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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27. 2022

깻잎 논쟁? 알밤이라면 모를까.

밤을 까주는 건, 나의 마음을 주는 것.

아이를 낳고 기르고 나이가 들며 여러 가지 면에서 오지랖이 발달한 것 과는 별개로 남의 일에 더 무관심해지고, 심드렁해진 면도 생겼다. 나의 머리와 마음은 철저히 일 인분이라 그것을 아이 둘과, 혹은 셋과 나누어 가며 사는 것이 이미 크나큰 무리라서 남 일 까지 신경 쓸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세월 여리고 순진하던 나의 마음에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돌덩이 같은 무게를 던져 놓고 흘러가버려, 난 어떻게 보면 쏘 쿨, 아니면 뜨뜻 미지근 한 사람이 되었다. 오직 화를 낼 때만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런 사람.  


몇 달 전 대한민국에 난데없는 깻잎 논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저 무반응이었다. 별 걸 다 가지고 에너지 쓰네 하며. 그런데 하도 트는 데마다, 보이는 데마다 깻잎 깻잎 거리니 나도 잠시 생각은 해 보았다. 결론은. 떼어 주거나 말 거나 내 알바 아니나, 코로나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여러 사람이 반찬 접시 하나를 공유하는 것보다 앞 접시 사용을 권장해야 한다라고 결론이 나 버렸다. 이토록 남의 일에, 혹은 말랑말랑한 연애 감정에 무감각해 진 나의 아줌마 연차가 야속하기만 하다. 옛날의 나라면 깻잎 논쟁에서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알 밤, 밤 줍기 체험을 다녀온 큰 아이 친구네서 얻었다. 잘 생긴 밤.


깻잎 논쟁이 나에게 논쟁거리도 안 되었던 이유는 난이도 하.라는 젓가락질의 기능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깻잎 논쟁을 코로나 시점에서 관람하며, 나의 진짜 속 마음은 그까짓 깻잎 가지고 뭘, 밤 까기라면 또 모를까. 였다.  밤 까기 = 난이도 상, 웬만한 마음 가지고는 남에게 해 줄 수 없는 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은 밤 타령을 한다. 사시사철 밤을 못 먹는 시대도 아니라, 맛 밤, 깐 밤 등을 수시로 먹는데, 그럴 때는 시큰둥하면서도 가을이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반들반들하게 잘 생긴 햇밤의 자태에, 햇밤을 사다가 엄마가 껍질 까서 입에 넣어 주는 그 맛에, 가을 이 절기는 두어 번 정도는 밤을 사다가 찌건, 굽건 한 번씩 푸닥거리를 해야 넘어간다.


칼집을 병뚜꺼에 대고 내면 밤이 잘릴 일이 없이 편리하다고 해서 한번 해 보았다. 하지만 손은 조심해야 한다.



푸닥거리라고 표현을 해야 할 만큼, 나도, 아이들도 밤 까기, 밤 손질에 능하지 못하다. 이 칼 저 칼 바꿔가며 칼 집을 내고, 칼, 수저 등을 총동원하여 까서 먹고 먹이는데 수선을 피우는 값에 비해 여기저기 흘리는 것이 더 많아서 영양소가 제대로 들어는 갈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손도 아프고, 쓰레기 치우기도 번거로워서 사절하고 싶은 식재료 중 하나인데, 잘생긴 밤톨들은 일 년 중 두어 달 만나는 흔치 않은 시즌 음식 인 데다가, 영양가도 높다 하고, 밤의 짙은 밤색이 주는 가을의 정취, 가을의 맛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밤 타령에 연중행사로 몇 번은 밤 푸닥거리를 한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에 학교 간 동안 생 밤을 까서 꿀에 여 간식거리를 만들어 놓곤 했다. 반나절 죽어라 까서 절여 두었는데 먹는 건 순식간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밤이 나오는 계절이면 몇 번은 그 수고로운 간식을 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나는 못 하겠다. 내 새끼한테도 해 주기 힘든 것이 밤 까주는 일. 그런데 깻잎 논쟁에서 잎 대신 알밤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남친이, 내 남편이 다른 여자한테 밤을 까 준다? 당장에 등짝이 날아갈 일이다. 이런 마음을 적용한다면, 나도 깻잎을 젓가락으로 눌러주는 것에 대 반대인 입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저 쉬운 젓가락질이기에 망정이지, 난이도 최상급의 밤 까기에 응용하니, 그 감정이 확 다가온다. 아. 갈대 같은 마음.


알밤과 알밤 머핀, 2021, 2022.


밤을 먹으며 큰 아이가 말한다. 밤 빵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작년에 밤 모양 머핀 틀을 구매해서 알밤 모양 빵을 구워 준 것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작년엔 밤 가루가 많이 생겨서 밤 가루로 머핀을 구워 주었는데, 올 해는 지난번에 사 둔 밤 잼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직구를 하며 프랑스산 밤 잼이 눈에 띄어 사 두고는 사용할 일이 없어 찬장에 그대로 있었다. 생크림과 계란, 밀가루, 설탕 소량에 프랑스 산 밤 잼을 듬뿍 넣고 굽굽.  밤 머핀의 잘생긴 머리에는 초콜릿을 녹여 바르고 깨를 갈아 붙여 주니 그럴 싸 하다. 밤은 다 까먹었으니, 이 알밤 머핀으로 한 두 번 먹고, 나는 깐 밤이나, 칼집 냉동밤, 혹은 길거리 군 밤, 아니면 대기업 맛 밤을 주로 먹으며 이 가을을 보내고 싶은데, 이 놈들의 손을 잡고 마트며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가을엔 밤이 눈에 자주 띄어 한 두 번은 밤 푸닥거리를 해야 겨울이 오지 싶다.


까기 귀찮아도 밤 잘 먹으면 좋지, 밤이 영양가가 얼마나 높으면 밤벌레가 그렇게 통통하겠어, 오죽하면 아이가 살이 올라 포동포동 해 진 모습을 밤벌레 같다 고 하는 표현도 있을까. 이까짓 밤. 얼마든지 까 줄 테니 많이 먹고 쑥쑥 자라렴. 시장 가서 또 사줄게.


오늘의 결론. 깻잎 논쟁, 깻잎은 별 것 아니나 깻잎이 밤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늘의 밤 타령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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