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Oct 23. 2022

영종도 나들이

주말에 뭐하지.

주말에 뭐 하지는 오늘 뭐 먹지와 거의 비슷한 난이도의 고민이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 뭐 먹지는 매일 하는 고민, 주말에 뭐 하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고민이랄까. 주말이 쉬는 날이 아니게 된 지는 아이를 낳고 나서 쭉, 그러니까 7년 차이다. 주말에 뭐하지를 고민하는 건 양육자로서 아이들에게 주말에 어디 좋은 데를 데려가고 재미있는 걸 시켜줘야 한다는 마음을 떠나서 애들 데리고 집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 가는 것도 힘들지만, 집에만 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계속 엄마 엄마 아빠 아빠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아침 먹고 치우고 점심 먹고 치우고 저녁 먹고 치워야 하는 일이 힘들어 가까운데 어디라도 나갈 수 있으면 나가는 게 좋다. 우리 집은 그렇다.

물감 풀은 것 같은 파란 하늘


이번 주말도 뭐하지를 무척이나 고민한 주말이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고, 날씨도 좋으니 가까운 곳이라도 나가볼까 하는데 영종도에서 세계 음식 문화 축제를 한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 보기로 하였다. 마침 유치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 프로젝트를 하며 다른 나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이차저차 잘 되었다 싶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축제라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축제가 새로 열릴 만큼 코로나로부터 일상이 회복되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좋았다.

행사장 구경


집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 터라 주차의 늪을 지나 천천히 행사장에 도착하니 세시 정도였다. 한국의 의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곳, 각종 예식에 관한 소품과 설명이 쓰여 있는 곳, 각 나라의 전통 의상, 기념품 등을 가까이서 보고 만져볼 수 있는 곳들이 있었고, 간단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부스들도 많았다. 터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다른 곳을 먼저 둘러보기로 하였다. 일본 부스에는 포켓몬 도감 책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 책이 있으니 반가워하는 아이들이다. 책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첫째가 이 포켓몬이 우리 집 책에는 오른쪽에 있었는데 이거는 왼쪽에 있다 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다 그런 것 같다고. 일본 책은 우리나라 책이랑 보는 방향이 반대라서 그런가 보다. 표지도 뒤에 있는 것을 알려주고 책 보는 방향을 설명해주니 신기해한다.


한쪽에는 먹거리 부스들이 있고 청년몰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전국의 시장 맛집들이 플리마켓처럼 참여하고 있어 간식거리를 사 먹기가 좋았다. 아이들이 아빠와 화장실에 간 동안 그 부근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데 어느 부부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저기 견과류 가게에 가서 뭐 좀 사 오라고 했는데 남편이 견과류를 사 온 모양이다. 아내는 이거 아몬드 집에도 잔뜩 있고 애들도 안 먹는데 강정을 사 와야지 이걸 사 왔다고 당장 교환해 오라고 화를 내고 있었고, 남편은 견과류 가게에서 뭐를 사 오래서 견과류를 사 왔는데 혼이 나니 무척 억울해 보였다. 우리 집 보는 것 같아서 지나가며 속으로 웃었다. 우리 집도 그런다. 남편한테 알아서 사 오라고 하면 항상 뭐가 이상한 것을 사 온다. 품질이 별로라던지, 비싼 걸 고른다던지, 많이 사 온다던지, 적게 사 온다던지, 있는 걸 또 사 온다던지, 그렇다고 전화해서 일일이 물어보면 하나하나 다 물어본다고 내가 신경질을 내니, 알아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일이 물을 수도 없는 딜레마가 있는데 집집이 다 똑같구나 싶었다. 남의 집 일이라 그런지 그 혼나는 남편에게 괜찮다고 힘을 주고 싶었다. 내 남편이었으면 속 터질 일이지만.


영종도에서 월미도로 가는 배.


네시쯤 되니 여러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들이 문을 닫는 파장 분위기라 아쉬웠다. 일찍 올 걸 그랬다. 세계 음식 부스들도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는데 아프리카의 한 부스에서 아직 코코넛을 팔고 있어 하나 사 먹어 보기로 했다. 나도 코코넛은 처음 이다.  달고 맛있던데 아이들은 맛이 없다 한다. 생수도 아닌, 음료수도 아닌 맛이 어색한 모양이다. 열대지방에서 목마를 때 먹으면 정말 좋겠구나 싶었다. 여름 한철만 더운 우리나라보다 일년내내 더운 지역에서 꼭 필요한 열매 아닐까. 자연의 섭리가 신기하다.


코코넛은 신기하지만 맛이 없었다고 합니다.


영종도 바닷가를 구경하는데 저쪽 바다 건너로 월미도가 보인다.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데 바다 건너는 다리가 없어 돌아가는 육로로 가면 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길 검색을 하다 보니 영종도 여객터미널에서 월미도로 가는 배가 있었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20분 정도 배를 타니 영종도에서 월미도에 도착한다. 저녁시간이라 칼국수와 물회, 떡볶이로 식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왜 바닷가에서는 칼국수만 먹냐 하는 아이들, 지난번에 제부도에 갔을 때도 칼국수를 먹은 것이 기억난 모양이다. 바닷가에서 구할 수 있는 해산물, 특히 바지락 같은 조개를 넣고 칼국수를 끓이면 맛있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우리 동네는 바닷가도 아닌데 칼국수집 많잖아라고 받아치면 뭐라 대답하나 조마조마했다.


영종도의 낮풍경, 월미도의 밤마실.


오늘 하루 잘 놀았다. 다음 주에는 또 뭐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하루 잘 놀은 걸로 닷새는 버텨낼 수 있겠다. 오늘 뭐 먹지 <=> 주말에 뭐 하지 뭐가 더 어려운 고민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여수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