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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26. 2022

애들은 육회, 어른은 치킨까스.

아빠가 생각나는 음식 - 3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위가 작고 워낙 잘 체하는 탓에 자제력 또한 뛰어난 편인데 가끔씩은 크고 작은 구내염을 동반하며 고기가 강하게 당긴다.  이렇게 당기는 고기는 보통 육회. 정말 호랑이가 고기를 뜯어먹듯, 뭐라도 잡아먹어야 내가 기운을 차릴 것 만 같다. 보통은 뭐가 먹고 싶어도 하루 이틀은 유야무야 지나가는 편이다. 귀찮아서. 또 이것이 먹고 싶다가도 조금 지나면 다른 것이 먹고 싶어지는 경우도 많고, 먹을 것이 여기저기 많다 보니 이것저것 먹다 보면 허기고 식탐이 뭐로라도 대충 채워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육회가 당길 땐 오로지 육회여야만 하는 욕구가 눌러지질 않는다. 결국엔 피로와 귀찮음으로 천근만근 내려앉은 궁뎅이를 일으켜 정육점으로 간다. 사장님, 육회 거리 한근만 주세요.


엄마가 해 준 것 보단 맛이 없다 하셨지만, 즐거운 시간 되셨기를 .


육회는 아빠가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이가 좋지 않아 질긴 음식은 잘 드시지 않던 아빠는 연한 고기, 소고기 육회를 좋아하셨다. 이렇게 연하고 부드러운 고기를, 왜 익혀서 질기게 먹냐며. 병중에서도 체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으면 엄마가 육회를 무쳐서 병원으로 가져가셨는데 마다하지 않고 드셨다. 엄마의 고추장 육회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고, 쌈에 싸 먹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엄마표 소고기 육회.

뷔페에 있는 냉동 육회랑은 차원이 다르다. 정육점에서 당일 사온 신선한 생고기에 엄마의 손맛이 닿은 추억의 음식. 아빠의 제사상을 따로 차리지 않는 우리 가족은, 지난 추석에도 아빠를 기억하며 엄마가 만든 육회를 먹었고, 작년 아빠의 1주기에도 산소에도 육회와 소주를 가져갔고, 코로나로 가족 모임이 불가했던 아빠의 사십구재에도 내가 육회를 무쳐 아빠의 술상을 봐 드렸다.


결혼하기 전, 엄마 아빠와 함께 살 적에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육회를 먹었던 것 같다. 아빠가 좋아하시니 내가 굳이 타령을 하지 않아도, 내 몸이 애원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척척 몸에 들어오던 육회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도통 먹기가 힘들어져 어쩌다 한 번 명절 때 집에 가거나 해야 먹는 음식이 되려던 차, 내 몸이 육회를 강하게 원하여, 내 발로 정육점엘 찾아 들어가 육회 거리 한 근만 주세요. 를 말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임신 중에도 이렇게 강하게 먹고 싶던 음식은 딱히 없었는데 말이다.

정육점 사장님께서 새빨간 고기 한 덩이를 채 썰어 주시는데 침이 꿀꺽 넘어간다. 세상에. 미드 산타 클라리나 다이어트에서 먹이 사냥 나온 드류 베리모어 같다.


고기 먹고 싶어.


엄마의 레시피는 다진 마늘, 설탕, 고추장, 간장, 통깨, 참기름을 넣어 무치는 것이지만, 이제 연어도 회로 먹는 아이들이 혹시 육회도 먹을까 싶어 매실청, 참기름, 허브솔트,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통깨를 뿌렸다. 혹시 육회를 안 먹더라도 나는 소고기 먹으면서 애들은 김 싸 먹이 기는 미안하니 냉동실에 재어서 얼려 둔 치킨 가스도 한 봉 해동해서 저녁 식사에 맞추어 튀겼다. 자자, 와서 먹자꾸나. 애들은 치킨까스 , 어른은 육회.  오늘은 단백질 먹는 날.



빨간 고기를 보고 매운 줄 알고 손도 못 대던 아이들이 계란 노른자에 비벼주니 맛보기 시작한다. 눈이 똥그래지는 큰아이. 자기가 좋아하는 계란 노른자와 참기름에 비빈 소고기라니, 게다가 이에 끼지도 않고 꼭꼭 씹지 않아도 되는 사르르 녹는 맛에 홀딱 반한 것 같다. 엄마 육회 더 있어? 하는 걸 보니. 아직 다섯 살 둘째는 육회를 먹어 보더니 맛있다면서도 치킨 스에 더 손이 가는 것 같은데 일곱 살 형아인 첫째는 하얀 밥 위에 육회를 얹어 먹는다.


졸지에 애들은 육회, 어른은 치킨까스가 되어 버린 식탁, 하지만 언제나 소고기 구이도 몇 점 먹다 말아버리던 큰아이가 잘 먹으니, 그저 그게 반갑고 기쁘다. 나 먹으려고 샀는데 결국엔 아이가 잘 먹어 기뻐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애 엄마. 다음엔 한근 반을 사야 하나.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가 좋아해서 자주 먹었던 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일까. 나 먹이느라 아빠는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셨던 건 아닌지, 정작 요리했던 엄마는 충분히 드셨을지. 지금 우리야 소고기 사는 김에 조금 더 사는 게 큰 무리는 아닌 세상을 살고 있지만 옛날엔, 먹을 것이 지금보다 귀했을 시절, 다섯 식구를 외벌이 살림으로  빠듯하게 먹이셨을  엄마 아빠는 소고기를 충분히 드셨을까 하고 말이다.


아빠는 식탐이 없으셨던 분이다. 본인이 배 부른 느낌은 싫어하셔서 평생 정량 식사, 생전 과식은 안 하시면서도 남들은 배불리 먹이셔야 기분이 좋으시던 분. 좋아하는 육회를 앞에 놓고도 딸내미 먹는 것만 바라보고 계시진 않았을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 시절 그 장면을 비디오로 재생해본다. 젓가락 들고 맛있게 오물거리는 아이, 젓가락 놓고 흐뭇하게 쳐다보시는 아빠. 오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육회를 먹으며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 많이 먹었어?



그나저나

다음엔 고기 많이 사야지. 한 근 반, 아님 두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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