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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un 07. 2023

첫 가족 산행

아까부터 다 왔다는데, 도대체 언제 다 오는거야? - 의심의 시작.

아이들과 산에 올랐다. 집 근처에 해발 480미터 조금 안 되는 산이 있는데 많이 높진 않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나름 꽤 가파른 편이라 아이 둘이 생기고는 엄두도 못 내던 곳이다.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아이들과 첫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참고로 신랑은 회사에서 가끔 산에 오르지만, 나는 거의 10년 만에 산행에 도전했다. 사실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숨이 헉헉 차고, 벌레도, 산세도, 숨 차 하며 후들거리는 나 자신도 모두 무서워서 굳이 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걷고 싶은 적도 별로 없는데 아들들 쫓아다니느라 몇 년 동안 제로 많이 걸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사실 크다.



이번 산행(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은 그냥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이었고, 지난봄부터 산에 도롱뇽 알이 있다고 소식을 들어서 그것도 볼 겸 딱히 계획 없던 날씨 좋은 주말이 아까워 집을 나섰다. 항상 아이들과는 숲 중간에 있는 숲놀이터에서만 놀다가 들어왔는데 이번엔 그쪽 길을 피해 본격 산행길로 바로 들어갔다. 올라가다 보니 도롱뇽 알을 만났다. 표지 팻말을 조금 가까이에 두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한 걸음 떨어져 있어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갔을 수도, 극단적으로는 그 징그럽게 생긴 것들, (내 눈에는 똥 같기도 했고, 개불 같기도 했다)을 해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오마이뉴스 기사로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의 눈은 초롱 초롱해지고, 나는 도롱뇽이 뭔 지도 모르는데 함께 보며 사진을 찍어댔다. 멸종 위기의 생명체, 환경오염의 지구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멸종이란 단어는 더 이상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다만, 그 심각성과 슬픔에 대해 잘못과 미안함에 대해 조금 무뎌진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아이들이 가져야 할 감정들은 아니다. 아이들은 잘 못 한 것이 없으니,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멸종이란 말을 하고 심각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엄마덕에 미안한 감정을 가져보는 시간이 내가 미안했다. 도롱뇽에게, 아이들에게.


산은 가팔랐다. 엉덩이가 작은 아이들은 작은 돌멩이 위에서 자주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아이 키우며 다리 근육이 단련된 것인지 나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꼭 10년 전에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으며 올라가던 경사로인데 이번엔 땀도 안 나고 심호흡으로 다스려지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 옆을 헉헉대며 한 무리의 등산객이 지나간다. 가파른 산길에 8세, 6세의 아이들은 흔치 않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엄지 척을 날리니 아이들도 사뭇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이어지는 산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희들 대단하다, 멋지다, 힘내라, 거의 다 왔다를 말하는데, 도대체 언제 거의 다 온 거냐고 큰 아이가 묻기 시작한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다 왔다고 하는데 왜 끝이 안 보이냐고. 급기야 다 왔다는 어른들의 말에 의심을 품는다. 정말이야? 그래서 아이의 을 잡고 말했다. 원래 그런 거라고, 희망을 품고 조금 더 힘내서 가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거라고, 다 왔다 생각하고 조금씩 가다 보면 정말 다 와있거든. 하고. 뭐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큰아이의 성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다. 차라리 몇 분 남았다고, 몇 미터 남았다고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그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격려들이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아 웃어버렸다.


위대한 아빠

산 정상을 오르는 마지막 계단에서 급기야 둘째는 팔을 벌리고 안으라고 명을 내린다. 신랑이 명을 그 받들어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는데 느껴지는 아빠의 힘이 든든하다. 둘째는 거의 17킬로, 생수병 8개와 우유 한 팩을 끌어안고 가라 하면 가능할까, 가파를 산길에서도 기꺼이 끌어안게 되는 아이의 무게, 아빠에게 안기는 동생을 보면서도 자기도 안아 달라하지 않는 첫째가 대견했다.

산 정상에 오르니 성냥갑처럼, 아니 아이들은 성냥갑이란 말을 몰라서 블록처럼 보이는 아파트들이 신기한 모양이다. 형아가 우와 아파트가 이렇게 많아? 저기 보이는 것이 학교랑 집이네, 하자 동생은 유치원 셔틀버스의 길을 내비게이션처럼 읊는다. 1코스는 여기서 저기 갔다 우리 집에 와서 어디로 간다고. 자동차도 점처럼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 높이. 날씨가 좋아 내려다 보이는 광경이 예뻤다. 십 년 전 보다 아파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나는 아파트가 많아진 풍경보다, 나이 먹었는데 오히려 더 좋아진 체력이 신기하다. 매일 피곤하고, 아픈 것과는 별개로 다리에 힘이 붙었다는 것이 육아를 하며 얻은 선물인가.


내려가는 길,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몸이 가벼운 첫째는 날래 날래 날아 내려간다. 가파른 돌계단도 성큼성큼 저만큼 앞질러 가는데 뒤에 바들거리며 쳐져 있는 내가 걱정되는지 다시 올라와 나에게 손을 내민다. 엄마 걱정돼서?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지면 어쩌냐고 자기 손을 잡으라고 한다. 그 고사리 손을. 그러더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를 데리고 가는 아이. 아이고, 고작 8년 키웠는데 키운 보람이 있네, 고마워. 엄마 진짜 괜찮은데, 손도 내밀어주고 기특하네, 너무 웃기네, 감동이네 하다 보니 우리 친정 엄마가 떠오른다.



나는 엄마한테 애기들을 맡긴 적이 없다. 애들이 말썽 부릴까 봐, 아들 안 키워봐서 그 아들의 펄펄 나는 에너지를 모르는 엄마가 쩔쩔매다 다치기라도 할 까봐 걱정이 돼서 맡긴 적이 없다. 그건 시댁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오롯이 집에 있기도 했고, 애들과 부모님을 걱정하면서까지 애들을 맡기고 어디 나갈 일이 다행히 없었다. (내 성격의 문제 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가끔 알바를 나가며 양가 어머님들께 애들을 맡긴다. 저녁에 한 서너 시간, 그것도 먹을 밥 다 차려 놓고 어머님들 애들 씻기지 마시라고 내가 시간이 되면 목욕도 시켜 놓고 나가서는 한두 번 카톡으로 묻는다. 별일 없죠? 애들보다 어머님들이 걱정이 되어 드리는 연락이다. 그러면 별 걱정을 다 한다고 됐다고 일 보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 이렇게 괜찮은데 걱정이 되어 손을 내미는 첫째의 모습을 보며 우리 어머니들 생각이 났다. 나도 정말 괜찮은 엄마들에게 내 마흔 살 고사리 손을 내민 걸까. 엄마들이 괜찮다고 하시니, 진짜 걱정을 내려놓고 내 알바를 나가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산에서 내민 고사리 손을 떠올리며 이제는 애들이 많이 컸으니, 더 늦기 전에 할머니 손을 가끔 빌려도 되겠구나 위안이 된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딸기를 보았다. 안 그래도 요즘 산딸기 타령을 하는 둘째가 실물 산딸기를 보고 반색을 하는데 혹시 모르니 먹지 말라는 나의 말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산에 가니 산딸기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산딸기를 처음 봤다. 나중에 찾아보니 산딸기도 있고 뱀딸기도 있다는데, 둘 다 약용 효과도 있는 몸에 좋은 음식이지만, 요즘 세상에 산에서 굳이 따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구경만 해 보는 걸로 산딸기 구경은 간단히 마쳤다. 산딸기는 로켓배송으로 주문하여 먹자 하니 아이도 금세 수긍한다.


아이들의 등반 성공 소식에 시댁에서 반색을 하신다.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가자고. 사실 애들은 너무 힘들다고 다신 안 가겠다고 선언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상통화에 다음에 또 같이 가자고 고개를 끄덕인다. 착한 아이들. 갔다 오면 아마 맛있는 밥을 사주실 테니 또 한 번 꼬셔서 산에 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산행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었다.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올라간 것, 내 체력이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것, 첫째가 엄마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 만큼 자랐다는 것 모두 내 마음에 깊이 남을 장면들이다. 아, 또 하나 있다. 누가 땅에 떨어뜨린 젤리 하나를 개미 여럿이 와서 열심히 옮겨 가는 장면을 보았다. 느리지만 분명히 큰 먹이를 함께 옮기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동영상으로 찍어 친구들 단톡방에 개미를 본받아 열심히 살자고 남겼더니, 그러다 늙어서 골병드니 적당히 살아도 된다는 답이 올라왔다.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하던 개미도, 자기 몸집의 몇 배가 되는 먹이를 움직이는 근성과 협동의 힘은 분명 인상이 깊었다.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냐 하면, 아들 운동화 빠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이 없다고 굳게 믿는 내가, 산행 후 더러워진 운동화를 손수 빨아줄 만큼. 그만큼 기분이 좋아진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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