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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ul 03. 2023

무료 물놀이장

앉아 있는 엄마 세금 내는 보람을 느끼다.  

 바야흐로 시나브로 7월이 되었다. 올 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은 시간의 속도, 그 속도는 브레이크는 없고, 액셀레이터만 밟는 듯 빨라지기만 한다. 


아이들의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 여름이다. 장마에, 폭염에 어른들은 몸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고 힘이 빠지지만 아이들의 에너지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해진다. 뜨거운 햇볕과 흠뻑 적시는 물을 머금고 쑥쑥 자라는 식물들처럼. 원래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난 것인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무료 물놀이장이 곳곳에 많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냥 공원 바닥분수 수준이 아니고 웬만한 워터파크의 키즈풀 수준의 시설을 갖추어 놓고 부모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늘막 설치도 잘 되어있어 무료로 이용하기 황송하기 이를 데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워터파크에도 마스크를 쓰고 가야 했지만 올해부턴 마스크 없이 놀 수 있어 다행이다.  


 망아지처럼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우리 집은 항상 늦여름에 늦은 피서를 하루 이틀 정도 다녀왔는데 우리가 계곡에서 놀고 있으면 엄마가 불고기를 부르스타에 불고기를 구워 준비해 주었다. 아빠랑은 다슬기도 잡고 수영장에서도 놀았는데 엄마와 물놀이를 함께 한 기억은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엄마는 그늘에 앉아 음식을 준비하고, 먹으라고 부르고, 잠깐 쉬라고 부르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들이 둘이라 재작년,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한 놈씩 맡아 뒤쫓아 다니기에 바빴다. 코로나 때문에 물놀이장은 많이 못 다니고 주로 계곡이나 워터파크에 다녔는데 큰아이는 신나게 놀다가도 주위를 돌아보며 엄마 아빠가 지척에 있는지 확인하는 아이이고, 작은 아이는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아지 같았으니 큰 아이가 울지 않게, 작은 아이가 다치지 않게 쫓아다니며 돌보다 보면 물놀이 한 번에 우리 부부는 나가떨어지기 일쑤라 가만히 앉아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만 보는 옆 돗자리의 조금 큰 아이들의 부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방문한 물놀이장에서 내가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린이 전용 물놀이장이라 깊은 물이 없고 위험한 시설이 없었다. 사람은 많은 편이었지만 아침 일찍 서두른 덕에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어서 아이들 노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고, 곳곳에 빨간 옷을 입은 안전요원들이 배치되어 아이들을 살펴주니 나는 그늘막 아래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아 독서까지 즐겼다. 더 고맙게도 50분 놀이를 하고 10분을 쉬는 시간으로 잡아 알아서 아이들을 쉬도록 내쫓아 주니, 내가 아이들이 지칠까 봐 목이 터져라 이제 그만 나오라고, 잠깐 쉬고 놀라고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신랑은 두 아들의 화장실 수발을 드느라 이래저래 움직였다. 이럴 땐 딸 없이 아들만 있어 편하기만 하다. 물놀이장을 들여다보니 아직 어린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여전히 바쁘다. 번쩍 들어 안기도 하고 목마를 태우기도 하고 어쩐 일로 엉엉 우는 아이를 들쳐 안고 나와 달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조금 컸다고 이젠 엄마 아빠는 찾지도 않고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점심시간은 휴장이었다. 물놀이장이 잠깐 쉬는 동안 바닥분수가 터졌다. 아이들은 오며 가며 간식을 먹고 바닥 분수로 다시 달려든다. 쉬는 시간인데 분수를 틀면 어쩌냐는 옆 돗자리 아빠의 볼멘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민소매와 반바지 사이로 동그랗고 시커먼 부항자국이 여럿 보인다. 그야말로 부항 뜬 아빠의 물놀이 투혼이다. 나도 몇 년 전까지 온몸 여기저기에 파스를 열 장 붙이고 다니는 엄마였기에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조금만 참으시라고, 어깨를 토닥이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세금 내는 보람을 물놀이장에서 찾았다. 수질도 좋고, 물놀이장의 퀄리티도 여느 워터파크 못지않다. 매점도 있는데 시에서 운영을 해서 그런지 비싸지 않은 그냥 편의점 수준의 가격이다. 컵라면과 아이스크림이 불티나게 팔렸다.. 33도가 넘는 폭염, 앉아 있다가 너무 더우면 나도 잠깐 물놀이장에 발을 담그고, 바닥 분수에 들어가 옷을 살짝 적시고 나왔다. 아이들과 쭈쭈바를 하나씩 사 먹고 집으로 온다. 우리는 아침 일찍 가서 여섯 시간을 놀고 나오는데 그때 입장하는 가족들도 있다. 벌겋게 익은 아이들의 얼굴엔 모두 신바람이 묻어있다.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렇게 쫄딱 젖어도, 옷이 온몸에 찰싹 달라붙어도, 물안경에 수영모자에 얼굴이 찌부가 돼도 귀엽고 예뻐서 좋겠다고. 내가 저 지경이 되면 남보기 부끄러울 텐데 아이들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 두고두고 보고 싶을 만큼 예쁘다.  


나는 오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그늘에 앉아있는 엄마였다. 내 기억 속에서 물놀이는 안 하고 먹어라, 쉬어라 부르기만 하던 우리 엄마처럼 그렇게 앉아 아이들을 보았다. 나는 유년의 기억이 여섯살 무렵부터 굉장히 또렷하다. 아마 여덟살, 여섯살 우리 아이들도 나를 물놀이를 안 하고 그늘에 앉아만 있는 엄마로 기억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물가에서 넘어질까, 돌에 쓸릴까 노심초사 파스 붙인 몸으로 쫓아 다닌 물놀이들은 모두 잊으려나, 그래도 상관 없다. 기억에선 잊어도 마음에는 남을 것이다. 



언젠가 물놀이장을 봐도 시큰둥한 청소년이 되고, 물놀이장이 피곤한 어른, 혹은 아빠가 되었을 때, 너희들의 엄마였던 나를 어렴풋이라도 떠올려 준다면 그걸로 고마울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나라에서 우리 아이들이 여름이면 돈 걱정 덜고 맘껏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깨끗하고 좋은 시설을 제공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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