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된 맛 중에 제일을 꼽으라면 매운맛이다. 매운 라면에 고춧가루, 후춧가루를 추가해서 먹던 시절, 엽기적으로 맵다는 떡볶이 정도는 먹어야 매운 거라는 아가씨 시절의 매운맛과는 결이 달라졌다. 미세한 후추나 마늘의 맛도 맵다고 울어버리는 아이들을 키우니 나의 매운맛 레이더도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해졌다. 물론 튀김우동, 사리곰탕 매워하는 아이들 덕에 그냥 사골 국물에 라면 사리를 끓여 주기도 하고 순한 맛 카레는 달달 볶은 양파 듬뿍, 생크림을 휘휘 둘러 매운맛을 빼 주기도 한다. 시켜 먹는 치킨도 후라이드로 한정이 되는데, 닭고기 자체의 염지를 매워해서 브랜드를 가려서 시켜야 한다. 더 황당한 건, 지점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 진짜다. 치킨을 시켜 먹으려면, 아니 먹이려면 특정 브랜드의 치킨만 특정 지점에서 주문해야 한다. 다른 지점에서 치킨을 시켰더니 아이들이 맵다고 물배를 채웠다. 이런.
사정이 이러다 보니 닭고기 요리를 집에서 해 먹게 되었다. 치킨 너겟을 튀겨 줄 때도 있지만, 기름 부어 튀기는 게 귀찮다 보니,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도 된다지만, 그건 영 뻣뻣해서 맛이 없다) 닭다리 살을 구매해서 집에서 염지하여 요리해 준다. 순살치킨은 대부분 브라질 산 닭고기를 쓰던데, 집에서 만들면 국내산 닭으로 그것도 닭다리 만으로 만들어진 엄마표 치킨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닭다리 살을 기호에 맞게 간을 해서 하룻밤 정도 재운다. 우리 집은 마늘 가루와 소금, 약간의 후추, 월계수 잎녹인 버터 약간을 사용하는 편인데 우유에 담가도 되고, 고춧가루나 간장을 사용해도 된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닭다리 살을 한입 크기로 썰어 주기도 하고, 정말 시판 치킨처럼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빠글빠글 튀겨 주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그냥 밀가루를 살짝만 입혀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준다. 처음엔 껍질 부분이 밑으로 가게 해서 절반정도 구운 뒤, 뒤집어서 껍질이 바삭하게 익도록 한번 더 굽는다. 이게 바로 껍질도 맛있는 우리 집 엄마표 치킨, 나는 치킨 중에서도 껍질을 선호하는 닭 껍질파인데 큰 아이가 나랑 입맛이 겹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신랑은 껍질을 벗겨 나에게 주고, 나는 살을 발라 신랑에게 주는 사이좋은 부부였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선호하는 부위가 겹쳐 내가 껍질을 아이에게 양보하는 일이 종종 생겨버렸다. 건강에 좋진 않다지만, 가끔 먹는 닭껍질정도야 맛으로 재미로 기쁨으로 추억으로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한국의 음식은 후라이드 치킨 말고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매운맛의 지뢰밭이다. 분식집 우동도, 길거리 꼬치어묵도, 칼국수도, 된장국도, 볶음밥, 볶음 국수도 아는 집 아니고서는 선뜻 사 먹기가 어렵다. 청양고추의 칼칼함을 고추기름의 향미를 이 정도로 기본 감칠맛으로 삼고 살아왔는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맛있다고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우동하고 어묵, 후라이드 치킨 같은 건 매우면 맵다고 써놔야 하지 않느냐고 열변을 토하는 나다. 가끔씩은 아이들에게 너희는 언제 매운 걸 먹을 거냐고 성질을 부리기도 하는 어리둥절한 엄마이기도 하고 말이다.
멋모르고 시켜 먹은 후라이드 치킨의 매운맛으로, 그런 후라이드 유감으로 시작된 엄마표 치킨이지만 아이들이 잘 먹고, 보다 건강하게, 푸짐하게, 무엇보다 언제나 안 맵게 먹을 수 있어서 나는 기꺼이 닭다리살을 요리한다. 아무리 배달 치킨이 맛있어도 자주 먹긴 부담되고 질리던데, 엄마표 치킨을 먹으니 더 가끔씩만 먹을 수 있게 된 배달 치킨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 덤으로 얻는 행복이라 하겠다. 가끔씩 배달 치킨을 먹으면 정말 맛있다. 반반 치킨을 시켜 양념치킨까지 먹는 날은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오븐에서 갓 꺼낸 닭고기 냄새, 버터의 풍미가 더해진 그 냄새를 맡으면 또 집에서 해 먹을 수 있어 행복하기도 하다. 이래서 치느님, 치느님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