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Nov 02. 2022

작품 뽐내기

유튜브에 내가 나오니 정말 좋은가 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하는 노래가 있다. 언제 나왔는지,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나 어릴 때도 불렀고, 내 아이들도 부르며 자랐으니 꽤나 전통 있고 신빙성 있는 노래이지 싶다. 나는 컬러 티브이 세대이고, 집집이 티비가 한 대 씩 있는 시대를 살았지만 텔레비전에 내가 나올 일은 거의 없었던 세대이다. 그 시절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다면 정말 어땠을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 또래의 아이들은 거의 아역배우들이었는데 올망졸망 예쁜 얼굴로 주로 사극에 나왔던 것 같고 어른들의 눈물샘을 쥐락펴락 하며 저것 참 신통 방통 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정말 텔레비전에 내가 나올 일은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자주 텔레비전에 나온다. 휴대폰의 영상이나 사진을 텔레비전으로 자주 본다. 휴대폰 속 영상이 티비의 큰 화면으로 재생이 되면 더 신나 하긴 한다. 나는 지나가는 모습으로라도 찍힌 내 모습이 내가 원래 저런 모습인가 싶을 때가 많은데 아이들은 나보다 더 제 모습이 익숙한가 보다.  39년 살은 나는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을 애써 외면하고 싶을 만큼 내 모습에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아이들은 화면에 보이는 제 모습, 남의 모습을 모두 좋아한다. 이상하다. 나는 안 예쁘게 나온 사진이 많은데, 애들은 안 예쁘게 나온 사진이 하나도 없다. 순간 캡처도 굴욕이 아니라 시선강탈의 귀여움이 되니 그저 부럽다. 

 

지난번에 종이접기 유튜브 선생님의 이메일로 응모한 작품 뽐내기가 당선되었다. 미리 이메일로 동영상 업로드 일정을 공지받아서 오늘만을 손에 꼽아가며 기다려 드디어 영상을 보았다. 합체로봇과 형제의 사진이 나오는데 정말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 듯 아이들이 뛸 듯이 기뻐했다.

 

매일 화면으로 보는 제 모습이지만, 이건 정말 On Air 인 셈이니 확실히 다른 가보다. 똑같은 사진을 티브이로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자부심, 뿌듯함이 전해진다. 그냥 뽐내기에 뽑혔을 뿐이라 따로 상품도 없는 것이 나는 못내 아쉽다. 정말 뽑힐 줄 알았으면 파란 내복 대신에 조금 예쁜 옷을 입혀 사진을 찍을 걸 하는 하는 생각도 자꾸 든다. 그저 행복한 아이들 앞에서 물질 만능 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에 찌든 마음을 들킬 수 없어 같이 행복하게 웃었다. 유치원 가서 자랑하고 싶다 해서 화면 캡처한 것을 프린트로 뽑아도 주었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 행복해한다. 내가 내복 입고 세수도 안 하고 찍은 사진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한데 아이들은 그 모습마저 예쁘니 상관이 없나 보다. 오늘은 우리 아이 둘이 유튜브를 통해 티브이에 진짜로 나온 날이었다. 나란히 있는 사진이 나왔고, 오늘은 큰아이의 이름으로, 다음 주에는 작은 아이의 이름으로 다른 작품을 뽐내 주겠다고 센스 넘치는 답장을 받았으니 이번 작품 뽐내기로 우리 아이들은 2주 동안 입이 귀에 걸리게 생겼다. 누구는 나오고 누구는 안 나오는 형제의 난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참 기쁘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는 것이 쉬워진 세상에서도,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예쁜 아이들이니 말이다.  


할머니 집에서 뽐낸 작품. 몇 년 전 이 아기들은 어디 가고 형아가 다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의 줄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