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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31. 2022

충남 공주 방문기

켜켜이 쌓인 역사를 만나며.

 유치원 세계 여러 나라 프로젝트 전시회 준비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큰 아이의 반은 이집트를 담당해서 그런지 매일매일 큰 무덤 타령이다. 피라미드, 파라오, 그러다가 타지마할도 큰 무덤이지, 모아이도 무덤이야? 를 묻는다. 이런 큰 무덤을 보려면 몇 시간 비행기 타고 가냐 해서 우리나라에도 큰 무덤이 있다고 보러 가기로 하였다. 경주에 가고 싶었는데 거리멀어 당일 치기가 힘들어서 공주 무령왕릉으로 정했다. 미라는 없지만 단풍이 있으니 가을 주말 나들이로 괜찮겠지 싶어서.


공주가 알밤이 유명한 곳인 건 알고 있었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공주 휴게소를 들른 적은 몇 번 있지만 공주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령왕릉도 처음이었는데 입구부터 꽃장식이 예쁘게 되어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꿀벌과 나비들이 많이 날아다녀서 깊은 가을이지만 꼭 새 봄의 느낌이 나기도 했다.  매표소 근처에 있는 진묘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들, 무덤을 지키는 환상의 동물, 상상 속의 동물이라 한다. 옛날에는 죽은 다음에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라고 예쁜 물건들, 보물들, 무덤을 지키는 동물들을 함께 묻은 거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아직 이해가 힘든 듯했다. 환상의 동물, 상상 속의 몬스터, 포켓몬과 비슷한 거라고 퉁쳐서 설명해 주었는데 그건 이해했을까.



 실제 고분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왕릉 전시관이 마련되어있어 아이들이 똑같이 재현한 벽돌무덤에 들어 가 볼 수 있었다. 무덤을 짓는 과정을 터치 스크린으로 체험하고 귀걸이, 신발, 왕관 등의 전시품을 구경하고 진짜 왕릉 산책을 했다.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가야 해서 조금 힘들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은 실제 무덤을 본 적이 없다. 호국원이나 납골당에 가 본 적은 있지만 묘지에 가본 적이 없어서 일반 무덤이 얼만한지, 그래서 이 왕릉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에 대한 체감을 못 하는 듯했다. 너른 잔디밭으로 보이는지 자꾸만 들어가서 뛰어다니려 한다. 아빠의 제지가 이어진다. 들어가면 안 돼, 무령왕이 나와서 누가 내 무덤 밟았니? 이놈들!! 그러시면 어떡할 거야? 찌릿. 그게 아니고, 아이들이 이 무덤 위에서 다 뛰어다니면 이게 보존이 되겠니, 다 망가지면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망가지는 거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되는 거니까 뛰어다니면 안 되는 거지, 하고 세 남자에게 전한다. 애들 아버님은 가끔 이상한 논리를 아이들에게 펼친다.



 무령왕릉 주변에 성당이 있는지 산책하는 내내 주일 미사의 성가 소리가 들려서 기분이 묘했다. 1500년 전의 왕릉에서 성가를 듣다니 말이다. 근처에 천주교 순교 성지가 있어서 한국 천주교의 역사 탐방지로서도 공주는 가 볼 만한 곳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여러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고장에 가 보는 의미가 있었다. 공주는 선사시대 유적지부터, 백제의 유적지, 고려 시대의 망이 망소이의 난, 조선시대에는 순교의 역사가 담긴 곳, 지난번에 읽은 박완서 선생의 수필의 한 대목처럼 정기가 서린 고장이었다. 여러 사연들이 서리서리 머무는 곳, 그것이 공주의 정기가 되어 지나가는 나그네인 나의 심금을 흔들었다.   



우리 동네에서 두 시간 남쪽으로 내려갔을 뿐인데, 공주는 아직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고 초록 은행나무, 노란 은행나무가 섞인 초가을의 느낌도 있다. 지대가 높은 곳에는 단풍이 완연하고, 밑에 내려오면 아직 초록인 나무들,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하다가도 햇볕으로 나오면 조금 더운 날씨에 산책하기는 아주 좋았다. 여러 계절이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다가, 꽃밭에 날아다니는 호랑나비를 관찰하고, 코스모스를 구경하다가,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날씨, 그러다 그늘에 앉으면 찬기가 들어 겉옷을 걸친다. 아름다운 가을날.



 오후엔 공산성에 올라갔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한 고장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아서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아이에게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우리 용인시의 할미산성처럼, 이곳도 적들을 막고 싸워서 이기기 위해 만든 성이라고 알려주었다. 적과 싸운 다는 것,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언뜻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다. 그저 역사는 승리와 패배의 결과와 군사 몇이 죽고 다쳤다고 기록하지만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이 이런 무미건조한 글자로 기록된다면, 하고 상상하니 문득 서럽기도 했다. 견훤과 궁예는 이름이라도 남았지만 그저 스러져 죽었을 군사들의 죽음에 잠시 애도의 마음을 가졌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물으니, 그저 오늘의 나들이를 짜장면 먹은 것, 솜사탕 먹은 것, 꿀벌과 나비를 관찰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좋다. 이 날은 너희들 마음속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꼭 지식이 아니더라도 삶의 어느 순간에 대 방출될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으로, 가족과 함께 했던 추억의 편린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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