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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07. 2022

일곱살 아이의 영어공부

엄마표, 수제, 연필, 공책. 

큰 아이와 영어 공부를 시작 한 지 일년 정도 지났다. 여섯 살에 한글공부를 정식으로 시작하며 영어는 학교 가기 전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는데 자기가 먼저 엄마와 영어공부를 해 보겠다 하여 생각보다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진짜다) 아마 이런 저런 영어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도 있고, 유치원 자체의 영어 수업도 일주일에 한 두 번 있다보니 관심이 가기 시작 했을 것이고, 마침 엄마가 영어 강사 출신이니, 엄마랑 한 번 해보겠다고. 


마법의 단어. 똥. 여기저기 발견된다. 알파벳을 맨 종이에 먼저 익혔다. 


나는 영어는 전공도, 유학도 경험이 없는 그냥 토박이인데 언어에 재능이 있는지, 학교 다닐 때 내신과 수능영어를 곧잘 했었고 토익 시험도 당시 흔치 않은 고득점을 받아 영어 신동, 은 아니고 그냥 시험 신동 정도의 실력과 감이 있는 사람이다. 어학원에서 초중등 대상으로 강의를 했었고 고등 과외까지 경험이 있고 심지어 어른도 가르쳐봤는데, 유감스럽게도 유아 영어는 경험이 없다. 영어 유치부가 딸린 어학원이었는데 유치부 선생님들 대단하다는 생각 빼고는 유아 영어교육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저 천둥벌거숭이 마냥 펄떡 거리는 작은 생명체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 때는 바야흐로 꼬마애들이 줄서서 지나가는 것만 봐도 기가 빨리던 아가씨 시절이었으니.


동생이 머리 밀기로 방해를 하지만 그래도 한다. 기특한 형아. 얼른 끝내고 놀았으면 좋겠는 아우. 


일단 그냥 연습장에 알파벳 음가와 쓰기부터 시작했다. 아이의 집중력은 십분 남짓이고 교재부터 시작하면 교재의 휘황찬란함에 정신을 빼앗겨 원, 투, 쓰리, 원, 투 하며 쓰는 연습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한글 가르치며 알게 된 후였다. 그래서 맨 종이에  A 부터 Z까지, 음가와 대문자, 소문자를 아이는 의외로 금방 익혔다. 읭? 하다 어려워 하면 안 할라고 했는데 이거 일이 생겨버렸군. 


그 다음부턴 교재로 시작이다. 가장 흔한 파닉스 교재를 준비했고, 메인 교재를 다 하고, 워크북으로 복습하는 식으로 공부 해 나갔다. 엄마와 이미 연습장에서 음가와 알파벳을 익혔으니 교재는 아이에게 너무 쉽고 재밌는 책이 되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이 되었다. 큰 어려움이 없으니, 작은 어려움을 조금씩 추가하는 방법을 썼다. 1권 교재는 스스로 풀게하고 2권의 내용을 미리 가르쳐 주는 것. 알파벳을 한 글자씩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세글자를 조합하여 단어를 읽고 쓰는 건 어려워 하였지만, 그래봐야 5분을 넘기지 않는 일이니 어려워도 참고 하도록 하였다. 엄마와의 영어 공부는 영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도 참는 법, 힘들어도 해 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나와 아이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전치사는 지도로, 가산 불가산 명사는 그림으로, 인칭대명사는 가족 캐릭터로 공부했는데 다시 까먹었다. 수제 교재의 흔적들.


그렇게 교재 1권을 마쳐갈 무렵이 되니 2권의 내용을 미리 배워 알게 되었다. 어느새 아이는 2권 교재를 어렵지 않게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유식해졌다. 같은 방식으로 4권, 5권까지 진행을 하며 틈틈히 엄마표 영어글쓰기나 쓰기 교재를 사용 하기도 하였다. 우리 아이는 발음이 좋지 않고, 흔히 말하는 센스나 눈치가 부족하다. 하지만 끈기가 있고 잘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영어 챈트나 노래를 따라하는 것을 어려워 하고 쑥쓰러워 하고 싫어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영상을 틀어 놓는 것도 싫어한다. 안 볼테니 TV를 그냥 끄라고 하는 아이이다. BGM으로 영어를 흘려듣기 하는 것도 싫어한다. 시끄럽다고, 종이 접기 하는데 방해되니 끄라고 한다. 그냥 공부 하는 시간에 열심히 공부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영어를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연필로 공부했다. 온갖 영상과 음원, 패드와 디지털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굳건히 자신의 방식을 지키는 아이. 영상 보기와 음원 듣기는 안 해도 좋으니 엄마 따라서 또박또박 읽는 것은 꾸준히 시켰다. 소리를 내 뱉는 건, 싫어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정확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 들리지도 않는다. 


어제 쓴 일기. 잘 따라 읽는다. 

학교 가기 전에 파닉스 5권까지 마치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 목표를 지난 여름에 이미 달성해버려 요즘은 단어 공부와 영어 책 읽기, 파닉스 복습을 랜덤으로 하고 있다. 영어 문장력은 아직 없어 영어 글쓰기는 전적으로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틀을 잡아주면 단어를 채워 넣는 정도이다. 그래도 싫다 소리 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기특하다. 영어로도 가끔 일기를 쓴다. 아직 어리고 어렵지만 그래도 한다. 영어 공부의 최종 목적지는 에세이쓰기 인데 문법과 단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쓸 말이 없어서,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서 어려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쓸 말이 없고,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건 한국어와 글쓰기의 문제이지 영어와는 상관이 없다. 글쓰기를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어, 영어, 하는 세상에서 다행히 나는 크게 영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특별한 사교육을 받은 건 아닌데 내가 영어를 좋아하다 보니 성적이 좋았다. 영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왜 모든 사람들에게 영어를 잘 하라고 할까. 만약 세상이 영어가 아닌 그리기, 노래하기, 달리기, 멀리 뛰기, 이런 것들로 평가 하고, 취직하고, 돈을 번다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잘 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느다면 얼마나 웃길까. 영어라고 그것들과 뭐가 다를까 하고 말이다. 달리기가 성공의 지표였다면 나는 진작에 도태되었을 것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었고, 지금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영어, 영어 하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웬만한 소통은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로 가능 하고, 그 외의 전문적인 것들은 전문 통번역사가 하면 되고, 철저히 개인의 필요나 선호에 의해서 영어를 하거나 말거나 자유로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에게, 그것도 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에게 매일 영어공부를 시키며 할 소리가 아니지만 진심이다. 내가 아이와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도 영어만을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기 싫어도, 어려워도 참고 견디며 결국엔 해내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사실 내가 도를 닦는 과정이다.)


최근엔 디즈니 영어동화를  스케치북에 엄마가 쓰고 아이와 읽으며 그림을 그렸다. 프린트해서 붙혀도 좋았는데 굳이 왜 쓴건지. 내가 고생을 사서 했다. 믿기 어려운 도널드 덕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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