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한글날, 아빠와 축구를 하러 나가려다 비가 와서 허탕을 친 아이들과 한글 쿠키를 만들었다. (엄마가 시켜서) 아빠와 함께하는 세 남자의 쿠킹 클래스. 보통 쿠키 반죽은 집에서 만드는 편인데, 왜냐하면 내가 만든 것이 훨씬 맛있어서. 그런데 알록달록한 소량의 반죽만 필요해서 미리 구매해 두었다. 쿠팡으로 7천 원 대면 색깔도 골고루 예쁜 쿠키 반죽들을 하루 만에 받아 볼 수 있다. 밀대로 밀 것도 없이 길게 늘어뜨려 글씨 만들기. 아이디어는 아이가 다니던 쿠킹클래스의 사진을 보고 얻었다.
보통 집에서 쿠키 만들기는 내가 반죽을 하고 밀대로 밀어 찍어 구워두면 아이들과는 장식만 하는 정도로 진행하였는데 차가운 반죽을 조물 거리게 해 주니 좋아한다. 오랜만에 즐기는 촉감놀이에 아이들도 즐거운 모양. 파는 쿠키 반죽은 어떻게 손에 달라붙지도 않고 양도 적당해서 아이들이 손으로 조물거리기에 딱 좋다. 역시. 대기업은 대기업. 반죽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양도 적당하고, 집에서 만들기 힘든 색색의 반죽을 구매하니 몸도 마음도 편하고 좋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똥 이란 단어. 사진 찍을 때에 어색하게 웃는 아이를 진심으로 활짝 웃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 똥. 알고 보니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에도 나온다. 쿠키 만들기를 하기 전에 유튜브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를 보여주었는데, 저잣거리에 나가 보니 가장 흔한 백성의 이름이 개똥이었는데, 똥 자를 쓸만한 한자가 없더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니 한글 창제에도 기여한 단어 인가보다.
한자로는, 중국어로는 음역 글자라고 해서 외래어나 의성어 등을 소리가 비슷한 한자어로 조합해 만든다. 대표적으로 코카콜라는 可口可乐 크어 코우 크어 르어. 뚜레쥬르는 多乐之日 뚜어 르어 쯔 르, 안나 安娜 안나 엘사 艾莎 아이샤 이런 식이고 하하 허허 哈哈 呵呵 등의 의성어도 소리가 비슷한 글자를 조합해 쓴다. 중국어의 성조가 들어가긴 하지만 꽤나 비슷하게 발음이 나도록 글자를 조합하는 걸, 흥미롭게 공부했다. 도대체 한자로 어떻게 그런 것들이 가능한지 궁금했는데 사람 사는 데는 다 방법이 있음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한글에도 외래어 표기법이 있어서 발음 그대로 보다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도록 하고 있어 본래 발음과는 약간 차이가 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모든 나라의 언어들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다는 건 외국인들에게도 매력적인 일이었는지 외국 친구들의 이름을 한글로 써 주면 한글을 읽어보며 신기해하고 고마워하던 기억이 많이 있다. 보기에도 예쁜가 보다. 온갖 희한한 단어가 뒤섞인 한글 티셔츠를 기념품 가게에서 사서 입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많이 봐서 나는 외국 글씨가 들어간 티셔츠나 의류를 잘 구매하지 않는 편이다. 이게 뭔 말인지, 어떤 뉘앙스인지 알 길이 없으니 말이다.
한글을 익힌 큰아이는 영어를 쓰고 읽으며 신기해한다. 이미 한국어처럼 되어버린 영어단어를 영어로 보고 읽을 때의 그 신기함과 뿌듯함이 가득 찬 눈망울을 보면 배움의 기쁨을 알아서, 그래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표음문자가 많지만 한글이 가장 과학적이고 위대한 글자이자 유산이라고 한다. 누구나 이삼일이면 익힐 수 있는, 쉽고도 과학적인 날마다 쓰는 것이 편하게 하고자 하는 글자. 요즘 외래어니 신조어니 하며 한글 파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있지만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 언어의 본질이고 속성이라 하고, 나도 귀여니 세대의 산 증인으로서 그런 요즘 세대의 한글 파괴라는 것을 걱정하진 않는다. 그대들도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가 되면 이 시절을 추억하며 낯 뜨거워할 날이 올 테니. 세종 대왕님께서도 그런 것들은 웃으며 바라보지 않으실까. 그 바람대로 정말 백성들이 누구나 쉽게 익혀 날마다 쉽게 쓰고 익히며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경계하는 것은 한글 교육의 지난 친 조기화로 한글이 통 글자라는 프레임을 쓰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삼일이면 익힐 수 있다에서 누구나는 어른이고 어린이이지, 갓 걸음을 떼고 기저귀를 뗀 아기들은 아닐진대 우리는 너무나 일찍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려 용을 쓰는 건 아닌지, 나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언제나 뒤돌아 보고 경계하는 요즘이다. 나야말로 네 돌도 안 된 다섯 살 둘째에게 한 바닥씩 자음 모음 쓰기를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