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고맙구나, 비좁은 사육통에서 잘 살아줘서.
작년 여름부터 올 초가을까지 삼대에 걸쳐서 키우던 장수풍뎅이가 수명을 다 했다. 마지막 삼대 풍뎅이는 알을 낳지못 하고 생을 마쳐서 대도 끊긴 마당, 이제 풍뎅이는 그만 키우자 하고 사육통을 베란다 저 쪽으로 치워 두었는데 의외로 순순히 그러자 하고 사육 통과 풍뎅이를 찾지 않는 걸 보니 정말 풍뎅이를 보내주어도 될 것 같다.
내가 곤충을 키울 거라고는 정말이지 생각도 못 했다. 서울은 아니어도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에 주로 살았던 나는 사람과 강아지 정도만 어울려 살 줄 알았지 그 외의 것들에겐 거부감이 심했다.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그다지 즐기는 즐기는 편도 아니라 가끔 산에 가면 보이는 곤충, 벌레들도 무섭다. 아, 길거리에서 보이는 비둘기나 참새도 무서워한다. 푸드덕 거리며 나에게 달려들 것 같은 이상한 공포가 있어서.
아이들 키우는 집에선, 특히 아들 키우는 집에선 통과의례처럼 장수풍뎅이를 키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냥 한 귀로 흘려버렸다. 난 못 키워. 그런데 아이가 친구에게 사슴벌레를 선물로 받아오는 바람에 곤충 사육이 강제로 시작되었지 뭔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큰아이가 여섯 살, 여름이었고,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선생님께서는 난처함이 깔린 상냥한 어투로 어머님… 아이들끼리 약속을 한 모양인지 사슴벌레를 선물로 주고받겠다고 가져왔는데 보내도 될까요. 이미 가져와서 눈앞에 보였는데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어서 기쁘게 받았다. 사실 기쁜 척이었다. 하나도 안 기뻤다.
사슴벌레를 보낸 친구의 엄마는 정성스럽게도 손 편지에 아이들끼리 약속을 한 모양이라 보낸다, 저희 집엔 사슴벌레며 장수풍뎅이의 애벌레와 성충까지 많으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고 원치 않으시면 돌려보내셔도 된다고 연락처까지 적어 주셨다. 통과 의례라면 이 시기를 보내는 수밖에. 그렇게 덜프 (사슴벌레라서 루돌프에서 따온 이름) 키우기로 시작된 곤충사육은 곧 장수풍뎅이 3령 애벌레를 분양받아 키우기로 이어졌다. 애벌레가 1령, 2령, 3령까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3령 애벌레는 곧 번데기 방을 만들고 번데기가 되었다. 번데기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꿈틀꿈틀 움직이기도 하였다. 내 눈에도 너무 신기했는데 가까이 가진 못 하고 신랑이 주로 아이들과 흙도 갈고 먹이도 주며 관찰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애벌레는 살살 만져도 되지만 번데기 방에 들어가면 만지면 안 된다고 한다. 잘 못 하면 기형인 성충이 될 수 있다고. 모르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찰한 첫 번째 애벌레 번데기는 날개가 살짝 덜 빠진 기형 암컷으로 나왔다. 나중에 알고는 어찌나 미안하던지.
첫 애벌레 사육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매일 통을 뒤집어 관찰하고 싶어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제한을 뒀고 어느 주일에 열어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성충이 되어 있었다. 언제 그렇게 혼자 큰 건지,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애들은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고 안고 업고 어르고 그래도 어른이 되기 힘든데, 넌 어떻게 그렇게 혼자 성충이 되었니.
뿔이 없는 암컷이니 뿔 달린 수컷을 분양받아 암수 풍뎅이로 키우기 시작했다. 짝짓기를 하면 알을 많이 낳을 거라는 것에 지레 겁이 났다. 집에 애벌레가 우글거리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데 날이 추워지기 시작한 가을이라 어디다 방생하기도 미안하고 이걸 어쩌나.
풍뎅이는 야행성이다. 주로 아이들이 잠든 열 시 반에서 열한 시쯤부터 땅에서 올라와 좁은 사육통을 돌아다니다가 어쩌다가 날기도 한다. 그 사육통 앞에서 나는 핸드폰 들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나는 장면을 촬영하여 그다음 날 아이들에게 보여 주곤 했다. 내가 한 밤중에 풍뎅이 쳐다보고 있을 줄이야. 정말 별일 다 겪는 아들 키우기구나.
야행성이라는 습성이 참 신기했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보장되고 때 되면 먹이 넣어주며 천적도 없는 곳에 살다 보면 타성이 생기고 게을러져 천성을 거스를 법도 한데, 학교 잘 다니다가 방학만 해도 낮밤이 바뀌는 우리네 아니던가. 그런데 얘네들은 일평생 방학과 같은 사육통에 살면서도 야행성이라는 습성을 버리지 않았다.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초심을 버리지 않는 모습. 배워야 하지 않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사육통 안에 비비탄 같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알이었다. 처음 하나 봤을 때는 정말 신기했는데, 이게 정말 채집을 하면 할수록 계속 나오니 당혹스러웠다. 채집하는 대로 큰아이 친구들에게 분양도 하고 작은언니가 일하는 어린이집에 기증? 도 하고 매일 숟가락 두 개로 흙을 파며 알 채집을 하면서 이건 또 뭐 하는 건지. 다행히 여기저기 분양한 풍뎅이 알은 대 환영을 받았고, 부화하고 애벌레로 자라면서 아이들에게 한살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중간에 죽은 알들과 애벌레도 많다. 그렇게 알을 많이 낳아도 성충으로 자란 풍뎅이는 많지 않은 걸 보면 이 또한 자연의 섭리 인가보다.
그렇게 우리 집엔 일 년 동안 삼대에 걸친 풍뎅이가 살았다. 장수한다고 해서 장수풍뎅이라는데 성충으로 사는 기간은 길어야 4개월 정도이고, 알에서 성충까지 되는 기간이 9개월 정도 되는 것 같다. 날씨가 추운 가을 겨울보다는 봄 여름에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잘 크고 잘 자란다고 하고, 3령 애벌레를 잘 살펴보면 반달무늬가 있는 것이 성충 수컷의 뿔이라고 하고 반달무늬가 없으면 암컷이라 한다. 번데기가 되면 만지면 안 되고, 성충으로 나와도 열흘 정도는 땅속에서 경화라고 몸을 단단하게 굳히는 기간이 필요하다 하는 것들도 배웠다. 애들은 어떻게 다 알고 있는지 정작 배운 사람은 나이다. 이제 아이들은 풍뎅이 사육통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베란다에 치워 두었는데도 찾지 않으니 곧 버릴 생각이다. 아들 키우는 집은 꼭 한 번 거치게 된다는 곤충 사육, 통과 의례라던 그 기간 또한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도 배운다더니 정말 그랬다. 내가 배웠다. 곤충의 한살이에 대해서.
뽀로로, 미니 특공대, 카봇, 장수풍뎅이, 이렇게 다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들을 보냈다. 지금은 포켓몬인데 포켓몬의 시기는 과연 끝날 것인가. (힘들듯)
애벌레가 싼 똥이 들은 흙이 그렇게 좋은 거름이라 한다. 모르고 그냥 버렸는데 화초 키우는 엄마 갖다 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