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라는 말이 뜨고 있다. 밥맛 없는 언니들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있다고 한다. 조금 먹는 사람들에 관한 관심들인데 대부분 놀라움, 처음 접하는 세계, 혹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고 정 떨어진다는 다소 과격한 반응, 혹은 격하게 소식 小食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격하게 공감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나. 소식해야 하는 사람. 소식해야 사는 사람.
That’s Exactly WHO I AM.
오늘도 다녀왔다. 한의원. 그냥 알아서 침을 주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의사선생님.
자주 체하는 나는 한의원 단골이다. 내과에서는 소화제, 위장 연동 운동 강화제, 제산제, 정장제 등등 약 처방 외에는 해줄 것이 없다고 하니 한의원으로 간다. 손과 발, 머리, 팔, 다리, 배에 침을 스무 개 가까이 꽂고 찜질하면 막혔던 게 좀 뚫리고 피가 도는 느낌이 난다. 나는 소화기가 약한 사람, 혈압도 낮고, 빈혈도 있고, 예민하고, 손 발 차고, 땀 안 흘리고 불면증도 있는 저체중의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엮는 한의학적 카테고리가 있는 모양인지 나를 처음 만나는 한의사 선생님들도 나의 문제들을 줄줄 정확히 꿰뚫으신다. 결론은 나는 원래 그런 사람.
원래 그랬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모습에 할말이 있기도, 없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작고 마르고 약하고. 그러다 성장기에 그나마 밥 잘 먹는 아이가 되었고, 신체적 성장은 끝났지만, 마음이, 지식이, 사회생활이 자라나는 대학생 때까지는 그런대로 잘 먹는 사람이었다. 밥에 편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술, 안주. 이런 것들도. 술도 꽤 셌다. 꽐라가 되는 언니 오빠들을 이렇게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통통하진 않았어도 그렇게 마른 사람도 아니었는데 나의 인생의 모든 성장이 끝나고 유지, 보수기에 들어서자 다시 밥을 잘 못 먹는 사람이 된 게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저체중이 되었고, 코로나 백신을 맞고도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는 더 빠진 살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우리 큰언니가 그랬다. 그놈의 바이러스는 사람 차별까지 한다고, 왜 너는 더 마르고 나는 더 쪘냐는 말이다.
코로나가 남긴 상처, 실화다. 진짜 몸이 너무 힘들었다. 내 키는 158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축복받은 유전자는 아니다. 다만 못 먹어서 살이 안 찌는 경우라 이건 뭐, 좋은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냐고? 간장 종지에 짬뽕 한 젓갈, 짜장 한 젓갈, 탕수육 두 알을 먹으며 배 부르다 하는 박소현 언니가 딱 지금 나 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 언니는 그만큼만 먹어서 평생 소화제 먹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항상 그것보다 더 먹어서 소화제를 달고 사는 한의원 단골이라 할까.
하루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데, 한의사는 꼭 필요하다. 초콜릿 쿠키 끊고 간식, 혹은 식사를 건강하게 바꿨는데 저것도 맛있다. 홈메이드그릭요거트. 저정도면 식사대용
음식을 해야 하니 소식을 하기가 더 어렵기도 하다. 간 보면서 배 불러지는 낭패를 자주 본다. 아이들은 먹여야 하니 끼니를 챙기고, 그래도 엄마라고 앞에서 함께 앉아 뭐 라도 함께 주워 먹으면 그게 과식이 되니 나는 항상 과식을 하는 사람이다. 입맛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는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신랑의 위장과 블루투스 연결로 기능을 셰어 하고 싶다. 어떤 날은 더부룩한 기분에 아무것도 먹기가 싫어 아이들이 없는 동안은 진짜 안 먹는 날도 있다. 저녁때쯤 되면 배가 고프다.
때때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방학, 코로나로 인한 장기 가정 보육 시대를 맞으며 다들 집에서 밥 해 먹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였지만, 나의 방점은 밥 하기가 아니라 먹기에 찍힌다. 계속 뭔가 음식을 내어야 하고, 냄새를 맡고, 먹어야 하니 그게 그렇게 고역이다. 정말 밥 대신 캡슐 한 알 먹고 싶었다.
남들이 보기엔 밥도 잘해 먹이는 거 같은데, 심지어 집에서 베이킹도 하는데 소식이라니. 사실 나는 내가 만든 빵 과자를 먹는 날이면 밥을 못 먹고, 밥을 먹는 날이면 내가 만든 빵 과자를 못 먹는다. 어차피 두가지 모두 아는 맛이라 크게 억울하지 않다. 그 순간에 가장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여 먹을 뿐. 그 순간 가장 맛있는 음식이 초콜릿, 떡볶이, 쫄면, 삼겹살, 소시지 빵, 피자, 쿠키, 과자 일 때도 있지만, 꽤나 높은 빈도로 간장 찍어먹는 양배추쌈 이기도 하고, 단호박 찜 이기도 하며, 발사믹 드레싱 뿌린 샐러드나 월남쌈 이기도 하다. 진짜 맛있어서 먹는다.
오늘의 김밥. 저 김밥을 네 식구가 다 먹었는데 나에겐 너무 과식이었다. 먹은지 여섯시간 지났는데 아직도 위장에 정체되어 있는 느낌.
오늘은 김밥을 말았다. 내가 말았지만 정말 맛있었다. 집에서 만든 우엉조림에 스팸, 맛살, 단무지, 우엉, 당근, 계란에 흰쌀밥 밑간에는 맛소금과 참기름, 검은깨 가루를 넣어 고소함을 더했다. 내일까지 김밥전 먹겠구나 싶은 양이었는데, 애들도 잘 먹고 신랑도 잘 먹고 나도 잘 먹었더니 소화가 안 되어 밤 잠을 못 이루는 중이다.
위장의 연동운동을 강화하려면 약이고 침이고 간에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 작년, 그러니까 서른여덟 살부터 심지어 뜀뛰기도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유튜브를 틀어 놓고 줄넘기 삼천 개, 그 이상을 하며 땀을 한번 조금이라도 빼고 건강한 아침식사를 챙긴다. (코로나로 체력이 너무 떨어져 한동안 못 하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다. )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뱃속이 완전히 편해지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땀을 조금이라도 내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지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기분은 좋다. 나의 이십오 년 된 친구는 헬스장 가서 무거운 것 좀 들으라는데 일단 귀찮고, 시간이 없고, 집에서 혼자 하기에는 괜히 이상한 자세로 여차하면 관절만 나갈 것 같아 제일 만만한 매트 위 제자리 줄넘기 15분을 하거나 만보 걷기 영상을 2배속으로 돌려 빠르게 마친다. 한 20분 정도 나를 위한 투자. 그게 어디냐.
여수의 남도 음식 대전. 우와. 진짜 아쉬웠다. 작은 위장이.
소식이 건강에 좋다지만, 어쩔 수 없이 소식을 해야 하니 내 팔자도 참 서럽다. 사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해에 여수 여행을 갔을 때 정말 슬프더라. 신랑아 나랑 위장을 공유하지 않을래. 그런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다음 달에 소화시킬 능력을 이번 달로 미리 땡겨 쓰는 기능이라도. 가불 어찌 안 되겠니. 할부라도 좋아.
많이 먹는 대식 먹방의 유행이 없어지진 않을 것 같다. 본능 중에 본능을 때려버리는 먹방은 내가 봐도 끌린다. 그런데 소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니 참 반갑다. 세상엔 다양한 종류와 체질의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이런 얘기는 웬만한 친한 친구 아니면 하기도 어려운 얘기였는데 유명한 사람들이 대신해주니 내 입장을 전하기도 조금 수월해졌다.
밥을 잘 먹어야 이쁨 받고, 복스럽고, 정겹고, 이런 식문화의 나라에서 살다 보니 일신상의 이유로 강제 소식을 하게 된 후로는 조금 힘든 일이 많았다. 시댁에서도 밥 안 먹는 며느리를 심히 걱정하셨고, 살이 빠져서 고민이라는 것은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미안한 고민이기 때문에.
밥맛 없는 언니들, 그 제목이 참 맘에 든다.
내가 그 밥맛 없는 언니다.
예전엔 잘 먹었다. 신체의 성장기는 보냈지만 나름의 지성이 성장하던 대학시절. 크느라 그랬는지 체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나를 키우는 양식은 대부분 술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