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네 살 때부터 엄마 옆에서 마늘을 까던 아이였다. 손이 빨개진다고 하지 말라 해도 옆에서 참견을 해야 직성이 풀렸는지 마늘 다 까는 동안 옆에서 붙잡고 있더라고. 다섯 살 때는 사과를 한 조각 깎았는데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었는지 사과가 미지근해졌다 한다. 모두가 먹기를 거부한 그 사과는 아빠 입에 들어갔다. 타고나길 음식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지던 아이였나 보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라면, 계란 프라이로 시작해서 떡볶이, 쫄면 등으로 내가 만들어 먹는 음식의 범위가 넓어졌고 엄마가 파이 가게를 하실 때에는 조수 노릇도 곧잘 했으니.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내가 나 먹을 것, 아이 먹일 것을 매일매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된 후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안 먹어도 그만인데 아이는 먹여야 했으니, 게다가 그 아이란 놈은 2.3킬로의 저체중아 출신으로 신생아 때부터 먹는 것보다 남기는 것이 많은 입이 지독히도 짧은 작은 사람이었다. 맛있게 먹어주면 그나마 힘이 날 텐데 남길 것을 뻔히 알며 아이 밥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내가 만든 밥이 맛이 없어 그러나 싶어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요리 책도 기웃거렸지만 그것과 똑같이 만들 자신이 없었다. 재료를 구비하고 계량을 하고 조리 시간과 조리법을 지키는 일이 나에게는 더 어려울 것 같아 기웃거리다 말아버렸다.
문제는 이 밥이란 걸 내 남은 인생의 상당 시간 동안 해야 할 것이라는 건데, 지금 어떤 요리법으로 무슨 요리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어떤 마음으로 앞으로 들이닥칠 수많은 끼니들을 차려 낼지가 더 중요했기에 수백 가지의 반찬 하는 법을 망라하고 있는 요리책 레시피북을 덮어두고 요리 에세이를 몇 권 읽었다.
기억에 남는 책은 몇 년 전 읽은 식품 MD 출신 김진영 작가의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그리고 얼마 전 읽은 박원숙 선생의 따님이신 호원숙 작가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라는 책이다. 두 책 모두 정확한 계량이나 만드는 과정을 담은 사진이 담겨있진 않다. 하지만 읽다 보면 참기름을 발라 소금을 뿌려 김을 굽던 우리 엄마가, 명절이면 몇 다라이씩 녹두전을 부치던 광경이, 식구들 다 같이 모여 빚어 먹었던 만두의 모양이, 아빠의 월급날, 아빠가 사들고 올 통닭을 기다리며 참았던 배고픔이, 엄마 손잡고 나간 시장통에서 사 먹었던 길거리 간식의 추릅 추릅함이, 쉬는 시간에 까먹었던 도시락의 반찬 냄새가, 밥솥의 밥을 탈탈 비워먹었던 친구네 집밥에 대한 기억까지 떠오른다.
나의 두 아이들이 내가 차려주는 밥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차리는 밥은 맛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내 나름의 최선을 다 하고는 있지만, 냉동식품과 밀키트가 워낙 잘 나오는 세상인지라 남의 손 아닌 남의 손을 빌리는 날도 꽤 되고 나도 내 계량이 없다 보니 같은 음식이라도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전 부치고 튀김 하는 기름 냄새를 맡을 때에, 오븐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빵 냄새나 황홀한 버터 냄새를 맡을 때에, 크리스마스며 부활절, 핼러윈 시즌이 다가올 때에 엄마가 해 주었던 음식들, 함께 만들었던 빵과 과자들을 떠올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스치듯 지나가는 냄새라도 마치 마법과도 같이 여러 기억들을 한꺼번에 소환하는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힘이 들 때, 우리가 함께 밥을 먹은 이 순간을 떠올리면 좋겠어."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中.
"엄마의 치맛자락에 늘 희미하게 배어 있던 음식 냄새는 여지껏 나를 지탱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사랑의 힘이 되었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中
내가 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책 속에서 찾았다. 밥은 키 크고 살찌는데 필요하지만, 밥 먹은 기억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데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 둘의 유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의 밥상은 아직 막대한 나의 영향력 아래 있다. 고로 나는 이 작은 사람 두 명이 키 크고 살찌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며 힘든 순간을 이겨낼 밥상과 그 기억을 차려내는 중이다. 앞으로 클수록 바깥 밥, 대기업의 밥을 더 많이 먹게 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가 내게는 더 소중한 이유이다.
오늘도 밥 하기는 싫다. 언제나 싫다.
나의 상차림을 사진을 찍어 올리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내가 음식을 꽤나 잘하고 즐겨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난 밥 하기가 너무 싫다. 하지만 한다. 그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