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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pr 26. 2023

매운 음식 적응기

파프리카장에 고추장 반티스푼 

 닭다리 살을 한 팩 샀다. 닭다리 살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많다. 튀겨도 되고, 그냥 구워도 좋고, 양념에 볶아도 조려도 맛있다. 국내산 닭다리 살이라니, 웬만한 치킨집에서 먹는 순살 치킨은 대부분 브라질 산이라는 걸 알고 난 후로는 국내산 닭다리 살을 더 자주 구매한다. 


 이번 닭다리 살로는 닭갈비를 만들었다. 닭갈빗살이 아닌데 닭갈비라니, 이건 닭고기라는 비교적 저렴한 음식을 먹으며 갈비를 먹는 느낌을 받고 싶어 만들어낸 서민의 애환이 담긴 명명이라 한다. 갈비는 못 먹으니 닭고기로라도, 그래서 닭갈비, 춘천이 유명한 이유는 도계장이 많았기 때문에 닭고기 값이 무척 쌌기 때문이라는데 요즘은 어쩐지 닭갈비가 싼 음식은 아니다. 고기보단 고구마, 양배추가 많이 들어있고 이런저런 사리를 추가하여 먹고 치즈 볶음밥까지 먹으면 외식비 지출이 쑥 올라간다. 


그나마 그것도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닭갈비집에 딱 두 번 가봤는데 그것도 맵지 않은 닭갈비를 주문하여 장난꾸러기 녀석들이 뜨거운 철판을 만지기라도 할 세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먹었던 기억이다. 나는 빨간 양념이 좋은데,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 검은색 아니면 갈색이다. 언제 빨간 음식을 자유로이 먹을 수 있을까. (이런 가정을 위해 반반도 주문이 가능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닭갈비를 가끔 해 먹는다. 집에서는 빨간 양념을 쓴다. 하나도 안 매운 고추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 사실 고추장이 아니고 파프리카장이다. 고춧가루를 파프리카 가루로 대체하여 만든 안 매운 고추장, 아니 파프리카장인데 고추장에서 매운맛만 완전히 뺀 느낌으로 맛도 질감도 거의 고추장을 사용한 것과 비슷하다. 빨간 음식에 적응해야 하는 매운 것을 못 먹는 딱 우리 아이들 같은 유아들을 위한 양념장이라고 아이 키우는 집에서 구매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빨간 음식이라면 손도 대지 않는 아이들에게 맵지 않은 빨간 맛을 경험하게 해 주고 차차 일반 고추장을 섞어가며 매운맛에 적응을 시키는 것이다. 

 맵지 않은 파프리카장을 메인으로 하고 일반 고추장을 반 티스푼 정도 섞었다. 간장, 양파청,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을 털어 넣고 끓이며 중국 당면, 떡볶이 떡을 넣었더니 그럴듯한 닭갈비가 완성되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은 조금 맵지만 맛있다고 하는 아이들이다. 반 티스푼 들어간 고추장의 매운맛을 감지하다니, 아이들 그릇에 덜어서 주고 어른용으로는 채소와 사리를 조금 더 넣은 후 고춧가루와 후추를 더 넣어 준비한다. 음식 통일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직 분단 상황,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색깔이라도 같아졌으니. 아이용에서 어른용으로 넘어가는 조리 과정이 한결 수월해졌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에는 매운 것 못 먹으면 못 먹는 대로 안 매운 음식만 먹이는 것이 가능했다. 소싯적 매운 음식 좀 먹었던 나, 매운맛은 갈수록 매워지고, 속은 속대로 버리고, 매운 것 먹고 단 것 먹게 되니 몸에도 좋지 않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몸이 쇠해지니 스트레스가 더 잘 쌓이는 악순환을 경험한 나로서는 아이들이 매운 음식을 안 먹으면 속 병날 일 없고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학교 급식을 경험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집에서야 입맛대로 맞춰드리고, 외식도 뭐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찾아 먹으면 되는데 학교 급식은 그게 안되니 한국에서 급식을 먹으며 살려면 좋든 싫든 매운 음식을 먹어야 맨밥만 먹고 오는 일을 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네바다 주립 대학교의 학생식당을 보게 되었는데 학생 식당에 지역별, 대륙별 음식들은 물론 비건, 할랄음식까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국의 주립 대학교와 한국 동네 초등학교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지만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학생들을 배려한다는 점은 배울 만했다. 밥상에서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있다면 아마 밖에서도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고 말이다. 


 

사실 매운 음식에 약한 것은 식품 알레르기에 비하면 학교 급식에 적응하는 데에 아무것도 아닌 일일 것이다. 알레르기 있는 아이의 엄마들은 급식 먹는 시간에 핸드폰이 울리면 혹시 무슨 일이 있나 마음이 철렁한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직장인의 애환이 담긴 글을 읽은 적도 있다.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 오기도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난 떨고 예민하다는 인식이 있으니,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식사가 신경 쓰이고 긴장되는 일의 연속일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고추장 못 먹는 것쯤이야, 미안해서 말도 꺼내기 힘든 고민이다. 


 아이들과 닭갈비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 이렇게 생긴 음식 나오면 먹어보라고, 그러자 대번에 학교 반찬은 너무 맵다고 대답한다. 매우면 바로 밥을 입에 넣으면 덜 매워져. 그대로 다 버리면 너무 아까우니까 한 번이라도 먹어봐.라고 말하며 아이를 달랜다. 매운맛이 너무 괴로워서 울어버리는 아직 1학년은 급식 적응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굶고 와서 배고프다 하니, 엄마도 좀 힘들다. 버려지는 음식을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언제나 돼야 한 달 치 식단표를 받아 들고 맛있는 메뉴에 형광펜을 그어가며 급식을 기다리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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