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야 미안해.
딸기가 제철이다. 제철? 언제부터 딸기가 겨울이 제철이었는진 모르겠지만 11월부터 장바구니 가격을 올리는데 한몫을 한 언제나 비싸고, 언제나 맛있는 딸기의 제철. 겨울. 딸기는 과일의 특성상 잘 무르고 상하고 신선도를 유지하기 힘드니 가격이 비싼 것이 당연한지 모르겠다. 또 그 특성 때문에 언제나 포장이 꼼꼼하다. 딸기를 한 번 먹을 때마다 플라스틱 팩 하나, 스티로폼 박스 하나, 아니면 자줏빛 다라이가 한 개, 혹은 두 개씩은 나오니 딸기 가격에 플라스틱 포장 값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옛날에는 딸기를 어떻게 사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산 적이 없고 엄마가 사다가 씻어준 딸기만 먹어서 그럴 것이다. 다만 20년 전쯤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적에 딸기를 사 먹었던 기억은 있다. 내가 아마 시장에서 딸기를 산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황사가 기승을 부리는 봄이었는데 중국에서 딸기는 매우 싼 가격에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과일이었고, 원하는 양만큼 그냥 비닐봉지에 담아서 사 왔던 기억이 있다. 품종이 다른 까닭인지 중국에서 먹었던 딸기는 우리나라 딸기처럼 탱글탱글하지 않고 잘 물렀다. 달콤하긴 했지만 그날 사 와서 그날 먹지 않으면 형태보전이 힘들 정도로 물러버리니 판매자도 빨리, 싸게 팔아 버리는 게 이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 봄 한철을 딸기 귀신처럼 매일매일 딸기를 한 근씩 사다가 씻어서 먹는 호사를 누리곤 했다. 딸기 한 봉지를 나 혼자 먹는 것. 지금 아이를 둘 키우면서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하는 호사이다.
딸기가 봄 과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옛날 말이 되었고 요즘은 11월부터 마트에 모습을 드러내고, 비쌀 때 먹는 비싼 딸기가 제일 맛있고 봄에 먹는 딸기일수록 맛도 향도 감흥도 떨어지는 것이 요즘 딸기의 마법이다. 이번 겨울에도 딸기를 자주 먹었다. 시댁에서 많이 사주시기도 하고, 내가 사 주기도 하고, 선물로 받기도 하고 말이다. 애들이 둘이니 내가 먹은 딸기는 몇 알 되지 않지만, 딸기는 언제나 맛있다. 맛있는 만큼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바로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다른 과일, 사과나 배, 레드향 같은 과일들은 가정용 흠과를 많이 주문하는 편이다. 어차피 집에서 먹을 것이니 약간의 흠이 있는 과일을 사도 상관이 없고, 가격도 싸니 부담이 없어 좋고, 또 포장이 과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딸기는 가정용 흠과가 없이 다 상품들이다. 가끔 신선도가 조금 떨어진 딸기를 세일하는 경우나 한정 특가로 싸게 파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딸기를 사 먹으려면 플라스틱 포장재를 피할 수가 없으니, 올 겨울 내가 사 먹은 딸기의 플라스틱 포장으로 지구가 또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또, 다 하우스 재배 딸기라 하니, 이 한 겨울에 딸기를 먹겠다고 비닐하우스를 따뜻하게 해 놓으며 에너지를 쓰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도 든다. 언제부터 딸기가 겨울딸기가 되었을까, 옛날엔 딸기를 어떻게 사 먹었지?
오늘도 다라 딸기를 먹었다. 딸기 알이 크고 맛있었다. 위아래로 다라이가 덮여 있었으니 플라스틱 쓰레기 두개가 나왔다. 맛있는 딸기를 먹는 값 치고는 너무 과하다는 죄책감이 든다. 나름 플라스틱 쓰레기를 적게 내놓으려고 배달음식도 자제하고, 택배도 자제하고, 집 앞에서 서는 장터에는 그릇을 들고나가 장을 봐 오기도 하는데 그런 노력들이 딸기 한 두 번 사 먹는 걸로 다 도루묵이 되는 느낌도 든다. 저탄소 어쩌고 하면서 아보카도나 바나나, 체리 같은 수입 과일들, 커피 원두를 근심스럽게 바라보기도 하고, 이산화 탄소 어쩌고 하면서 육식 말고 채식을 동경하기도 하는데 딸기를 이렇게 먹어도 되나.
아이들이 자라며 우리 집에는 기저귀 쓰레기는 줄었지만 여전히 플라스틱 장난감이 많다. 정리, 비우기라 하지만 사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엄청나게 가지고 있고, 버리고 있고, 앞으로도 버릴 예정이다. 애들한테 장난감 쓰레기에 관련한 잔소리를 엄청 하는 편인데 딸기 먹고 나온 플라스틱 쓰리게 앞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딸기가 뭐 길래.
맛있는 딸기를 플라스틱 없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