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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29. 2022

까르보나라? 계란 파스타?  

정통은 무슨! 취향껏 알아서.

우리 집은 계란 파스타를 종종 해 먹는다. 까르보나라라고 하는데, 보통 까르보나라는 크림 파스타 종류를 생각하지만, 이태리에서 먹는 원래 까르보나라는 계란에 치즈, 후추, 베이컨을 넣어 크리미 하게 만든 소스에 먹는 파스타를 가리 킨다. 파스타 면도 고칼로리인데, 거기에 계란, 치즈, 베이컨이라니, 한 입 먹으면 느껴지는 고소하고, 묵직한 고칼로리의 맛에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값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고영양식이었다는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로마에서 먹은 까르보나라


신혼여행으로 로마에 가서 이태리식 까르보나라를 처음 먹었다. 샛노란 소스를 입고 나온 파스타는 짭조름한 감칠맛은 내가 한국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이다. 우선 들어가는 치즈와 베이컨의 클래스가 다를 텐데, 그냥 피자 위에 뿌려먹는 파마산 치즈가루로는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없으나, 어쩌다가 한 번 까르보나라를 해 먹자고 그 치즈를 구비해 둘 순 없으니, 그냥 있는 대로, 되는 대로 해 먹는 음식이 바로 우리 집 계란 파스타. 까르보나라라고 부르기도 죄송한 그 계란 파스타이다.


유투버를 따라서 계란 흰자까지 다 사용했다. 흰자만 따로 남겨 부쳐먹었는데 한꺼번에 소스로 만드니 번거롭지 않아 좋았다.


그 대신 달걀은 최대한 신선한 것을 사용한다. 시댁에서 가끔 방목 유정란을 주시는데 그것이 냉장고에 있을 때만 보통 만든다. 오늘은 이탈리아 사람이 까르보나라를 만드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만들었다. 계란 소스에는 보통 노른자만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전란을 다 사용했고, 지금도 이태리 사람들 사이에서는 계란 전란을 쓰느냐 노른자만 쓰느냐로 왈가왈부 하지만, 그것은 취향 차이이고 옛날엔 계란이 귀했으니 전란을 쓰는 사람이 많았고, 지금은 상대적으로 흔해졌으니 노른자만 빼서 쓰는 사람도 많다 한다.


오늘의 계란 파스타, 우리집은 무조건 소스 듬뿍이다. 소스를 퍼먹는 나때문에.


베이컨을 볶고 있으니 아이들이 코를 킁킁거린다. 함께 볶는 버섯도 먹기로 약속을 하고 계란 파스타를 만들어 주니, 작은 아이는 베이컨과 함께 먹을 하얀 밥을 달라 하고 큰 아이는 계란 소스에 비벼 먹을 하얀 밥을 달라 한다. 취향이 다른 아이들. 오늘은 한 그릇 음식으로 밥과 파스타 채소 샐러드를 함께 내어 주었다.


정말 고소하고 맛있는데 조금 느끼하긴 하다. 피클이나 할라피뇨가 있으면 좋겠는데 방울토마토에 양배추 샐러드와 먹으려니 못내 아쉽다. 신랑의 몫으로는 후추를 더 많이 넣고 앞접시에 빨간 반찬을 내어 주었다. 느끼한 파스타와 김치는 제법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문득 이탈리아에서 아이들 키우는 한 아줌마가 한식을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는 상상을 한다. 소고기를 사다가 간장 설탕 마늘에 양념을 하여 불고기를 만들어 빵과 함께 내어 주려나? 아니면 창의적이고 이태리스럽게 토마토소스가 활용되려나, 그 아줌마가 만약에 김밥을 만든다면, 김밥 재료로는 뭐가 들어갈까, 잡채를 만든다면, 육개장을 끓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한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한식이라고 할 수 없을까? 한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의 계란 파스타를 그 이탈리아 아줌마가 맛본다면 과연 이건 나름의 까르보나라라고 할까, 까르보나라라고 할 수 없다 말할까?


같은 계란 파스타를 누구는 빨간 반찬, 누구는 베이컨에 하얀 밥, 누구는 하얀 밥에 계란 소스와 함께 먹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난다. 정통, 전통, 원조 이런 것들을 잣대로 들이댄다면 오늘 먹은 우리 집 저녁밥은 세상 듣도 보도 못 한 잡식이 되겠지만, 집밥, 취향, 가족과 먹는 저녁 한 끼, 별식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저 행복하고 따뜻한 한상이었다.


국적이 애매한 오늘의 계란 파스타, 그래도 이만하면 성공. 참고로 나는 면이 별로 당기지 않아 볶은 버섯 위에 계란 소스를 듬뿍 얹어서 많이 먹었다. 계란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알뜰이 다 먹었으니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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