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리폼이 가능해요.
명절 연휴는 끝났고 음식은 남았다. 전을 조금 부친다고 부쳤는데 꼬치전은 완판 했지만, 생선전이 남았다.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생선전 재료인 동태포를 사 본 적이 없는데 아파트 알뜰장에 들어온 생선가게 아저씨가 동태포를 파시길래 두 팩을 사 버린 것이다. 생선포를 처음 사 봐서 양을 가늠하지 못했다. 생선회처럼 위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포장을 열어보니 랩 아래 예쁘게 담긴 동태포 밑으로도 크고 작은 동태포들이 가득이었다. 이럴 줄 몰랐다. 이걸 두 팩이나 사서 몽땅 해동해 버렸으니.
여기저기 나누어 먹고, 명절 내내 틈틈이 먹었지만 명절이 지나고도 한 접시 정도 남은 생선전. 냉동을 시켜도 되고, 김치찌개에 넣어 먹어도 되지만 둘 다 별로 땡기지 않는다. 냉동을 시킨 전은 잘 꺼내 먹어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김치찌개도 나는 전 찌개보다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더 좋단 말이다!
그러던 차에 생선전을 열심히 부치는 옆에 와서 둘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난번에 치킨까스 만드는 거랑 똑같은데 빵가루만 없네! 하던 녀석의 말. 아하! 밀가루 계란을 묻혀 부친 전이니 여기에 밀, 계, 빵을 한 번 더해 튀기면 생선까스가 되겠구나. 그래, 남은 전아 까스가 되어라.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치킨까스 일부를 해동했다. 튀기는 김에 같이 튀기려고 말이다. 생선전을 꺼내어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입혀두고 치킨까스를 튀겨 낸 후 생선까스를 투입하였다. 생선이 다 익은 상태이니 겉에 빵가루만 익힐 정도로 금방 튀겨 낼 수 있다. 이렇게 빵가루 묻힌 까스종류는 빵가루가 기름에 흩어져서 기름이 지저분해지니 가정에서는 많이 튀겨내기가 힘들다. 빵가루가 고온의 기름에 오래 있으면 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튀김가게처럼 튀김기름을 많이 넣고 튀기지도 않고 적당히 넣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튀기는 편이라 빵가루들을 건져내기도 여의치 않아 적당량, 떨어져 나간 빵가루가 까맣게 타기 전까지만 튀김질이 가능하다. 그만큼이 딱 우리 식구 한번 먹고 한 두 조각 남아서 샌드위치 해 먹을 정도의 양인데 생선까스는 튀김옷만 익히면 되는 거라 추가로 더 튀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먹을 것에 초연한 첫째는 전이든 튀김이든 기름냄새를 맡으면서도 제 할 일을 한다. 제 할 일 = 종이접기. 둘째는 부엌을 왔다 갔다 거리며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킁킁거리는데 기름 튄다고 저리 가란 말 밖에 해 줄 수가 없어서 미안했다. 너의 아이디어로, 아니 너의 지나가는 한 마디로 우리 집 최초의 생선까스가 만들어지는 중이란다. 아가야.
생선까스, 치킨까스로 모둠까스정식이 완성되었다. 첫째는 먹으면서도 이게 생선까스인지 치킨까스인지도 모르고 먹는다. 이거나 저거나 먹으면 됐지, 먹는 것엔 영 관심이 없다는 뜻. 둘째는 이리저리 살피며 치킨, 생선 번갈아 가며 먹는다. 생선전일땐 꼬치전에 밀려 그닥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전이 까스가 되니 경쟁력이 쑥 올라간다. 치킨과 겨루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명절 음식이 지겹다고들 한다. 명절 음식이 지겨운 게 아니라 같은 음식을 계속 먹으니 지겹다는 뜻이다. 명절 음식은 맛있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 속이 느글거린다고 한다. 이 것 역시 똑같은 음식을 계속 먹어 느글거린다는 뜻임이 이번 생선까스로 밝혀졌다. 기름에 튀긴 맛은 그 어떤 맛보다 상위에 있다. 생선전일 때보다 더 고칼로리가 되고 더 기름진 음식이 되었는데도 맛있다. 빵가루가 바삭바삭 하니 기름진 느낌을 잡아줘서 그런가. 아니면 타르타르소스, 새콤함을 가장한 초 고칼로리로 기름진 것 따위를 눌러버려 그런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명절이 지나면 남은 명절 음식 처리법, 골치 아픈 명절 음식 이런 기사가 종종 보인다. 나는 그 기사 제목이 영 싫다. 얼마나 정성껏 힘들게 만든 음식들인데 처리, 골치 아픈, 이런 수식어를 쓴 단 말인가. 적당히 만들어 맛있게 감사히 먹고, 남았다면 리폼하기, 정도면 가능하지, 처리라든지 골치 아프다든지 이런 말은 우리끼리는 해도 기사로는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하튼, 전이 까스가 되니 또 새롭게 맛이 있었다. 같은 선상에서 동그랑땡도 밀계빵을 묻혀 튀겨버리면 볼카츠가 되지 않을까. 이번엔 동그랑땡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굳이 명절에 동그랑땡을 내 손으로 만들까 싶긴 하지만 전을 까스로 만들어 튀겨버리는 건, 참 좋은 생각이었다.
아이디어의 씨앗을 던진 둘째 녀석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