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Oct 03. 2022

여수 여행.

뭐든지 맛있고, 어디든 아름다운 곳.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무려 시아버지의 칠순 기념. 아이들이 생일마다 이렇게 여행 가는 줄 알까 봐 특별한 생일이라 가는 여행이라고 누누이 일렀다.  목적지는 여수, 가는 길에 담양 죽녹원에 들렀다. 9월 30일에 가는 여행이라 긴팔 옷만 챙기려다 혹시 몰라 반소매를 넣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남부와 중부가 이렇게 다를 일인가. 참고로 남도에는 모기가 아직도 기승이라 아이들이 여러 방 물렸는데 가을 모기라 독이 잔뜩 올라 있는지 물리는 곳마다 땡땡 부어 며칠 고생깨나 하게 생겼다.


담양 죽녹원


사실 일 년 전에 우리 가족끼리 여수 여행을 다녀왔다. 코스도 똑같이 가는 길에 담양을 경유하여 죽녹원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그때는 첫 한파 주의보가 내려진 늦가을이었는데, 이번엔 늦은 폭염이 기승이었던 가을이다. 한 달 사이로 풍경도, 옷차림도, 감상도 사뭇 다르다. 죽녹원의 대나무 숲은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하다. 평생 키가 커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렇게 키 크고 쭉쭉 뻗은 대나무의 자태가 부럽기만 하다. 그렇게 키 크고 날씬한 대나무들끼리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며 바람이 불 때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간질이는 소리를 낸다. 마치 훤칠한 모델들의 런웨이 자리에 자리 몽땅한 내가 들어선 것 마냥 작은 키가 새삼 구스럽다.


애들은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던 , 대나무 침대와 해먹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올 해도 거기에서 조금 놀고 가겠다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실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는데 올 해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는 해제되었으니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있어 훨씬 좋다. 그 좋은 공기를 마스크를 통해 굳이 걸러서 들이마시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는데 올해는 날 공기 그대로 들이마신다. 담양은 대통밥, 떡갈비가 유명한 곳이지만 여수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자 하며 담양 국수거리에 들러 비빔국수, 잔치국수, 삶은 달걀로 간단히 요기만 하기로 하였다.


한정식집 보다는 그냥 식당이 훨씬 좋았다. 생선구이 백반, 전복죽 한상, 해물탕, 돼지국밥.


맛의 본고장 전라남도에서는 아무 식당나 들어가도 다 맛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첫날 저녁에 갔던 큰 한정식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웠다. 한상, 두상, 세상이 코스로 제공되는데 종류가 여러 가지다 보니 음식 하나하나 마다 맛깔스러운 맛은 부족했다. 하나가 너무 간이 세고 맛있으면 다른 것들이 상대적으로 죽어버리는 것도 있고, 여러 사람의 입맛을 여러 반찬들이 고루 맞추어야 하니 오히려 맛들이 너무 평준화되어 부족한 느낌도 있었다. 가짓수와 가격을 맞추느라 랍스터 누룽지탕 같은 한식이라고 보기엔 모호한 음식도 포함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 먹을 음식이 별로 없어서 아이들은 한 상 떡하니 받아놓고 새우튀김과 깨죽, 마지막에 나온 조기구이에 밥을 겨우 먹었을 뿐이었다. 그런 비싸고 큰 한정식집은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이거나, 단체관광의 꽃, 혹은 효심의 표현으로는 적당할지 몰라도 실속을 따져야 하는 가족여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큰 정식집보다는 그냥 백반집 쪽이다.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기도 하지만 위대한 영혼 또한 자연의 정기가 되어 자연을 빛나게 한다. 정기가 없는 자연은 그냥 경치일 뿐이다. 경치는 아무리 좋은 경치라 해도 눈으로 보는 것으로 족하지 마음속으로 스며오진 않는다. 어찌 위대한 영혼뿐이랴. 이름 없이 살다 간 백성들의 한 많은 사연들이 서리서리 머무는 곳이 우리의 강산이다. 바로 그런 자연의 정기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심금을 흔들고, 고향 떠난 이를 죽어서도 뼛골이라도 묻히고 싶도록 끌어당기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박완서 수필집. 한 길 사람 속 본문中


국군의 날부터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연휴에다 3년 만에 코로나로부터 조금 헤어나서  행사와 축제가 한창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좌수영 본영지였던 여수라 그런지  이순신과  임진왜란 해전에 관련한 행사들이 대부분. 이순신 광장 주변에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딴 상호들이 많았는데 햄버거집, 갈비탕집, 건어물 가게, 밥집, 안경집, 스시 오마카세 집까지 있는 걸 보면 위인의 삶이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몸소 실감이 난다.



여수는 언젠가부터 낭만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너와 함께 걷고 싶은 여수 밤바다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낭만을 찾아 걷는 곳. 아닌 게 아니라 여수의 앞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쪽빛 바다에 해가 비치면 바다 표면 빛을 그대로 내뿜으며 반짝이고, 넓은 바다 중간중간 뚝뚝 떨어져 있는 섬들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남해를 바라보면 숨이 탁 트인다. 밤에 해상 케이블카를 타니 야경이 절경인데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칼의 노래까지 읽고 와서 그런지 그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달랐다. 부서진 적선과 적들의 죽음이 바다 가득 떠내려 가던, 그러나 하룻밤이 지나면 바다 본연의 아름다움과 적요를 되찾았다던 칼의 노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싸움과 승리, 삶과 죽음만을 생각하며 바다를 바라보셨을 이순신 장군께서 그 야경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실 까. 저 불빛들이 적의 출현을 알리는 봉화가 아니고 백성의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표식이라 다행이다 하시지 않았을까.




여수에서 먹은 특식은 갯장어회와 샤부샤부였다. 작년에도 먹었던 음식인데 우유처럼 고소하고 부드럽다. 가시를 다 손질해서 나온다고는 하는데 아이들의 여린 입에는 가시가 여전히 거슬리는지 차돌박이 샤부샤부를 추가해서 먹었다. 바야흐로 전국 택배의 시대라 지역 맛집의 음식들도 밀키트로, 택배로, 아니면 프랜차이즈로 집에서 혹은 집 근처에서 즐길 수 있는 세상이지만 이 갯장어 샤브샤브는 여수에서만 먹을 수 있으니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밑반찬들도 다 맛있다. 가시가 거슬려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은지 아이들 용으로는 조미김을 내어 주셔서 아이들은 김 싸서 먹다가 마지막에 칼국수를 끓여서 잘 먹었다. 수조에서 헤엄치는 장어들을 보는 미안한 마음을 애써 외면한다.



시부모님께서는 저녁에 크루즈를 타셨는데 아이들이 함께 타기에는 시간도 조금 늦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우리는 경도라는 작은 섬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마을버스 같은 배를 탔다. 미취학 무료, 대인 왕복요금 이천 원이다. 오분 정도면 경도 들어가는데 내리자마자 있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사 먹고 조금 산책하다가 다시 배를 타고 여수로 돌아오는 코스는 아직 어린아이들에게는 크루즈 여행만큼 신나는 배 타기 체험이다. 조타실도 구경하고 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튜브의 용도도 알게 된 소중한 시간.  크루즈 여행은 좀 더 큰 다음에 하도록 하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다. 낭만 포차도 못 갔고, 크루즈 탑승도 다음으로 미뤘다. 하루 종일 들고뛴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아이들이 잠들 때 신랑도 나도 뻗어버려 밤바다 산책도 못했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에 슬퍼지려다가도, 기저귀에 분유, 이유식, 유모차, 아기 담요에 여벌 옷까지 넉넉하게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녀야 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얼마나 편해졌나를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비상용 기저귀에 여벌 옷을 넉넉하게 챙기느라 지금보다 더 번거로웠는데 일 년 만에 개구리가 되었는지 올챙이 적이 생각이 안 난다. 다음 여행에는 조금 더 편해지겠지. 얘들아. 이제 얼른 매운 음식에 눈을 떴으면 좋겠구나.


아름다운 도시 여수. 여수가 좋다. 다음에 여수에 가면 교동시장에 있는 팥죽집에서 팥죽을, 여객터미널 앞에 있는 터미널 분식이라는 곳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숙소 근처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먹어보고 싶다. 작년에 갔던 동네 식당에서 먹은 전복죽과 해물탕도 가격도 괜찮고 맛있었는데 이번에 못 가서 아쉽다. 맛있는 여수, 아름다운 여수. 다음을 기약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버랜드 방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