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 폭설이 내리던 날 이었다. 심상치않은 날씨에 신랑은 한시간 이상 일찍 나갔음에도 두시간 넘도록 아직도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이라는 심란한 연락을 보냈다. 큰 아이의 학교, 작은 아이의 유치원에서 휴교와 휴원 안내가 도착했고 오후에 출근하는 나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출근할 생각에 깜깜하던 그 날. 눈을 본 아들 둘은 엄마의 마음따윈 안중에도 없이 눈 놀이를 가자했다. 그래, 까짓거. 다녀왔다. 그리고는 빨래를 정리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작은 아이가 와서는 몸이 가렵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발진이었다. 하다하다 이젠 발진까지 나는구나. 그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아이는 그 즈음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다. 고열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다른 소견이 없어 열감기 진단을 받았다가 나았다. 그러더니 발이 아프다고 난리가 나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역시나 별다른 소견이 없어 인대가 늘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말을 듣고 반깁스며 물리치료,냉각치료를 받던차였다. 그러더니 이젠 발진이라니. 지쳤다. 하지만 두드러기는 자칫 위험할 수 있어 출근하여 얼굴도장만 찍고는 근처 내과로 데려갔다.
그 날따라 의사는 유난히 퉁명스럽게 느껴졌다. 최근에 뭐 새로 먹은것 있냐는 물음에 비타민 비 영양제를 새로 준 지 일주일정도 되었다고 대답하자 나를 "성분도 명확하지 않은 영양제를 함부로 먹이는 엄마"로 대했다. 그리고는 약 처방을 주는데 이 약 먹고 안 나을 수도 있다 했다. 그러면 왜 약을 지어주지? 만약 그렇다면 소아과를 가라고도 했다. 나도 갈 수 있으면 지금 소아과를 갔겠지만 사정상 내과에 온 건데 소아과에서 해 줄 만한 처방을 주면 안 되나. 속으론 불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아이가 자주 아팠더니 나도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졌을터,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 약으로 안 나을 수 있다는 말, 소아과를 가라는 말, 다 가와사키병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까? 그랬다면 명의시다.
아이는 낫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날 집앞에 상시로 다니던 가정의학과를 방문했다. 혹시 항히스타민제가 안 맞나 싶어 약을 바꾸었고 용량도 조절했다. 괜히 눈놀이를 하여 눈독이 올랐나, 비타민비에 정말 이상한 게 들었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알러지,발진,두더러기의 차이가 뭔진 모르지만 피부에 그렇게 올라왔는데 항히스타민제가 듣지 않는다는 것이 찜찜했다. 그런데 다른 소견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그 다음날에도 아이는 호전되지 않았다. 게다가 미열이 올랐다. 토요일 오전이라 소아과는 이미 접수 마감이었기에 가정의학과에 다시 방문하여 엉덩이 주사를 맞고 해열제를 추가하여 받았다.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도 했다. 발진에 몸살 감기가 겹치나, 하지만 항 히스타민제도 해열진통제도 듣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에 아이는 급기야 고열로 치솟았다. 급히 근처 2차병원 달빛 어린이병원으로 가서 그간의 히스토리를 말씀드리니 성홍열이 의심된다고 면봉으로 목을 긁어 검사를 했다. 한시간 반을 기다린 결과는 음성, 하지만 의사는 성홍열 진단을 내렸다. 검체가 없는 곳을 긁었을 수도 있다나. 진단 키트가 그렇게 부정확하단 것이 다소 어이가 없었다. 음성인데도 진단을 내릴거면 왜 굳이 검사를 했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저런걸 따질 형편이 못 되었다. 항생제를 먹으면 금방 나을거란 말에 얼른 약을 지어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그래도 낫지 않았다. 낫긴 커녕 발진, 열, 다리통증 그 어느하나 호전이 없었고 구토에 온 몸이 붉어지더니 눈도 충혈되었다. 그리고는 시든 꽃처럼, 병든 닭처럼 잠만 내리 자기 시작했다.
열나는 아이를 안고 성홍열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제반증상은 아이와 비슷하지만 걸리는게 있었는데 가와사키병이라는 것과 임상증상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가와사키병과 성홍열은 증상은 비슷하나 치료법이 완전히 달랐다. 성홍열은 항생제, 가와사키병은 면역치료였다. 성홍열 약이 전혀 듣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가 가와사키병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입원치료를 염두에 두고 일요일 오후에 직장에 먼저 알렸다. 감사하게도 직장에서는 아이의 치료에 집중하라고 해 주셨다.
그 다음날에도 아이는 더 안 좋아졌다. 가와사키병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는데 대학병원에 가려면 소견서가 필요하니 성홍열 진단을 받았던 병원에 다시 방문했다. 의사도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가와사키병 의심소견으로 전원서를 바로 써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지금 의료대란, 의료공백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 아이를 태우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달렸지만 소아과는 휴진이라 빨라야 내일 모레쯤 외래를 잡아 줄 수 있다고 했다. 응급실도 소아응급실은 운영되지 않아서 치료가 불가하다했다. 근처에 다른 대학병원엘 가야했는데 이렇게 한 번 퇴짜를 맞아보니 무작정 갈 수가 없어 전화를 먼저 걸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동네병원에서는 대학병원을 가라는데 대학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 겁만 잔뜩 먹은 채 집으로 돌아와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듣더니 무슨 상담실로 연결해주었는데 그 쪽에서 오늘 대학병원급에서 소아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근거리에 아주대병원 응급실밖에 없다고 했다. 조금 전 아주대 병원 소아과에 전화를 해 봤는데 내년 2월에 오라고 했다하니 응급실에는 소아과 당직의가 있는것으로 파악이 된다 하셨다.
그래서 오늘 가면 진료 볼 수 있나요? 나의 절박한 물음에 119에서는 그건 모른다고, 여기서는 의사가 있는것만 확인이 되고 그 쪽 상황은 모른다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 가라고 했다.
그렇게 아주대 응급실에 도착하니 오후 두시경, 급하게 소견서를 내밀며 접수를 하니 환자 분류소에서 이름을 부를 때 까지 기다리라한다.
응급실 환자분류소에서는 접수하는 환자들을 과별로 위중증상태별로 분류를 한다.소아응급실을 찾은 환아들은 대부분 위중증에 해당하는 아이들이어서 접수순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라도 우리 아이보다 어리고 급한 아이가 들어오면 순서를 양보해야하니 그 기다림은 기약이 없었다.
응급실 대기실에는 응급이 아닌 환자들도 꽤 있었다. 본인에게는 급하고 아픈 상황이겠지만 뼈에 금이 갔다거나 소화가 영 안된다는 이유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도 있었는데 환자분류소에서는 그런 분들께 동네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시라고 안내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쓰고 있었다. 양쪽 다 안타까운 상황. 어느 병원이 잘 하느냐고 묻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주변 병원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주는 걸 보니 흔히 있는 일인가보다 했다.
세시간쯤 지났을까, 우리 이름이 드디어 불렸다. 안으로 들어가서 또 기다려야하지만 의사를 곧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가 들었다. 응급 진료를 보며 챙겨온 소견서, 투약봉투를 내밀었다. 응급실에서는 아이의 임상증상 그 중에서도 다리통증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아이는 며칠 새 다리통증이 심해져 걸음도 절뚝거릴 정도로 악화되었는데 만나는 의사들 모두 성장통 정도로 치부하여 진료도 제대로 못 받고 답답하던 차였다. 다리통증 이야기에 바로 초음파 진단이 들어갔는데 무릎이며 발목에 물이 차고 염증소견이 보인다 했다. 가와사키병이 관절을 공격하여 고관절부터 물이 차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의사는 피검사를 먼저 해 보고 입원여부를 결정하자 했다.
응급실에서 베드를 하나 배정받아 수액과 해열제를 먼저 꽂았다. 응급실로 달려오며 어느정도 입원할 각오를 하고 왔기에 노트북을 꺼내 유투브를 틀어주었고 충전기를 꺼내 핸드폰을 충전했다. 그리고 얼마 뒤 입원이 결정되었다. 입원실에 올라가니 여덟시가 넘은시각, 나는 그동안 한 끼도 먹지 못 했다. 아이는 죽이라도 떠 먹였는데 나는 쫄쫄 굶었던 것이다. 밀린 허기가 쏟아졌지만 방법이 없었다.그래도 입원을 했다고 마음이 놓여 배가 고파진게 웃기기도 했다.
다음날이 되자 아이는 더 뚜렷한 가와사키병 증상을 보였다. 발진, 고열, 충혈에 딸기혀라고 불리는 혓바닥 돌기도 올라오고 임파선 부종도 보였다. 치료가 시작되었다.가와사키병은 면역글로불린 수액을 24시간 맞아야 하고 심장에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에 심장초음파와 심전도 검사를 해야한다.나는 아이가 걸음을 못 걸어 졸지에 휠체어를 타게 된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지만 의사들에게는 그런 금방 치료할 수 있는 증상보다는 관상동맥이 늘어나는지 안 늘어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라 했다. 24시간 동안 면역 글로불린수액을 맞고 36시간 동안 지켜보며 열이 나지 않고 관상동맥께서 안녕하시며 다른 증상이 사라지면 퇴원, 그렇지 않으면 2차치료에 들어간다.
응급실에 들어 올 때 부터 아이가 최근에 코로나에 걸렸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자신있게 아니라고 했다. 입원전 검사에서도 코로나 음성이었기에 코로나는 몇년 전 오미크론에 전 국민이 다 걸렸던 그 때 걸렸던게 전부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의 정밀 피검사 결과 최근에 코로나를 앓았던 것이 확인 되었고 의료진으로부터 한 달 안에 코로나를 앓았던 아이 중에 가와사키 병을 앓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명확한 상관 관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연관성이 있을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보름 전 쯤 알 수 없는 고열을 앓았었네요. 그게 코로나였을수 있어요, 어머니.
아이가 알 수 없는 고열을 앓았을 때 즈음 신랑도 몸살을 한 번 앓았는데 어쩌면 둘 다 코로나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의 심한 근육통과 열은 하루 이틀만에 없어졌지만 그 후로 아침마다 주먹이 안 쥐어 질 정도의 손가락 통증과 붓기, 팔다리 통증으로 내과, 정형외과 진료를 보았지만 별다른 소견과 차도가 없어 류마티스 내과에까지 예약을 해 놓았던 차였다. 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열이나고 아이가 가와사키병을 앓는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한 신랑의 이 증상도 코로나와 후유증으로 느껴지는데 확진할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는 1차치료가 끝나고 경과보는 36시간 지나는 목요일만을 기다렸다. 얼핏 빠르면 목요일 퇴원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목요일에 퇴원 하는 줄로만 알고 기다렸지만 결과는 2차치료였다. 열이 잡히지 않았고 관절염과 다리통증도 호전이 없었기에 2차 면역 글루불린 치료와 고용량 스테로이드 충격요법을 병행하였다. 면역치료는 24시간, 스테로이드 치료는 사흘간 진행되니 목요일 퇴원은 커녕 주말에도 병원신세라 서러워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랬다. 아파서, 또 병원밥이 맛이 없어 살이 쏙 빠진 아이는 가벼웠다.
가와사키병은 7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라고 한다. 이제 만 6세가 지난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둘째는 가와사키를 앓기에 다소 늙은감이 있지만 그래도 아주 없는 케이스는 아니라고 한다. 원인 불명이지만 동아시아 아이들이 주로 걸리기 때문에 유전적 소인이 있을것으로 추정하고 심장 관상동맥에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잘 치료하고 꾸준히 관리해주어야한다. 예전에는 이런 병으로 아이를 잃기도 했을것을 생각하면 새삼 현대의학에 무한한 감사가 절로 나온다. 최근에는 코로나 이슈로 새로운 연구도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코로나로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혼란이 온 틈을 타서 가와사키 같은 병이 더 쉽거 올 수도 있는 것. 예전 코로나가 초창기일 때 서양에서 코로나 후유증으로 돌았던 어린이 괴질 같은 것들이 결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모든 것이 추측일 뿐이겠지만 한참 잊고 지냈던 코로나 포비아에 다시 압도당하는것 같아 새삼 마스크와 손 씻기, 비말에 예민해진다.
아이는 주말까지 병원에서 보내고 월요일에 퇴원을 했다. 꼬박 일주일만이었다. 증상은 사라졌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계속 되는 약물복용으로 속도 많이 안 좋아졌다. 퇴원 일주일 후 짜장면 반 그릇을 먹고 무섭게 구토를 하여 응급실에 다시 다녀오기도 했고 피아노 학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피자 한 조각을 먹고 또 토를 한 번해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한껏 올라간 식욕이 병으로 약해진 소화기관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모앙이다. 지난 외래 때 다시 만난 교수님은 다 좋아질거라고, 다만 관상동맥은 추가로 몇 번 더 초음파를 보며 확인해야한다 하신다. 딱히 예방법도 없고 그냥 주기적으로 초음파를 보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하니 이 역시 답답하지만 이 정도 예후라면 감사할 뿐이다.
나는 가와사키병 이란 말을 사십년 넘게 살며 처음 들었다. 이렇게 엄마의 상식과 견문을 넓혀 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해야할까, 이런 식의 다양한 경험은 사양하고 싶은데. 아마 나처럼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가와사키병을 모르는 부모들이 많을것 같아 이 글을 남긴다.
발진이 항히스타민제로 잡히지 않는다면, 열이 해열제로 잡히지 않는다면, 항생제가 들어야 할 병이 낫지 않는다면 꼭 소아과 전문의를 찾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