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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18. 2022

이모, 안녕.

어느 좋은 가을날에.

 이모의 부고를 받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 엄마에게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며 늙은 호박을 보내 우리 가족의 가을철 먹거리를 풍성하게 해 주던 그 이모였다. 패혈증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집중치료실로 옮기셨다는 얘기를 들은 지 나흘만 이었다. 이모는 엄마의 네 자매 중 두 번째로 하늘나라에 가게 되신 막내이다.


우리 집 늦둥이인 나는 이모네 집에 가도 막둥이였다. 어릴 적 지방 사는 이모가 어쩌다 집에 오시면 다 큰 나를 업고 저 밑에 쇼핑센터로 내려가 핫도그를 사 먹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내가 좋아하는 통닭 매일 사 줄 테니 이모네서 같이 살자 해도 내가 도리도리 하니 에라이 요년아 하고 꿀밤을 먹이던 일도, 이모 집에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잔뜩 해 놓고 옆에서 조기 발라주고, 더덕 구워 주며 먹이고 먹이고 또 먹이던 이모를 기억한다. 이모는 허식이 없고 다정하였다. 내가 둘째를 낳고 집에 있을 무렵, 아기가 돌 조금 안 되었을 때 딸기 네 팩이 들은 커다란 한 박스를 안고 우리 집에 오셨다. 그때는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이라면 다 아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라 나도 아기를 먼저 보여드릴 생각에 왼팔로 아기를 안고 오른손으로 문을 열어 드리니 아기보다 나를 끌어안으시며 잘 있었니, 고생한다, 고생했다 하셔서 얼떨떨했던 기억이 있다. 꼬물거리는 보얗고 예쁜 아기를 제쳐놓고 한풀 꺾이고 한소끔 늙어 부석 해진 나를 먼저 더 귀하게 안아 준 사람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러던 이모가 위독하단 소식이 전해진지 며칠 만에 부고를 들었다. 집중치료실에 계셔서 면회도 못 가본 채로 장례식을 갔다. 이모의 영정사진은 내가 기억하는 이모의 젊은 모습이었다. 최근 사진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나는 내 기억 속 이모를 만난 것 같아 더 좋았다. 이모에게 향을 올리고 절을 했다. 무슨 나한테 절을 하냐고 됐다고 저리 치우라고 손사래 치는 이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너는 왜 그렇게 더 말랐냐고 밥 좀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아 장례식장 식당에 앉아 밥을 먹었다.  원래 나는 조문을 가면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낯선 사람들이 많고 마음이 편치 않아 밥이 도통 넘어가질 않는 경우가 많았다. 깨작대다 남기는 것이 더 미안해서 식사에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조문을 마치면 바로 나오거나, 지인이 있으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오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모의 장례식에서는 꼭 이모가 차려주는 마지막 밥인 것 같아 밥을 꼭꼭 씹어 골고루 다 먹었다. 이모가 해 주는 진미채며 무말랭이 같은 밑반찬은 우리 엄마의 것보다 더 맛있었다. 들어가는 것도 별 것 없는데, 더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모는 이가 성치 않아 제대로 간도 못 보면서 해주는 음식들인데도 옛날과 다름없이 맛있었는데 이젠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참으로 힘들고 기구한 인생을 살고 간다며 엄마는 동생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계신다. 나는 어려서 잘 몰랐던 일들이 많이 있나 보다. 나는 맛있는 것 많이 해 주고, 살갑고 다정하던 이모만 기억한다. 이 갑작스러운 이별이 슬프다. 이모는 이년아 저 년아 욕을 해도 참 기분 좋고 정겹던 사람이다. 욕을 먹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건 상호 간에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 막둥이라서 이모와 가장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나는 가장 농축된 사랑과 욕과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었다.  이모가 마련해 준 장례식장 밥을 먹으며 이젠 어디에 조문을 가도 밥을 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인이 되신 분께서 마지막으로 대접해 주시는 식사이고, 경황없는 상주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밥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오늘 미사에 가서 이모를 위한 초를 켰다.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지만, 이모는 성당에 잘 가지 않으셨는데 이모의 납골함에 2022.11.15. 선종이라고 쓰였다. 선종(善終)은 천주교에서 큰 죄 없이 살다가 복되게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모가 임종 전에 대세라도 받으셨는지 모르겠다. 선종, 착한 삶과 복된 마무리. 언제나 다정하고 살가웠던 이모, 돌아가심으로써 사촌과 자매들 간에 끈을 더 단단해 매어 주고 가신 이모에게 가없이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착하고 복되신 분, 막내 이모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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