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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09. 2022

할로윈 베이킹

You have our blessing. No conditions.

시월 말일인 할로윈데이는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익숙해진 서양 명절이다. 귀신 분장을 하는 날이라곤 하지만, 무시무시한 귀신이 아닌 깜찍한 경찰, 공주, 온갖 히어로들로 분장을 한 아이들, 젊은이들의 행사이기도 하다. 신랑은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할로윈을 챙겼냐며 마뜩잖아 하지만, 나는 대학 졸업하고 영어학원에서 줄곧 일을 해왔던 터라 할로윈이면 이런저런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익숙한 편이다. 할로윈은 공부 안 하고 놀만한 건수로 아주 훌륭한 핑계였으니, 학원 강사였던 나는 핑계 삼아, 못 이기는 척 그날 화장도 짙게 하고 사탕도 나누어 주며 아이들과 행사를 즐겼다. 함께 일하던 원어민 강사들도 그날은 멋지게 분장을 하고 오니 아이들은 열광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배우는 것보다 의미 있는 하루였을 것이다. 거창하게 문화 체험까지는 아니어도 선생님에 대한, 원어민에 대한 긴장을 놓고 말 한마디 더 붙이려 다가가는 날이었으니 말이다.



천주교에서 11월은 돌아가신 모든 영혼을 기억하는 위령 성월이고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 즉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며 11월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다. 할로윈 데이는 10월 31일, 즉 모든 성인 대축일의 전야, All Hallow’s Eve에서 비롯된 말이고 하늘에 있는 모든 영혼들이 내려오는 날, 나쁜 영혼, 즉 귀신이 나한테 오지 못하게 나도 귀신 분장을 하여 귀신 인척 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는 날이다. 뭐, 결은 달라도 우리도 동짓날 붉으죽죽한 피 같은 색깔의 팥죽을 먹으며 귀신을 쫓고 있으니 할로윈도 서양 동짓날 정도로 생각하면 편하다. 참고로 천주교에서는 11월 위령 성월을 천국 문이 열리는 축복의 달로 여긴다. 천국 문 프리패스를 받는 달. 할로윈 데이는 여러모로 11월 위령 성월과 맞닿아 있으니,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모가 돌아가시고, 언젠간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분들이 지상보단 하늘에 더 많이 계실 것임을 아는 나는 할로윈 데이부터 시작하는 위령 성월이 반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눈물이 차 오르기도 한다. 슬프지는 않다. 그냥 영화 코코가 더 생각나고, 주제곡 Remember Me를 흥얼거리며 돌아가신 아빠와, 이모와의 추억을 더 생각할 뿐이다.


2021 할로윈 쿠키


아이들과의 할로윈은 쿠키를 만들며 기념한다. 보통 호박, 유령 모양의 쿠키를 만들었는데 이번엔 미라 딸기 파이를 만들었다.  유튜브로 mummy hand pies를 검색하며 이런저런 영상들을 보고 참고했다. 유치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배우는 큰 아이는 이집트 미라에 관심이 많다. 죽은 사람을 썩지 않게 만들어 놓는 것, 실제 미라의 사진에선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을 찾을 수는 없지만 할로윈의 미라 파이는 파이 반죽 붕대를 칭칭 감고, 딸기잼 피를 흘리며, 사탕 눈을 박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내가 만들면 최대한 깔끔하고 귀엽게 만들게 되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니 모양이 망가지는 것 같으면서도 더 기괴하고 기발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외눈, 피눈, 세눈. 반죽 만지는 것을 재미있어할 줄 알았더니 눈을 박으며 깔깔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 포인트는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너희가 재미있음 되었다. 맛있게 먹었으니 더욱 잘 되었다.


2020 할로윈 쿠키


아이들은 아직 할로윈이 어떤 날인지 당연히 모른다. 그저 노는 날, 사탕 바구니 받고 영어로 뭐라고 외치며 사탕을 받는, 평소에 입지 않는 재미있는 옷을 입고 친구들을 만나 노는 날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1031일 할로윈데부터 11월 위령 성월로 이어지는 그 의미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절 해진, 앞으로 더 절절 해 질일 만 남은 나의 마음도 아직은 이해하기 너무 난해 할 것이다. 그저 아이들은 수선을 피우고, 내가 준비해 주는 활동을 재미있게 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나를 웃게 하고, 나의 삶을 보람되게 만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2021 할로윈때 아빠가 공룡 수트를 입고 동네를 활보했다. 코로나 백신맞은 만신창이의 몸이었는데 부성애로 이겨낸 훌륭한 아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무르익으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할로윈 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신랑은 상술에 놀아나는 거라는 둥, 뭐라고 뭐라고 궁시렁대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 사탕을 챙겨주고 작년엔 무려 공룡 에어 슈트를 입고 온 동네를 다니며 동네의 할로윈 인싸가 되기도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기하게 바라봤지만, 산책 나가던 개 한 마리가 공룡 신랑을 바라보던 그 표정이 제일 압권이었다. 그 개에게 이 공룡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아이들과 쿠키를 만들며, 올해의 할로윈 이벤트를 생각하며, 그 뒤에 오는 11월을 맞이하며 나는 '기억'. 그 단어를 마음에 새긴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빠를, 이모를 기억한다.


아이들아, 나를 기억해주렴. 어릴 때 할로윈 쿠키를 함께 만들던 엄마를.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너희가 10월 31일부터 11월로 이어지는 위령 성월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그때도 나를 기억해 줄 수 있겠니.

나는 너희를 축복한단다. 아무 조건 없이.

지금이나 그때나 변치 않음으로 축복한단다.

내가 받은 축복처럼 말이다.


You have our blessing. No conditions.

아빠가 그리울 때, 이 노래를 생각하면 눈물도 나지만 위로도 된다.

I'm with you

The only way that I can be

Until you're in my arms again.

너를 다시 내 품에 안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으로 나는 너와 함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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