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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23. 2022

커피 예찬

술은 끊어도 커피는 못 끊어. 

아침부터 바빴다. 아이들을 등원 시키고 집안 정리를 간단히 하고, 성당에 다녀와서 냉장고 고치러 오신 냉장고 수리 기사님을 만나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건조기가 잔뜩 토해 놓은 빨래를 몽땅 개고 장을 봐 왔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영 정신이 안 들고 눕고만 싶다. 혈압이 다시 떨어지는 건가, 감기가 오려나. 그런데 아차차. 오늘 커피를 안 마셨구나. 얼른 한잔 마련하여 카페인을 몸에 넣었다. 이제야 살겠다. 눈이 떠진다. 정신이 든다. 머리가 돌아간다. 

오늘의 커피 


쌀은 한 동안 안 먹고도 살 수 있고, 술도 끊을 수 있고, 아직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은 없는데, 커피는 매일매일 마신다. 마셔야 한다. 기호식품이 아니고 약이다. 눈 뜨게 해주는 약, 화를 가라앉혀 주는 약, 기운이 나게 해주는 약, 즐거운 수다를 더 즐겁게 만들어 주는 약. 전문 의약품도, 일반 의약품도 아니고 건강기능식품도 못되지만 나의 일상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와 역할이 있다. 멈춘 나를 돌게 해주고 돌은 나를 멈추게 해주는 신비의 명차. 바로 커피. 


코로나가 초창기, 가정 보육 시절이다. 커피 없었음 집집이 전쟁이었을지도.


고 1때부터 시험기간에 각성제 용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서, 고 3때 저녁 급식 후 야자 시작 전 식후 땡으로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그 믹스 커피 한 봉이던 커피가 늘고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나날이 다르지만 어떤 날은 에스프레소 샷이 세개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도 한다. 불면증을 앓고 있으니, 커피를 달고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최근에는 커피는 오전에만 (사발커피 가능), 믹스커피는 가끔씩만, 저녁에는 가급적 디카페인으로 라는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커피를 마시지만 못 지키는 날도 꽤 된다. 커피 한 잔 때려야 되는 순간엔, 정말 커피가 아니고는 대체 할 것이 없다. You are the only one and my Number 1!!! 


요즘은 저 정도는 아니다.


오늘은 오트 음료에 내려 둔 더치 원액을 더 해 따뜻하게 데워 다이소에서 산 거품기로 거품을 내어 한 잔 마셨다. 보통은 찬 우유에 더치원액을 넣은 라떼를 즐기고, 가끔 정말 당 떨어졌을 때 믹스커피를 두봉, 가끔은 세봉도 타 마시며 당과 에너지를 충전한다. 커피는 지난 20년간, 내가 가장 고뇌하며 공부하던 순간, 졸음에 겨워 힘겨워 하던 순간, 화와 신경질을 가라 앉히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르던 순간,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떠는 즐거운 시간에 함께했다. 순간 마다 다른 커피기에 망정이지, 같은 커피였다면 나는 나의 모든 치부와 밑바닥을 모조리 알고 있는 커피를 창피해서 더는 만나지 못 할 것이다. 매일 매일 다른 커피이니 어제의 나를 잊고, 아까의 화를 잊고 새로운 얼굴로 마신다. 마치 마구 화를 내다가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용~ 하는 모습처럼. 


파리에서 먹은 핫초코와 스타벅스 아이스라떼.


프랑스 파리를 여행 할 때, 정말 옛날 집에 있던 커피잔 세트 같은 커피잔에 에스프레소며 핫쵸콜릿 같은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의 핫초콜릿은 정말 먹는 순간 혈당이 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걸쭉한 소스 같았는데 작고 예쁜 잔에 마시니 그렇게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카푸치노도 그 만큼 작은 잔에 한 잔으로 조금, 예쁘게 나온다. 프랑스 여자들이 고칼로리를 먹으면서도 날씬한 이유가 이거로구나 생각 하면서도 벌컥 벌컥 마시는 대용량 라떼가 그리워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여행 약속을 깨버리고 스타벅스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그 정도의 카페인으로는 여행을 할 정신이 나지 않았다. 나는 프랑스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던 순간. 


커피가 건강에 유익한지, 유해한지는 하도 말이 많아서 더 이상은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나의 일상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존재임에는 분명하며, 과한 건 물론 좋지 않겠지만 안 마셔서 오는 해악이 더 괴롭기에 나는 매일 매일 커피를 마신다. 임신 중에도 마셨고, 아이 낳고 하루 이틀 못 마신 것 빼고는 거의 매일, 심지어 코로나 걸렸을 때도 커피를 마셔댔으니 나의 커피 사랑은 말 다했다. 그런데 매우 일반적이다. 나 말고도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많으니. 어쩌면 커피 없이는 못 살게 만드는 세상이 잘 못 된 건인지도 모르겠다. 기호 식품을 기호로 즐기지 못 하고 생존을 위해 약처럼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의 커피 예찬. 끝.



 

늬들은 아이스크림, 엄마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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