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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pr 09. 2023

신랑의 상차림.

고마워요. 그런데. 


 가끔 남편이 식구들 식사를 챙긴다. 주로 내가 앓아누워 있을 때 그런다. 내가 누워있어도 군말 없이 뭐라도 해서 먹고 먹여주니 고마울 뿐이다. 나는 몸이 션찮아 자주 앓아눕는 편. 큰 병은 아니나 저혈압, 두통, 어지럼증으로 골골 대니 딱히 먹고 바를 약도 없고 그저 누워 쉬는 것만이 약인 공주병에 가까운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이것저것을 차려 먹인다. 누워 있는 아내에게 밥 달라 소리 하지 않고, 애들 시켜 엄마한테 밥 달라 소리 하게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 남편이 뭐 하려 할 때 절대 잔소리를 하여 그 의지를 꺾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이며, 오직 그 정성과 마음만을 굽어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일반론인데, 자꾸 잔소리가 나가려 해서 입틀막 하느라 조금 힘이 들었다. 


 지난번엔 에그 토스트를 해 준다며 스텐팬을 다 눌러 놓더니, 오늘은 설거지하며 보니 볶음밥을 만들며 코팅팬에 상처를 냈다. 그냥 계란밥이나 햄만 주어도 되는데 뭐라도 해 먹이고 싶은 이것이 바로 아빠의 마음? 오늘 그의 픽은 데친 낙지와 양파 볶음밥, 플레이팅이 귀엽다. 김을 잘라 올려 주었는데 애들이 김을 많이 찾아 나중엔 볶음밥을 김에 싸 먹었다. 라면이나 파스타, 계란밥, 햄구이 등도 아빠표 밥상의 단골 음식들인데 문제는 설거지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신랑은 우직하며 뭐든 잘 참는 성격이라 설거지가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한 자각도 불만도 없어, 보는 나만 답답하다. 밥을 신랑이 차렸으니 설거지라도 내가 해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저렇게 냄비 냄비 다 어지러 놓으면 내가 설거지를 해 주며 생색을 내기 쉽지가 않아서 그렇다. 속 좁은 아내. 


반찬을 두 개나 만들어 준 날, 아빠표 게맛살 볶음과 참치전. 


 그러다 보니 잔소리를 하면 안 된다는 국룰을 자꾸 어긴다. 예를 들면 원팬으로 끝낼 수 있는 간편 파스타도 면 삶는 냄비, 소스 넣어 볶는 냄비, 덜어 놓는 큰 그릇, 식구들 용 앞접시를 써 버리니 자꾸 듣기 싫은 잔소리가 나간다. 그래도 싫은 기색 없이 쿨한 그가 고맙다. 삼겹살 구워 먹고 가스레인지 주변 싱크대를 닦지 않았다고 신경질을 내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잘한다. 화낸 사람 민망하게, 하지만 다음에 또 그런다는 것이 문제. 그럼 또 화내고, 또 사과한다. 민망함과 미안함이 나의 몫이니 나는 항상 의문의 1패를 당하는 입장이다. 


 오늘도 몸져누운 나를 위해 아이들에게 데친 낙지로 낙지 볶음밥을 해 주었는데 어쩌다 그랬는지 싱크대 하부장을 물바다로 만들어 나의 잔소리를 잔뜩 들었다. 잠시 기가 죽어 미안하다 사과하는 그의 모습에 면구스러워진 나. 나라고 부엌살림을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꼭 잔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꼭 못된 사수 같아서 복잡한 심경이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열 살이 넘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엄마도 너희가 해 주는 밥을 먹을 거라고, 엄마는 주는 대로 먹을 테니 라면이든 계란밥이든 스파게티든 요리할 준비 하고 있으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때까지 정말 주는 대로 먹는 연습, 뒷정리까지 그 어떤 모습도 용인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요즘 내가 자주 몸져눕는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봄이 올 때, 해마다 이맘때쯤 유난히 몸이 힘든 날이 많은 것 같다. 약도 없는 저혈압 골골병, 신랑이 솜씨 발휘를 할 일도 그만큼 자주 생긴다. 나는 터져 나오는 잔소리를 잘 틀어막는다. 그러다가 한 번 터지면 끝도 없이 툴툴 거린다. 도대체가 중간이 없는 나도 문제, 그런데 도무지 늘지 않는 것 같은 신랑의 솜씨에도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 진다. 오늘, 신랑은 밥을 차려 먹이고 축구공을 가지고 애들과 공원에 나가 주었고 나는 집에서 싱크대 하부장을 닦고, 상처 난 코팅 팬을 정리했다. 


결론은, 고마워요 여보, 아프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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