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식사예요.
매일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차린다. 신랑은 본디 아침에 뭘 먹는 시간에 잠을 한 숨 더 자고 일어나자마자 씻기만 하고 나가버리는 사람이라 평일엔 아이들의 아침식사만 챙긴다. 애들은 아침에 밥을 먹지 않는다. 밥은 점심이나 저녁에 먹는 것이고 아침엔 아침을 먹어야 한다나, 아침은 가끔 죽을 먹기는 하는데 빵이나 시리얼등의 밀가루 간식류, 군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구황작물, 아니면 과일종류들을 더 선호한다. 시리얼은 너무 과자 같은 느낌이라 빵이랑 과일, 아니면 과일이랑 과일로 챙겨주려 하는 편, 모자란 단백질을 채우려고 계란, 치즈를 곁들이려 한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딸기잼 바를 때 치즈 한 장 끼워 넣기, 계란 샐러드를 만들어 두었다가 샌드위치로 만들어주기, 가끔씩 맘이 동하거나 시간이 있을 때는 토스트를 만들어 주는데 따뜻한 팬에서 나온 토스트를 확실히 맛있게 먹고 가는 걸 보면 갓 구운 맛이 좋은 건 명절 음식이나 양식 토스트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빵 쪼가리,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은 밥심인데 빵으로 때워서야 힘이 나겠냐는 말이다. 밥심이라는 말도 샅샅이 해부해 보아햐 하는 말이다. 그냥 밥이 아니다. 갖가지 나물을 손질해 데쳐 무친 것이 무려 사이드 디쉬로 나오는, 온갖 재료와 정성과 힘과 노하우가 응집된 김치가 맛있게 발효까지 되어 역시 사이드 디쉬로 깔리는, 거기에 조미료나 혹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푹 우려낸 육수에 또 갖가지 재료를 넣어 끓인 국물이 염도나 건더기의 양에 따라 밥그릇 옆이나(국) 앞에(찌개) 놓이고 메인으로 고기나 생선, 계란, 햄 등의 반찬이 정 가운데에 놓이는 그런 한 상을 우리는 밥이라고 부르고 그걸 먹고 내는 힘을 밥심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밥상에 익숙하고 그런 밥상은 영양적으로도 완벽하며 한식 한 상의 특성상 가족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게 되니 정서적으로도 훌륭한 교감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갓 지은, 따뜻한 밥심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다. 차리는 사람에게는.
외국의 아침식사를 본 적이 있다. 서양에서는 시리얼과 간단한 과일에 따뜻한 음식으로는 토스터에 구운 식빵이나 계란 프라이, 베이컨구이 등이 한 접시에 오른다. 유럽의 호스텔에서도 사람들이 그렇게 먹었고 미국 이모집에 놀러 갔을 때 미국 이모도 그렇게 드셨으니 일반적이라고 해도 비약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나 대만, 홍콩에서는 주로 아침을 밖에서 사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 먹는 아침메뉴는 주로 튀기거나 기름에 지진 밀가루 빵 종류가 많았다. 남녀 모두 일 하는 경우가 많고, 출근시간은 이른 편이며, 부엌이 좁은 집이 많고, 또 그쪽 나라 요리의 특성상 기름에 지지고 볶고 해야 하니 집에서 하는 것보다는 사 먹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고 들었다. 나의 뇌피셜, 홍콩이나 대만 같은 경우는 날씨가 더우니 집에서 지지고 볶는 요리를 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 외식 문화가 더 발달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불 앞에서 여름에 요리를 해 보니 백 번 이해 가는 일이다. 여하튼 아침부터 길거리에서 파는 저 튀김 빵이 입에 들어가나 싶은데 먹어보면 엄청 맛있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아침은 먹거나 말거나 그날그날 달랐었는데 먹는 것보다는 주로 잠을 더 자는 걸 선택했던 것 같고 아침을 먹어도 엄마가 김에 싸준 밥 몇 개 아니면 계란밥을 한 숟갈 후다닥 먹고 학교로 튀어 갔지 그득히 차려진 밥상 앞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한 기억은 없다. 외국 사람이 보았다면 저런 밥 덩어리를 먹고 무슨 힘이 나서 공부를 하나, 사람이 자고로 빵심이, 기름심이 있어야지라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빵 떨어질 일 없는 살림을 꾸리고 있다. 너무 달고 짠 빵들 보다는 기본 빵, 식빵이나 모닝빵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활동량이 많으니 칼로리와 영양소를 조금이라도 더 높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이다. 프렌치토스트에는 계란을 풀고 생크림을 섞어 넣어 더 부드럽고 고칼로리로 만든다. 계란 토스트에는 식빵에 잼을 듬뿍 바르고 계란 프라이에 치즈를 흐르도록 듬뿍 올려 준다. 샌드위치용 계란 샐러드나 고구마샐러드, 감자 샐러드를 만들 때에도 마요네즈를 아낌없이 넣으며 레몬즙을 살짝 넣어 느끼하지 않게 더 많이 먹도록 노력한다. 그냥 딸기잼만 발라 먹이기도 한다. 그럴 때도 잼을 듬뿍, 치즈 한 장을 욱여넣고 그릭 요거트 하나라도 떠 먹인다.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며 그놈의 탄단지는 무슨 귀신처럼 나를 옭아맨다. 탄단지 탄단지. 우유를 잘 안 먹으니 요거트라도, 계란이 여의치 않을 때는 치즈 한 장이라도 말이다. 그 와중에도 소시지나 베이컨은 자제하는 편이다. 너무 과한 지방과 식품 첨가물, 염분에 입맛을 들일까 봐 걱정이 되는 까닭이다.
이 정도인데 빵 쪼가리라고 하면 좀 그렇다. 나는 밥심과 퓨전음식의 낀 세대이다. 엄마가 차려주는 한식으로 밥을 먹고 크며 자연스레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등의 외국 요리를 받아들여서 이것저것 다 익숙한 세대. 햄버거 피자가 맛있고 된장찌개는 맛이 없다 한다고 어른들께 걱정을 끼쳤던 아이들이 커서 (늙어서) 순대국밥, 김치찌개를 찾아 먹는 세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빵 먹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야지 하는 말을 들어도 때 되면 알아서 찾아 먹겠지요,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맛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밥만 먹고 살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나요?라고 반문 할 수도 있고 말이다.
빵 쪼가리에 대한 고민을 왜 하냐 하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유치원에서 주던 오전 간식을 먹지 못하게 되니, 아침으로 밥을 먹이는 버릇을 들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결론은 내가 주는 빵을 빵 쪼가리라고 폄훼하지 말자는 것 하나, 나는 아침부터 한식 한 상을 차려 낼 수 없다는 것 하나, 그리고 밥에 김 싸 먹는 거나, 계란밥 한 숟갈이나 토스트나 샌드위치가 영양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것 하나이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먹는 대로, 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먹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