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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Jul 04. 2023

애호박 볶음,

오랜만에 먹은 훌륭한 채소 요리. 

 오랜만에 애호박 볶음을 했다. 부엌살림을 몇 년을 하면서도 가계부도 안 쓰고, 생각 없이 장을 보곤 하는 나는 각각의 식품이나 식재료의 가격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애호박 가격으로 요즘의 물가를 어림하곤 한다. 애호박이 최고가를 찍었을 때는 애호박 하나에 4200원, 어느 엄청난 장마가 지나갔던 여름이었다. 애호박 가격이 치솟으면, 아 채소물가가 비싸구나, 다른 과채류의 가격도 비싸겠구나 하며 장보기를 좀 신경을 쓴다. 요즘은 애호박이 싸다. 1000원 하더니, 800원으로 내려 애호박을 세 개를 샀다. 


 애호박은 아이들이 어릴 때 아주 잘 먹던 채소이다. 호박전이나 새우젓을 넣고 볶음을 해 주면 이유식 먹는 아기들도 손으로 전을 집어먹고, 짭조름한 애호박 볶음에 밥을 아주 잘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열광적으로 잘 먹지 않는다. 아마 다른 먹을거리에 눈을 떠서 애호박 맛이 예전 같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호박전도 갓 부친 전만 잘 먹고, 애호박 볶음도 냉장고에 들어갔다 오면 안 먹고, 아주 입맛이 상전이 따로 없다. 

  

 애호박도 한동안 라따뚜이로 해 먹고, 아니면 볶음밥이나 계란찜, 계란말이에 다진 채소로 먹다가 애호박을 세 개를 산 김에 두 개를 볶음을 했다. 생각해 보니 오랜만이다. 마늘과 새우젓, 들기름에 물을 조금 넣어 볶아가며 익혔다. 들깻가루도 조금 넣으면 좋았을걸 어쩐 일로 들깨가루가 똑 떨어지고 없다. 5분 만에 뚝딱 반찬 하나가 만들어진다. 달큼하면서도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 오랜만에 먹으니 정말 맛있다. 


 예전에 영어 학원에서 일할 때에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원어민 선생님이 있었다. 밀가루를 주로 많이 먹는 미국에서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으니, 그래도 알레르기 프리 제품을 찾아서 먹을 순 있었지만 먹는 데에 제한이 많았던 사람인데 한국에 오니 밥에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했던 선생님이다. 유치부가 함께 있어 조리실이 있으니 오후반 선생님들도 원하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밥과 반찬이 제공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가장 좋아했던 반찬이 애호박 볶음이었다. 밥이랑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한국에 와서 밥 잘 먹어서 살이 쪘다고 웃으며 투덜대며 애호박 새우젓 볶음을 먹던 미국인이 생각난다. 우리는 자주 먹는 반찬인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채소 요리가 있다고 극찬을 했다. 그렇게 맛있는 반찬을 한동안 안 해 먹고 있었다니. 


요만큼 남은 것은 냉장고로


 오랜만에 먹는 애호박 반찬에 아이들도 밥을 잘 먹었다. 하얀 밥에 올려 먹는 애호박 볶음은 별 것 없는데도 참 맛있다. 호박 자체의 달큼한 맛에 마늘향이 후각을 더 돋우고 새우젓이 감칠맛을 주고 들기름의 고소함이 화룡점정을 찍으니 정말 훌륭한 채소 요리가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 훌륭함은 더 배가되어 한 끼 식사를 즐겁게 해 주었다. 남은 것은 냉장고에 들어갔으니, 아이들이 또 맛있게 먹어 주려나, 아님 내가 비빔밥을 해서 먹어야 하려나 잘 모르겠지만. 


 장마로 큰 비가 오기 전, 여름 채소는 참 고맙다. 맛도 있고, 가격도 싸고, 종류도 다양하다. 감자, 애호박, 양파, 가지, 옥수수, 단호박, 고추, 마늘 모든 것이 새로 나오고 쏟아져 나오니 장보기도 신나고 간단하게만 요리해도 맛있어서 고맙다. 올 장마로 애호박 가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800원 하는 것이 4000원대로 치솟을지, 그냥저냥 하게 2000원 정도로만 유지돼도 좋겠다. 나는 가격이 쌀 때 왕창 사서 말려서 저장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지혜롭진 않으니, 장바구니 물가가 어느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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