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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03. 2022

신랑이 좋아하는 오징어 뭇국

미안하지만 너의 엄마가 아니다 보니. 

어제 병원에 갔다가 병원 근처 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최대 70프로까지 세일하는 곳이라 가끔 가서 한 가득 득템 해 오는 곳인데 어제의 득템은 반값 할인하는 손질오징어였다. 오징어는 내가 자주 사지 않는 식재료이다. 오징어 = 매콤한 오징어 볶음 인데 아이들이 안 먹으니 안 하게 되고 다른 오징어 요리는 왠지 자주 하지 않게 된다. 왠지 그런 음식들이 있다. 이유 없이, 혹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자주 안 먹게 되는. 우리집은 오징어, 어떤 집은 오리고기, 어떤 집은 곰탕. 어떤 집은 생선. 


득템 한 물건들, 내가 유통기한 내에 다 먹어줄게. 저렇게 사 왔는데 새벽배송도 시키고, 코스트코도 가고, 편의점도 가고,  이마트도 간다. 식비 무엇?


 

여하튼 생전 안 사던 오징어가, 손질 오징어여서 그랬나, 반값 할인이 붙어서 그랬나 자꾸 나에게 자기를 데려가라고 손짓을 하는 기분이라  홀린듯이 두팩이나 집어서 가지고 왔다. 애들한테 간장으로 오징어 볶음을 해줄까? 그냥 오징어 데쳐서 주고 어른만 매콤한 오징어볶음을 해서 밥을 비벼 먹을까 고민을 하며 말이다. 신랑이 그런다. 오징어 뭇국 맛있겠다. 아 맞다. 우리 신랑은 오징어 뭇국을 좋아한다. 내가 자주 안 사는 식재료가 하필 오징어라 잊고 지냈다. 


진짜 오랜만에 먹었다. 오징어 뭇국. 


오징어 뭇국 끓이는건 어렵지 않다. 그냥 무, 마늘, 대파를 크게 넣고 끓이다다가, 양파도 조금 썰어 넣었고 마지막에 썰어 둔 오징어를 넣고 잠깐 끓이니 끝이다. 초장 찍어 먹으려고 오징어만 데쳐 낸 물이 있어 그것을 넣고 끓였더니 더욱 맛있다. 오징어 뭇국. 오징어 육수의 맛. 참 오랜만이네. 


아이들은 하얀 오징어 뭇국, 신랑은 거기에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 매콤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정말 맛있다며 두 대접이나 퍼다 먹는데,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안 끓여줘서 좋아하는 음식을 오랜만에 먹게 만들었지. 자주 못 끓여줘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자주 해주겠다고. 



난 소갈비보다 돼지갈비가 더 맛있더라. 


요리 하는 사람은 나이고, 밥상의 주체는 거의 아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내가 만든다. 집에서 한 끼 먹을까 말까 하는 신랑은 자기 집 밥상에 지분이 많이 없다. 다행히 반찬 투정 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주는 대로 먹어주니,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 늦게 들어와 식은 파스타를 데워서 맛있게 먹기도 하고, 김치 볶음밥 먹고 싶다 말하면서도 아이들용 오므라이스도 잘 먹는다.  자기는 바깥에서 맛있는것  먹고 다니니 괜찮다며. 


가끔 시어머니께서 국산 도토리가루로 직접 묵을 쑤어주시면 정말 맛있다. 내가 묵까지 쑬순 없으니. 


알뜰 장보기 덕에 신랑이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서 나도 기분이 좋다. 저녁 밥상도 알뜰 장보기 한 도토리묵으로 만든 도토리 묵사발, 오징어 뭇국의 국물로 만든 계란찜, 손 안대고 남겨 둔 본죽의 밑반찬들, 내가 먹고 싶어서 이틀전에 사다가 양념하여 재어 둔 LA 돼지 갈비구이 한상 이었다.  묵사발의 냉육수는 냉면육수이다. 신김치를 쫑쫑 썰고 어제 먹고 남은 김밥 김을 잘라 올렸다.  


다들 이렇죠? 


주말엔 하루 세끼 챙기다가 시간이 다 가버린다. 해 먹든, 사 먹든, 애들 입맛 맞추며 끼니마다 챙긴다. 


다음주엔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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