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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un 01. 2023

K영어, 중2의 수동태,

우리 엄마는 그냥 약 먹고 낫던데요?

K-영어, 기말고사 대비가 시작되었다. 다시 파트 알바 선생님으로 영어 학원으로 출근을 한다. 아이들은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알바 선생님을 반가워하면서도 다시 그 지겨운 문제풀이의 늪으로 빠져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절망한다. 공부를 시키는 나도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쩌겠니, 학원 선생님과 학부모, 학생이 자의로, 타의로 합의에 도달한 일이니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이번 시험 범위는 대망의 수동태가 포함되어 있다. 수동태는 한국에서 문법으로 배우기에 조금 까다로운 파트이긴 하다. 동사의 형태가 달라져야 하고, 현재, 과거, 미래를 Be 동사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것이 헷갈리기도 하다. 수동태라는 표현 자체가 어렵고 어색하여 중학생이 마스터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부분이 많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수동태를 처음 배우던 날이 생각난다. 당시 영어 선생님께서는 수동태는 우리나라에 없는 표현이라 하셨고 그러니 외워야 한다고 하셨다. 수동태는 당하는 거라고, 당한다고 해석을 하면 어색해지는 표현이 많다. 그래서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전공은 중국어에 영어 어학연수 경험도 없는 토종 영어선생님으로 영어공부를 쭉 해보니, 수동태는 우리나라에 없는 표현도 아니고 무조건 당한다고 해석해야 하는 어법도 아니다. Give 주다를 Be given. 줌을 당하다로 바꾸면 꽤나 이상한 것이 사실, 하지만 역으로 받았다,라고 해석을 하면 무척 자연스럽다.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 없는 표현도 아니다. 쭉쭉 올라가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아 저 건물 많이 올라갔네, 하는 표현도 수동태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 건물을 지어 올렸다라는 능동태 표현이 더 어색하지 않은가. 저 건물 많이 올라갔네는 우리가 자주 쓰는 수동태 표현이다.


생각해 보면 많다. 이거 산 거 아니고 받은 거야라는 말, 굳이 누구가 나에게 주었어라고 하지 않고 편하게 쓰는 말도 수동태, 치료받았어, 나 그 소문 어디서 들었어, 하는 표현도 다 수동태이다.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연결시켜 주며 딱딱한 문법 용어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랑말랑하게 수업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의외로 어디서 오느냐 하면 중학교 2학년, 같은 내신 시험을 치러야 하는 아이들의 실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수동태를 처음 배우는 아이, 배웠지만 배운 것도, 안 배운 것도 아닌 아이, 한국식 문법으로 완벽히 마스터 한 아이, 미국에서 살다 와서 입에 붙었지만 문법 문제 풀이는 어색한 아이가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험을 치른다. 이것이 가장 난감하다.


수동태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차근차근 풀어 설명해 주었다. 미국에서 살다 온 나보다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에게는 문제 풀이를 먼저 주었다. 어제의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였다. 우리 엄마는 어제 열이나 치료를 받았다 하는 영어 문장.


엄마가 스스로 치료한 것이 아니니 수동태 표현이 정답이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치료할 수도 있지 않냐며 우리 엄마는 그냥 혼자 약 먹고 낫던데요?라며 짓궂은 장난을 던진다. 뭐 인마? 엄마도 치료를 받아야지 스스로 낫냐?! 엄마도 병원 가서! 어! 의사 선생님 만나고! 치료받는 거야!라며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실린 말로 아이의 장난을 받아 주었다.


에이 쌤, 미국에서 누가 병원을 그렇게 쉽게 가요, 스스로 낫는 거지. 수동태 말고 그러니까 수동태 말고 능동태도 맞는 거죠. 그래서 나는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야, 엄마도 치료받아야 해. 그리고 이건! treat는 타동사라 목적어가 필요한데 이렇게 쓰면 목적어가 없어지니까 비문이라 틀리는 거야라고 마무리 지었다.


그 아이의 엄마도 아플 때 혼자 약을 사 먹고 스스로 치료해서 나았나 보다. 생각이 드니 짠함과 동지애, 이거 봐요, 꾹꾹 참으며 애들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어요라는 수다를 떨고 싶은 아줌마 마음이 절로 든다. 


아이에게 엄마는 수동태를 뛰어넘는 능동의 존재인가 보다. 그 문장의 주어가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면, 나의 친구였어도 그런 반응이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 정도로 수동을 뛰어넘는 능동의 힘은 나오기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My mom was treated for a fever yesterday.'


중학교 2학년 아이와 입씨름과 말장난 사이를 오가게 만든 문제의 예문. 아마 내가 엄마라서, 아이는 나를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대화가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가씨였다면 우리 엄마는 그냥 스스로 약 먹고 낫던데요? 하던 말에 그렇게 발끈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의 장난에 아가씨 선생님이었던 나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을 텐데, 문법 수업에서 지양하고자 하는 문법 용어로 아이의 기를 누르며 상황을 종결지었다. 


1학기 기말고사 내신 대비는 대망의 수동태로 시작되었다(이것도 수동태 문장인가?). 25년 전 내가 수동태를 배우던 때와 시험 문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수업을 하는 분위기, 아이들의 실력, 무엇보다 수동태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수동태는 우리나라에 없는 표현이 아니고 수동태란 말을 쓰지 않는 것인데 문법 용어를 너무 어렵게 잡아 두고 시험 문제를 치사할 정도로 까다롭게 내니 아이들은 여전히 수동태를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은 조금 안타까웠다.


어렵다 하는 문법을 조금 더 쉽게 가르쳐 줄 수 있는 학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예를 들어 타동사라 목적어가 없으면 틀리다 했던 나의 말처럼 굳이 필요 없는 부분까지 시시콜콜 잔소리하며 알려주고 싶진 않은데, 그러려면 내신 시험이 조금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조금 틀리면 또 어때서, 아이들은 다시 또 지겹게 몇 백 문제, 몇 천 문제 풀이의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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