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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04. 2022

진짜 칼의 노래.

부엌칼의 노래를 마치며

짐작하셨겠지만 나의 첫 브런치 북 <부엌칼의 노래>는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따왔다.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이야기를 어찌 감히 나의 부엌 이야기에 대입하랴 싶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칼의 노래는 총 네 번을 완독 하였다. 처음에 출간되었을 때 한번, 그때는 그냥 멋있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다. 두 번 째에는 영화 명량이 개봉하여 이순신 신드롬이 불었을 무렵이었다. 그때 영화를 통해 눈으로 본 실감 나는 해전에서 격군들이 노를 저어 전함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세 번째는 첫 아이가 돌 쯤 되었을 때, 유난스럽게도 낮잠을 업혀서만 두세 시간 자던 시절이 있었는데 예민한 아이는 내가 는 두 손으로 부엌일을 하거나 청소를 하며 달그닥거리면 반짝 깨어 울어서 나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아이가 언제 깰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이 커서 새로운 책보다는 읽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들 위주로 읽었다. 쫄깃쫄깃 새로운 이야기 속에 들어갔다가 아이가 깨어 책을 덮어야 하면 아이에게 짜증이 날 것 같아서 이다. 그때 집어 들었던 책들 중 하나가 칼의 노래였다. 그제야 문장 문장이 가슴에 스미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스민 문장은 <밥> 챕터에 나오는 끼니에 관한 문장들.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하루에 대여섯 번씩 찾아오는 아이의 끼니가 버거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 정말 돌아서면 밥때였는데 내 밥, 신랑 밥 까지 합치면 하루에 끼니가 열 번은 되는 기분이었다. 우습게도 이순신 장군도 나와 같이 끼니 고민을 하셨다고 내 맘대로 정신승리를 해 버리자 위로가 되었다.


네 번째 완독을 최근이었다. 영화 명량에 이어 칼의 노래보다는 앞 시대의 이야기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개봉을 했고 그 감동의 여운으로 칼의 노래를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부하가 조정에 올릴 장계를 고쳐 쓰던 부분, 적선 백 척을 부수었다고 쓴 부분을 부순 것은 삼십 척, 나머지는 저들끼리 부딪치며 부서졌다고 고치던 부분과 장수가 전장에서 적장의 칼에 맞아 주는 것은 자연사라며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장군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자신의 공과를 내 보이지 않고 사실만 담백하게 적는다. 그리고 끝까지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자리 지킴이 얼마나 든든 한가. 나도 밥 한다고 생색내지 않아도, 다만 나의 존재만으로도 위엄 있고 가치 있는, 내 자리, 두 아이의 엄마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이 내 첫 브런치 북의 제목이 <부엌칼의 노래>가 된 이유이다.  부엌칼을 휘두른다고 하기엔 아직 너무 부족하다. 김치는 아직 한 번도 담가본 적이 없고 그저 아이들 밥을 차려줄 뿐인데 그것도 온갖 냉동식품과 밀 키트, 시어머니, 친정엄마의 찬스까지 종종 쓰고 있으니 부엌칼의 장수가 아니라 그냥 우리 집 부엌칼의 주인 정도이다. 그래서 요리 레시피를 나열하거나 음식 평론이랄 만한 글은 써 내지 못 한다.

밥이 지긋지긋한, 밥 걱정 좀 안 하고 싶은 나와 같은 아이 엄마들이 아주 많은 줄 안다. 엄마의 친구들도 엄마 집에 놀러 왔다가 남편, 자식, 손자들 밥 해주러 저녁시간에 자리를 뜨시는 걸 보면 이 놈의 밥을 아직도 몇십 년을 더 해야 하는구나 싶어 아찔하기도 하다.  아직 너무도 많이 부족한 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신나게 부엌칼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을 얻으셨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브런치를 시작 한 지 석달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그간 쓴 글들 중에 다음 메인에 오른 글이 열편 이상 된다. 애써 큰 의미를 두진 않았지만, 꾸준히 열심히 쓸 원동력이 되긴 했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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