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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08. 2022

에버랜드 방문기

연간회원 4년 차에도 에버랜드는 즐거워

에버랜드에 가서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려 티 익스프레스를 타고, 후룸라이드 (나이 인증, 지금은 썬더 폴스)로 물벼락을 맞고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넘실대던 시절이 있었다. 십 년 전그랬다. 지금은 애들 때문에도 못 타지만 더는 롤러코스터를 탈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현실의 쫄깃쫄깃함으로도 족하니 굳이 롤러코스터까지 타며 애를 태울 여력은 없다.


에버랜드 연간회원 4년 차이다. 차로 20분 정도면 에버랜드에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어서 자주 다닐 수 있기에 연간회원 가입에 들어가는 큰돈이 아깝지는 않다. 큰 아이가 만 36개월 이 되던 해에 가입을 하여 지금 일곱 살이 되도록 연간 회원이고 그간 방문한 횟수만 어림잡아도 60회는 넘을 것이니 정말 뽕을 뽑고도 남았다. 더 대박인 건, 둘째 아이는 그중에 절반 이상을 무료입장하였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정말 뽕빼는 연간회원 가족이다.


에버랜드의 봄


연간회원 1년 차일 때 코로나가 터졌다. 기나긴 가정보육 시대를 맞이했고, 당시 다섯 살, 세 살이던 아이들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뛰어 놀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때 에버랜드를 정말 많이 다녔다. 세상은 공포와 불신,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지만 에버랜드는 여전히 환상의 나라 그 자체였다. 코로나 초기라 모임이 금지되고, 불안이 팽배하여 외출 자체를 삼가던 시절이었으니 에버랜드는 텅텅 비어 있는 날이 많아서 나와 아이들의 주 활동지로서 아주 좋았다. 때는 봄이었는데 온갖 우울한 뉴스와 어두운 현실, 지치는 육아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다가 에버랜드에 가면 활짝 핀 튤립들이 봄바람에 살랑이며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차가 안 다니는 곳이라 아이들도 맘껏 놀 수 있었다. 사람을 피해 다니긴 했지만 사람이 워낙 없었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 간식까지 대부분 싸서 다녔으니 에버랜드 입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넓고 쾌적한 곳에 우리만의 산책길을 가진 듯 피곤 한 줄도 모르고 에버랜드를 다녔다. 그 해에 스물다섯 번을 갔나 스물여섯 번을 갔나. 그랬다. 어느 날은 동물원을, 어느 날은 꽃밭을, 어느 날은 회전목마를 타고 집에 오는 코스로 한 번 갈 때마다 서너 시간 코스로 잡고 나갔고 오며 가며 차에서 한 숨씩 낮잠을 자면 아이들도 나도 수월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몽키밸리에 가면 침팬지를 볼 수 있는데 아기 침팬지가 갈수록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다. 엄마인지, 아빠인지 모를 어른 침팬지는 언제나 거의 누워서 쉬고 있거나 앉아서 먹고 있는데 아기 침팬지는 한시를 가만있지 않고 줄도 타고 그네도 타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꼭 우리 애들과 나 의 모습 같았다. 조금 아까 분명히 고 있던 아기가 잠깐 사이에 반짝 깨어 재주를 부리고 있는데, 꼭 잠깐 낮잠 자며 고속 충전을 마치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우리 애들 같아서 한참 침팬지 우리를 쳐다본 기억이 있다.


아기 호랑이 두 마리도 작은 아기일 때부터 어린이, 학생 호랑이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꼬마 두 마리가 장난을 치는데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엄마한테 혼난다. 귀엽기만 하던 아기 호랑이가 조금 크니 무서운 맹수의 모습이 보였는데 두 마리가 장난을 치는 모습을 가리키며 저것 봐, 호랑이 싸운다.라고 하자 큰 아이가 싸우는 거 아니야, 노는 거야.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라 보는 관점이 달랐을까, 아님 아이와 어른이라 달리 보인 걸까. 그래. 싸우는 게 아니고 노는 거네.



에버랜드에는 판다곰도 살고 있는데 에버랜드를 자주 다니다 보니 판다곰이 움직일 때, 대나무 먹으러 올 때는 나름 날렵하고 잽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 자는 모습만 보여주는데 앉아서 오물오물 대나무를 먹는 모습, 목욕을 마치고 우리로 들어오며 대나무를 먹으러 갈 때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이 있었던 날도 있다. 그 많던 방문 일중에 하루, 이틀 정도. 판다는 대부분 자고 있다.


사파리도 그렇다. 사자 무리를 보며 아이들이 말했다. 아빠 사자는 맨날 자고 있다고. 아닌 게 아니라 사자 무리에서 수사자만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날이 많긴 했다. 아마 야행성이라 그럴 것인데, 엄마랑 아이들은 안 자고 있는데 왜 아빠만 자고 있을까. 엄마 사자가 잔소리를 안 하나 보지.


에버랜드의 여름. 물총 놀이


놀이기구 타느라 정신없던 젊은 날에는 에버랜드의 꽃밭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다니니 꽃밭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꽃이 그렇게 예쁘다.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어 고맙고, 그렇게 정신없는 곳에서도 잘 자라주니 기특하고, 내일이면 없을 오늘의 모습이 아쉬워서 그렇게 사진을 찍는다. 나이 들면 핸드폰에 꽃 사진밖에 없다더니,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에버랜드엔 극장도 있다. 카봇, 터닝 메카드 등의 만화영화를 십오 분 정도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인데 사실, 아이들 쫓아다니라 에너지를 소진한 엄마 아빠들이 애들 만화 보는 동안 잠깐 눈 붙이고 쉬는 곳이다. 정말 그렇다. 대부분 부모는 눈을 감고 잔다. 아니. 아빠들은 거의 눈을 감고 자고, 엄마들은 거의 핸드폰을 한다. 자는 엄마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아빠들이다. 우리 집 아빠 매우 포함.


에버랜드에는 어린이 모래놀이터도 있다. 모래도 깨끗하고 고와서 다칠 일이 없다.여름에는 옆에 바닥 분수있어 양동이에 물을 길어다가 모래를 적셔 가지고 노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 여벌 옷과 수건을 챙기면 좋다. 흙장난이 뭐라고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다만 먼지가 조금 나는 편인데 미세먼지도 아니고 흙먼지는 코와 폐에서 다 걸러진다 하니, 그리고 가끔하는 모래놀이이니 크게 염려하진 않는다. 미끄럼틀과 놀이터도 아주 멋지게 꾸며져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인데, 우리야 연간회원이라 거기서라도 잘 놀고가면 고맙지만, 모처럼 시간내서 온 가족들은 아이들이 다른 것 구경할 생각을 안 하고 모래놀이에 여념이 없으면 꽤나 애가 타는 모양이다. 그만하고 가자. 로 시작하여 엄마 간다!! 로 마무리 되어 결국엔 애를 들고 가는 것은 만가萬家공통인가보다.  


애를 낳기 전에는 에버랜드에 유모차가 그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 나 놀기에 바빠서 아이들이 지나 가는 것에는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고, 그 뒤를 유모차 밀고 쫓아다니는 부모에는 더욱 더 관심이 없었다. 에버랜드에 오는 아기들, 그러니까 목을 겨우 가눌까 말까 한 생후 몇달 된 아기들은 거의 둘째, 아니면 셋째 라는 것도 내가 갓난 둘째를 꽁꽁 싸매 끌어안고 에버랜드에 다닌 후로 알게 되었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야하니 둘째는 어쩔 수 없이 외출이 너무 이르다. 그것이 운명. 그래서 엄마 아빠의 커다란 가방에는 별게 별게 다들어있다. 아기 분유, 이유식, 간식, 따뜻한 물, 담요, 넉넉게 챙긴 여벌옷, 기저귀까지. 그래서 배고프다고 징징대면, 오후가 되어 날이 쌀쌀 해지면 커다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이든 꺼내어 아이에게 준다. 나도 애 둘을 혼자 에버랜드에 데리고 다니며 가방까지 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조금 덜해졌다.  


에버랜드의 가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에버랜드에 여러 차례 방문해 보았지만 그중 최고는 늦가을이다. 할로윈 장식이 화려하기도 하고 방문객들 중에도 할로윈 코스튬이나 페이스페인팅으로 치장한 사람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에버랜드에 위치한 산자락의 단풍도 절경인데, 에버랜드 안에 있는 뮤직 가든이라는 곳에 저녁 무렵에 가면 잔잔한 음악과, 붉게 물드는 노을, 그리고 빨갛게, 노랗게 찬란하게 무르익은 가을 풍경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온유 해지며 사랑이 가득 해 지는 곳. 낙엽을 밟는 바스락 거리는 느낌과 사각 거리는 마른 잎 소리도 듣기가 좋다. 아이들도 앞으로 냅다 달리다가도 도로 뒤돌아 달려와 엄마 손을 잡고 말없이 걷기도 하는 곳이다.


에버랜드에 사람이 많아져 좋은건 딱 하나. 팝콘이 더 맛있어졌다는 것. 회전율이 좋아 그런지 바로 튀긴 것을 사 먹을 수 있어 정말 맛있다. 이 집 팝콘 최고.


코로나 첫 해, 첫 봄에 텅텅 비어 있던 에버랜드가 작년 가을부터, 아마 기나 긴 거리두기에 지치고 해이해졌을 무렵부터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아졌는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올해는 정말 코로나 이전을 완전 회복한 듯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없을 뿐 단체 관광도 재개되어 무리 지어 오는 사람들도 다시 많이 생기고, 몇 년간 참았던 소풍이며 현장학습으로 선생님 따라온 학생들, 아이들도 많이 보인다. 일상 회복, 반갑지만 사람이 많아진 에버랜드가 서운하기도 한 양가감정을 느낀다. 나도  참 웃기다. 나는 정말 에버랜드를 우리 집 정원처럼 생각한 걸까.


에버랜드의 겨울. 코로나, 한파, 미세먼지로 정말 텅텅 비어있던 날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연간회원 5년 차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에 그만한 곳이 없다. 오며 가며 들리기도 좋고 자주 가도 갈 때마다 즐거우니, 아직 아이들이 어려 소인 가격에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다녀 두려 한다. 아직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다니는 아이들이니, 더 크면 돈만 주면 되지 굳이 내가 쫓아다닐 필요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오늘은 케리비안베이의 야외풀을 까페로 꾸며놓은 곳에 다녀왔다.  너무 예뻐서 조만간 또 가려 한다.


신랑한테 물었다. 여보, 애들이 크면, 우리 둘이 에버랜드에 올 일이 있을까? 대답은 단칼에 아니.

그래. 지금을 즐기자. 애들이 우리 손 잡고 다녀줄 때에, 두 다리 튼튼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오늘을.  

에버랜드는 갔다 하면 기본이 만보, 이만보까지는 보통으로 걷고 온다.


우리 가족의 어느 가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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