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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15. 2023

수원 통닭거리

추억의 맛

수원 통닭거리에 다녀왔다. 화성 행궁 근처 시장을 지나면 닭 튀기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통닭거리가 있는데 모든 통닭집들이 다 오래된 노포로 어딜 가도 맛있는 맛집들이다. 치킨이라는 말보다 통닭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옛날 통닭맛. 닭똥집 튀김도 같이 나오는데 오랜만에 먹는 닭똥집 튀김이 쫄깃쫄깃 참 맛있다.


메뉴는 단출하다. 후라이드, 양념, 그리고 반반에 주류와 음료가 전부이고 치킨무와 뻥튀기를 처음 테이블 세팅만 해 주시고 그다음부터는 셀프로 갖다 먹는다. 오픈런에 맞추어 가겠다고 11시 7분에 도착했는데 이미 테이블이 많이 자리해 있고 포장줄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주방은 닭 손질, 튀김준비로 분주하고 튀겨내자마자 순서대로 포장, 홀서빙이 나가는데 갓 튀긴 통닭의 맛이야 말할 것 있을까.


후라이드 염지가 딱 좋다. 후라이드 치킨이어도 매콤한 염지가 많아 아이들이 먹기에는 마땅치가 않아 먹을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데 이곳의 통닭은 매운기 하나 없이 어릴 적, 아빠의 월급날 먹던 그 맛이다. 양념 도 마찬가지, 많이 맵지 않고 적당히 매콤 달콤하다. 마라맛, 간장맛, 허니콤보, 마늘소스, 치즈 뿌링클등으로 선택지가 점점 많아지는 다른 브랜드 치킨 같지 않게 종류도 단출, 맛도 단순한데 계속 손이 가는 마성의 맛이다. 치킨도 유행이 있어서 한창 간장 치킨이 유행하고, 마라맛, 매운맛, 크리스피, 치즈맛이 유행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는데 이곳은 뚝심 있게 후라이드와 양념으로만 긴 세월 영업하신 것이 대단하다 느껴진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해서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심심하다고 느껴지거나, 맛이 없어졌다고 느껴질 법도 한데 이곳은 옛날 그 맛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고 있으니 과연 구관이 명관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다.


열두 시가 넘어가니 본격적으로 웨이팅 줄이 늘어선다. 통닭은 야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낮에 통닭집에 와서 통닭에 간단한 낮술을 즐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나도 오랜만에 생맥주를 먹으며 옛날 생각에 젖어본다. 다니던 성당 친구들과 신부님과 현 남편, 구 남이었던 그와 함께 처음 왔던 곳이다. 그때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허름한 인테리어였는데 내부 구조가 깨끗하게 새것으로 싹 바뀌었다. 알고 보니 몇 달 전에 화재가 나서 공사를 하며 바꾼 것 같은데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고 내부 공사 후 영업을 이어가는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식당이 옛날 모습 그대로였으면 더 반가웠겠지만 깨끗하게 새로 단장한 모습도 괜찮았다. 모습도 맛도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네, 하는 반가움 반 씁쓸함 반이었을지도 모를 감정이 그래도 나처럼 여기도 조금 변했구나 하는 위로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통닭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후라이드와 함께 제공되는 맛소금을 찍어가며 뜨거운 치킨을 후후 불어가며 먹는다. 집에서 시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고도 한다.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배가 고프다고 징징 거렸는데 그걸 다 잊고 다음에 또 오자고 하는 것 보니 진짜 맛있는 모양이다. 통닭이 뭐냐고도 물어봐서 치킨을 통닭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한 달에 한 번 아빠의 월급날에 먹었던 통닭맛의 추억이 느껴진다. 매월 25일이면 아빠가 통닭을 두 마리 사서 봉투에 들고 퇴근을 하셨고 다섯 식구가 함께 둘러앉아 통닭을 먹었는데, 그것이 벌써 30년도 넘은 일이라니. 치킨은 흔해졌지만 통닭맛은 귀해졌고, 아빠와의 추억은 가슴속에만 남았으니 세월의 흐름을 통닭에서 한 번 더 느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통닭거리에 있는 모든 통닭집들이 만석에 웨이팅이다. 주말이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다. 모두 맛있는 통닭, 즐거운 추억을 드시고 돌아가시길.


오랜만에 마신 생맥주 두 잔에 기분이 참 좋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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