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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pr 02. 2023

특별한 케이크 이야기

사랑이 밥 먹여준다. 

 아이들과 3년째 부활절이 되면 양케이크를 만든다. 외국에서는 부활절이면 양케이크나 토끼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낯선 광경이긴 하다. 예전에 친정엄마께서 호두파이 가게를 하셨는데 그때 부활절이면 수녀원에 선물하시던 것을 내가 도와드리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양 케이크 틀은 미국 직구로 쉽게 살 수 있었고, 유튜브에서 Easter lamb cake를 검색하면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전문 베이커들의 영상도 있지만 할머니들이 가정에서 부활절을 기념하며 가족들과 케이크를 굽는 영상도 재미있다. 예전엔 버터를 휘핑하고 밀가루를 계량하여 직접 만든 반죽으로 케이크를 구웠지만 요즘은 파운드케이크 믹스를 쓴다고, 훨씬 싸고 편하고 맛있다고 하시는 외국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홈쇼핑에서 갈비탕 사 먹으니 집에서 끓이는 것보다 세상 편하고 맛있고 좋다고 하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여 재미있었다.


 양케이크 만들기와 달걀 꾸미기는 그렇게 우리 집 연간 행사이다. 내가 양을 몇 마리 구워 놓으면 아이들이 하얗게 칠을 하는데 첫 해에는 슈가파우더로 만든 아이싱을 발랐고, 두 번째 해에는 미니 마시멜로우를 붙여 더 뽀글뽀글하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하얀 달걀을 사서 삶은 후 흰색 크레파스를 그림을 그리고 식용 색소 물에 담그면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 부분만 빼고 염색이 된다. 무슨 대단한 마술이라도 되는 것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귀찮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연례행사로 준비해 줄 만하다. 부활절이니까. 


 우리 두 아들들은 아직 삶과 죽음, 부활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부활절이 다가오면 양케이크를 만들고, 계란을 꾸미고 선물을 하는 것은 알고 있다. 작년까지는 양가의 할머니들께 선물을 드리고 그리고 우리 집에서 양을 한 마리 잡아먹었는데 이번엔 조금 특별한 분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다. 성남의 안나의 집이라는 무료 급식소에서 30년째 사랑으로 밥을 해 주시는 김하종 신부님께로. 


Easter Lamb Cake Fail 이라고 실패작을 모아놓은 사진을 보니 나의 양케이크는 아주 준수하다.

 김하종 신부님은 친정 엄마와 오랜 지인이시다. 처음 한국에 오셔서 정착하시고, 평화의 집이라는 급식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함께 하셨다. 나도 초등학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한결같이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신다. 믹스커피 한잔을 내어 주시는 이탈리아 신부님. 오랜만에 찾아뵈었는데 맑은 눈빛과 밝은 미소는 변함이 없으시다. 다음 주 성주간과 부활절에 찾아뵈면 너무 바쁘실 것 같아 일주일 일찍 왔다고, 양케이크와 부활달걀을 선물로 드리니 잘 보관해 두었다가 부활절에 먹겠다고 기쁘게 받아 주신다. 아이들은 처음 뵙는 외국인 신부님이 낯선 모양이다. 웬일로 쑥스러움을 타며 얌전히 앉아 코코아를 마신다. 


안토니오, 아침 먹었어? 네. 점심 먹었어? 네. 대한민국에 아침도, 점심도 못 먹는 사람 많아. 그분들이 여기에 오셔서 식사를 하셔. 


아이들은 알 까, 그 말의 의미를. 나중에 너희가 더 크면 여기에 와서 조금 더 크면 와서 식사하러 오시는 분들께 인사드리고 간단한 일을 도울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베이킹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엄마가 가게를 하실 때 일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인데 정작 엄마가 나에게 베이킹을 권하거나 가르쳐 준 적은 없다. 너무 힘든 일이라고, 혹시라도 장사를 할 생각일랑은 말라고 반대하신 일이다. 엄마는 좋은 날, 좋은 분들께 선물하고 싶어서 배운 베이킹인데 뜻하지 않게 가게를 하시게 되어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따로 레시피도 남겨두지 않으신 엄마의 솜씨를 내가 꾸역꾸역 구현해 낸다. 유튜브며 블로그에 정보들이 넘쳐나니, 나는 거기에서 엄마의 맛을 기억해 가감하는 정도. 그래도 이런 양케이크 같은 것들은 흔치 않은 작품인데 이것까지 들고 나타나니 엄마도 좋아하시고, 선물로 받으시는 신부님께서도 반가워하셔서 보람된 작업이었다. 



 <부엌칼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나의 주방이야기를 쓰고 있다.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열심히 쓰고 있는 글들인데, 안나의 집을 방문하여 신부님을 뵙고 나니 안나의 집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부엌칼이 노래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으로 가득 찬 곳, 맑고 따뜻하신 신부님과 봉사자분들께 언제나 건강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린다.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신부님
모든 것이 헛될지라도, 우리의 삶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짧은 선물과도 같다. 사랑을 손에만 쥔 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은 짧고 금세 지나간다. 오늘도 나는 손에 쥔 사랑을 선물하면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품이 생긴다고 믿고 나아간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



https://brunch.co.kr/@niedlich-na/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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