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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Mar 26. 2023

탕후루를 만들며

다양한 맛과 멋을 즐기는 문화가 되기를

 아이들과 탕후루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딸기를 꼬치에 꽂기만 했고 내가 설탕 시럽을 만들어 발라서 얼렸다. 야시장이나 번화가, 놀이동산에 가면 탕후루 파는 곳을 종종 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가 꼬치에 꽂혀 떡 하니 진열되어 있으니 언제나 단골로 사 달라 소리가 나오는 길거리 간식이다. 밖에서 사 먹는 탕후루는 비싸기도 비싸지만 아이들이 먹기가 쉽지가 않다. 일단 딱딱하게 얼은 채로 나오고 차갑게 굳었던 설탕 시럽이 입술과 얼굴에 닿으면 끈적끈적 지저분해지기 일쑤인데 더 이상 영유아의 보호자가 아니라 내 가방에는 물티슈가 없을 때가 많으니 밖에서 사 먹다가 뒤처리가 곤란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마침 딸기가 마감 세일, 두팩에 오천 원 하길래 데려왔다. 한 팩을 씻으며 탕후루를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한다.


 내가 탕후루를 처음 본 것은 2000년대 초반 북경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였는데 딸기를 비롯한 각종 과일들이 꼬치에 꽂혀 진열되어 있었고 한 번인가 사 먹어 본 적이 있긴 한데 내 입맛엔 별로였다. 나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어떤 가공을 거친 과일보다는 생과일을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가. 혹은 그때 사 먹은 탕후루가 우리가 먹는 종류의 딸기가 아니라 다른 종류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한 번 먹어보고는 다시는 손이 가지 않았던 탕후루가 어느 날부터 한국에서도 보이기 시작하더니 애들 등쌀에 사 먹어보니 심지어 맛있다. 먹기가 좀 나쁠 뿐. 내 입맛이 변한 건지, 탕후루가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길거리에서 아들들 손에 탕후루를 하나씩 쥐어 주느니 세일하는 딸기를 사다가 집에서 함께 만들어 볼 만큼, 나도 탕후루도 변했다.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식생활, 식문화를 즐기며 살고 있다. 나 어릴 땐 구경도 못 해봤던 식재료를 흔히 접하기도 하고 외식으로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던 메뉴들을 일상으로 접하기도 한다. 집밥도 많이 변했다. 집집이 다른 장 맛으로 엄마 손 맛으로 먹던 반찬의 맛이 시중 소스의 맛으로, 일정 수준 획일화되더니 이젠 밀키트로 상향 평준화 되기도 하였다. 수입 소스의 대중화 유튜브에 넘처나는 정보들로 다양성까지 잡았다. 집에서, 밖에서 이탈리아의 맛, 중국의 맛, 일본의 맛을 접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렵지가 않다. 얼마큼 로컬인지, 어느 정도 현지화 되었는지, 그에 따른 호불호가 갈릴뿐, 내가 북경 어학연수를 마치며 한국 가면 이 중국 음식들을 못 먹어서 어쩌냐고 칭다오 맥주에 마라 훠궈, 양꼬치를 먹으며 슬퍼했는데 지금, 양꼬치엔 칭다오, 마라탕은 배달음식으로도 즐길 수 있어졌다.


가끔씩 한국식 된장찌개 대신에 돈지루를 끓인다. 일본식 미소 된장찌개이다. 삼겹살에 각종 채소들을 썰어 넣어 미소된장에 끓인 찌개와 조림 사이의 음식인데 각종 영양소를 골고루 먹을 수 있고 고기도 부드럽고 국물도 진해 아이들이 잘 먹는다. 한국의 된장찌개는 칼칼해야 제 맛이라 아이들과 칼칼함을 빼고 먹기엔 언제나 2프로 아쉬웠는데 돈지루를 먹을 땐 그런 아쉬움이 없는 것이 좋다. 정통 일본 요리랑은 얼마큼 차이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애들도, 나도, 신랑도 잘 먹으니 가끔씩 돈지루도 괜찮다. 앤쵸비를 구매해 앤쵸비 파스타를 만들기도 한다. 멸치와 비슷한 정어리를 갖다가 파스타를 먹다니, 멸치볶음이나 멸치 육수로 낸 국수만 먹고 자란 나로서는 신박한 요리이지만 아이들에겐 오일파스타의 한 종류로 그냥 익숙하게 먹는다. 이탈리아 정통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다양한 음식을 접하며 집 밥 먹는 재미를 높인 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먹는다”는 행위의 목적이며 모습이 나 어릴 때 와는 또 달라진 느낌이 든다. 그냥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재미, 문화를 찾는 모습은 무척 반갑고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먹는 행위 그 자체, 대식, 더 큰 포만, 자극만을 추구하는 콘텐츠는 조금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콘텐츠의 결과로는 더 큰 자극을 추구하여 건강을 해치게 되거나, 허탈함, 자괴감이 남을 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밥을 국에 말아 훌훌 먹는 남편과 함께 산다. 왜 그렇게 빨리 먹느냐는 물음에 밖에서보다 훨씬 천천히 먹는 거라 대답을 하는 그를 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 이 사람은 밖에서 식사를 할 때는 음식을 그냥 몸에 넣고 있구나. 보통은 국밥, 짬뽕밥 종류를 먹는 것 같고 나이가 드니 국밥 맛을 알겠다고도 한다. 나는 아이들과 탕후루를 만든다. 딸기로도 만들고, 오렌지로도 만든다. 색감이 예쁘고, 시원하고 달콤하니 아이들은 좋아한다. 꼬치에 꽂는 것도 그게 뭐라고 재미있어한다. 아직 국밥 맛을 모르는, 어린이들이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 나이 마흔이 되고, 바깥일을 하게 되고, 바깥 밥을 더 많이 먹게 되면 국밥 맛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밥을 먹어도 훌훌 말아서 몸에 넣는 아저씨가 아닌, 천천히 이야기하며 먹는 아저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탕후루를 만들며 재잘재잘 깔깔 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음식의 맛과 멋, 조화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그런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맛있는 것들이 많은데 왜 아저씨들은 소중한 점심을 국밥만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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