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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22. 2022

순한 맛 짜장.

feat. 신랑이 안 먹는 양파즙.

아이를 낳고 기르며 입맛이 순해졌다. 나이가 들어서 일 수도 있고, 체력이 약해져 일 수도 있는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애 키우며 입맛이 순해졌으니, 입맛이 순해진 건, 애를 키우기 때문, 혹은 애를 키우는 덕이 되었다. 입맛이 순해진 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일단 몸에 좋 (을 것이) 다. 라면이 얼마나 짠지, 엽떡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맛인지 알게 되었고, 피자에 올라가는 페퍼로니의 매운맛을, 쌈장의 매운맛을, 후라이드 치킨의 매운맛을 게 되었다. 맛이 온전히 느껴지니 짠맛과 매운맛을 의식하며 조절할 수 있. 그 전에는 매운 줄도, 짠 줄도 모르고 먹었다. 아니, 튀김 우동이 맵다고?


믿기 어렵겠지만, 맵다.


아이들과 먹는 유아식은 고춧가루 청정지역이다. 게다가 저염 지대. 덕분에 위장병과 각종 성인병의 위험에서 조금 멀어졌을진 몰라도 외식하는 즐거움과도 멀어져야 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고, 너무 짜고 매워서 애들 뿐만이 아니라 나도 먹기가 힘들어졌다. 라면이 왜 이리 짜고 매운지, 옛날엔, 아가씨 땐 어떻게 여기에 고춧가루와 후추를 추가하고 김치에 스팸과 함께 먹었는지 모르겠다. 국밥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새우젓 다진 양념 양껏 풀어 맛있게 먹고는 집에 와서 물을 몇 잔씩 들이켜기 일쑤다. 그중 최고봉은 바로 짜장면.


한창 잘 먹을 성장기에는 짜장면 곱빼기를 먹은 적도 있었다. 아마 중 고등학교 중간에 걸친 한 3년 정도, 먹성 좋고 체하지 않는 청소년일 때. 그때 짜장면 곱빼기에 밥도 비벼 먹은 적이 있다. 그때 많이 먹을 둘걸, 나이가 들며 소화력이 떨어지고, 애를 낳고 기르며 입맛까지 순해져 곱빼기는커녕 짜장면도 먹기가 힘들다. 너무 짜고 기름져서 짜장면 한번 맛있게 먹으면 이박 삼일은 고생한다. 집에서 짜장을 만드는 이유. 그것이 이것이다. 밖에서 먹는 건 너무 자극적이라 순하게 순하게 집에서 만든다.



일단 달달 볶은 양파가 엄청 많이 들어간다. 식감과 존재감을 위해 생양파 하나를 넣고 나머지는 생양파 세 개 정도 되는 분량의 볶은 양파 얼린 큐브를 넣는다. 그리고 당근 한 개 채치고, 감자 두 개 채치고, 오늘은 팽이버섯이 있어서 쫑쫑 썰어 넣었다. 애호박도 있으면 넣는데 오늘은 없다. 그리고 오뚜기 간짜장 큐브 네 개, 즉 4인분이다. 간짜장이라 그런지 전분기가 없어서 나는 전분가루를 넣는 편인데 전분가루가 없어서 오늘은 찹쌀가루를 풀었다. (집에서는 불맛을 못 입히니 전분을 안 풀면 탕국 같아져서 뭔가 이상하다)


https://brunch.co.kr/@niedlich-na/34


가장 중요한 건 물의 양인데 레시피에서 권장하는 500미리 중에 200미리는 양파즙으로 넣는다. 즉 물 300미리와 양파즙 200미리, 양파즙은 남편의 성인병 예방을 위해 시어머니께서 한 박스를 사다 주신 건데, 그는 처음에 몇 번 먹는 것 같더니 애써 외면하며 베란다에 놓고 쳐다보지도 않아서 내가 요리할 때마다 한 포씩 넣고 있다. 주로 불고기, 떡볶이, 카레, 짜장.


양파가 잔뜩 들어가고, 양파즙까지 들어간 가정식 짜장밥은 자극적이지 않다. 조미료 맛에 불 맛을 걸치지 않아도 충분히 달큼하고 감칠맛 도는 순한 짜장이 완성된다. 순한지 안 순한지 어떻게 아냐하면, 내가 먹고 괜찮기 때문이다. 순한 맛이 아쉽다면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을 곁들여 김치나 스팸과 함께 먹으면 되는데 남편도 내가 만든 짜장이 맛있고 속 편하다며 잘 먹으니 순하다고 맛없는 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이 맛있는 건 안다. 어릴 때부터 외식의 상징이 짜장이었는데. 집에서 못 내는 불 맛을 입은 짜장 소스에 쫄깃쫄깃한 수타 면발을 곁들인 맛을 내가 감히 어찌 흉내라도 낼 수 있으리. 그런데 이제는 몸에서 받질 않아 짜장도 순하게 먹는다. 우리 짜장 순하게 순하게.


계란으로 단백질 업, 염도 다운.


보통 순한 맛은 매운맛과 대비되어 쓰인다. 한국인에겐 매운맛의 반대말인 안 매운 맛이 순한 맛이겠지만, 그 순한 맛이 외국인에게는 덜 매운맛것이고, 나는 덜 매운맛에 덜 짠맛추가해 순한 맛을 완성한다.


오늘 저녁으로는 내가 만든 짜장밥에 계란 프라이까지 얹어서 먹었으니, 짜장밥의 염도는 더 낮아졌을 것이다. 반찬으로는 냉동 탕수육과 샐러드. 중국집에서 배달시킨 짜장면에 고춧가루 톡톡 뿌리고 서비스로 온 짬뽕 국물을 들이키며 탕수육을 고춧가루 들어간 초간장에 찍어 먹던 시절이 그립긴 하다. 하지만 어쩌리. 그 시절이 지난 걸.


 입맛이 이렇게 순해진 건, 어쩌면 성질이 독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총량 불변의 법칙을 믿는 편이라, 순한 맛의 총량도, 독한 맛의 총량도 있기 마련일 테니, 성질이 독해졌으니 입맛이라도 순해져야 밸런스가 맞아서 그러려니. 하며 살고 있다.  


배달 중국음식을 먹는 재미는 자주 못 즐기지만, 건강에는 유익하겠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걸로 퉁.

아이들이 어릴 땐 면을 먹을 때도 밥을 한톨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 부단히도 애썼었다.


신랑의 양파즙을 다 먹으면 그땐 짜장을 어떻게 만들지? 한동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것 같다. 엄청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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