브로콜리며 파프리카를 숭덩숭덩 썰어 에어프라이어에 그냥 구워도 맛이 좋다. 볼카츠 주위로 구운 채소를 올려 주니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그리고 남은 닭고기 살과 백숙 국물로 닭죽을 끓여 냉장고에,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한동안 아침식사로 유용하게 쓰일 예정. 


닭고기의 꼬리물기, 토마토 카레와 닭죽.

냉장고를 채우다 보니 의도치 않게 달걀이 80개가 생겨버렸다. 내가 두 판을 묶음으로 샀는데 시어머니께서 동물복지 유정란 스무 알을 또 챙겨 주신 것이다. 고기보다 계란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가끔씩 최고급 달걀을 사서 갖다 주신다. 달걀 80알. 일단 열개를 꺼내 삶아서 여섯 개는 달걀 샐러드를 만들고 네 개는 삶은 달걀로 먹는다. 절반씩 잘라 카레 위에도 올려 주고, 아침에 과일과 함께 주기도 하고, 하원 후에 간식으로 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계란을 좋아하니 내가 부지런히 뭐를 해 주기만 하면 달걀 80알도 금방 소진이 될 것이다. 일고 여덟 개 정도로 자투리 채소와 함께 계란말이로 만들어주면 또 잘 먹을 것인데, 머핀을 구워줘도 잘 먹을 것인데, 귀찮도다, 귀찮도다. 


달걀의 꼬리물기, 카레 토핑, 댤걀 샐러드.

요즘 한참 집밥이 그린라이트이다. 쭉쭉 뻗어 나가야지 속도를 줄이거나 뭉그적 거리면 뒤에서 빵빵 대며 짜증을 낼 것이다. 얼른 그린라이트를 보내고 황색 신호를 받아 속도를 줄이며 냉장고 파먹기를 마무리한 후 빨간 등 앞에서 또 잠깐 휴식기를 가져야겠다. 지금 냉장고 상태를 보아하니 한 두 번 정도만 불 앞에서 푸닥거리를 하면 불 쓰는 일은 덜 할 수 있는 노란 불이 들어올 것이고, 조금 더 있으면 냉장고에 있는 거 데워먹고 냉동실에 있는 것 꺼내어 녹여 먹는 일만 하면 되는 정지신호를 받아 조금 편해 질 수 있을 것. 조금만 더 힘내 보기로 한다. 


애초에 장을 적게 보면 되는데, 매일 조금만 사서 그날그날 끝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그래도 있는데도 계속 사서 냉장고가 토할 듯이 쟁이진 않으니, 그게 어디냐.    


채소를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 그냥 굽기만 해도 맛있습니다. 냉털할 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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