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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29. 2022

아이의 줄넘기

그리고 엄마의 한국사 공부.

큰 아이가 일곱 살이 되며 유치원 스케줄은 무척 바빠진 듯하다. 초등 연계 숫자 공부부터 알림장 쓰기, 그림일기 쓰기, 그림책 읽기 등을 하는 것 같았고 매일 숲으로, 텃밭으로, 놀이터로, 수영장으로 놀러 나가는 생태 유치원인데 그 바깥놀이 틈틈이 줄넘기를 연습하는 것 같았다. 줄넘기를 그냥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초등 연계 활동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나도 1학년 때 줄넘기를 했었지만 그냥 체육시간에 하는 활동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줄넘기도 급수제가 있고 못하면 좀 곤란하다고, 아이가 위축되고 이런 저러한 이유들로 미리 연습을 시키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줄넘기를 하는 모양새가 무슨 탈춤을 추는 것 같았다. 몸치도 저런 몸치가 있을까 싶어서 걱정했는데 몸치가 아니고 협응, 줄넘기를 하고자 하는 머리의 명령, 줄을 돌리는 팔의 움직임, 내려오는 줄에 맞추어 폴짝 뛰어야 하는 다리의 협응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라 다. 영유아 검진 문항 중에 네모를 보고 네모를 그릴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협응이라 다. 머리가 하고자 하는 바를 손이 해 내는지, 즉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의 발달 과정이라고.


틈틈이, 그러나 꾸준히의 결과는 분명했다. 나는 줄넘기를 유치원에 보내 놓고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집 앞에서 줄넘기를 하고 싶다고, 눈치를 살피니 엄마에게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듯해서 줄넘기를 새로 준비해 마당으로 나갔다. 어랏. 분명히 한 개도 못 하던 아이가 열개를 해 낸다. 의기양양하게 내일은 스무 개를 할 거라고 하더니 정말 그다음 날엔 헉헉 대며 스무 개까지 해 냈다. 어른에게는 줄넘기 열개 스무 개가 별 것 아니지만, (체력과 이별한 이 나이엔 별일이 맞다.) 아이가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콩콩 가볍게 뛰는 것이 아니라 쾅쾅 울리게 뛰기 때문에 줄넘기 열개면 온 힘이 빠지는 것이 보였는데, 그것을 스무 개를 했다는 건, 온몸을 다해, 온 맘을 다해 뛴 결과물이다. 아마 내가 저렇게 뛰면 당장 무릎이 나갈 것인데 7년 산의 새 무릎은 아주 탄성이 좋은가보다.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가 기어 다니고, 대망의 첫걸음을 떼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그냥 누워있어도 충분했는데 용을 쓰며 끝내 뒤집더니 한 발 거리의 장난감을 잡겠다고 온 힘을 다해 낑낑 거리며 몸을 끌고 와 기어이 손에 쥔다. 기는 건 엄청난 속도로 기어 다니지만, 걸음마는 두세 걸음에 한 번씩 넘어지면서도 굳이 걸어서 집안을 돌아다니던 모습에는 정말 배움을 얻었다. 사람이 발전하려는 의지는 탑재되어 있구나, 하고 말이다. 큰 아이는 돌잔치 때 아주 잘 걸어 다녔는데, 지 돌떡 지가 돌리려고 저런다 싶을 정도로, 7킬로의 작고 마른 사람이 쌩쌩 걸어 다니는 모습에 동네 할머니들의 찬사를 나도 덩달아 함께 받게 해 주어 고마웠다. (맞는 신발 구하기도 힘들었다. 작은 몸집 때문에) 그러던 아기가 줄넘기를 한다. 내일은 더 잘하겠다 하더니 그다음 날은 또 스물여덟 개를 하는데, 서른 번을 넘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나날이 발전하려는 의지가 기특하고, 한다면 꼭 되는 그 모습은 부럽다. 아이에게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는 유연성이 있고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탄성도 있으며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갈 수 있는 체력 역시 있다. 뭐가 될지 모르는 그 작은 사람 앞에서 엄마는 그저 더 겸손해지고 작아질 뿐이다.


기적은 일어날 것인가. 일어나지 않아도 상관 없다.


 나는 작년부터 1년 1 시험 보기를 도전하고 있다. 아이의 첫돌, 두 돌을 차례로 두 번씩 내며 멘붕의 시기를 보내고 나니, 나의 몸과 마음이 너무 녹슬어 있는 기분이 싫었다. 낡은 물건을 가지고 평생 살아야 한다면 닦고 다듬어 고쳐서 살아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일단 머리를 써 보기로 했다. 작년에 응시한 시험은 중국어 TSC 시험과 영어 오픽 시험. 결과는 나쁜 건 아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각각 5급과 IH 등급이었다. 중국어 전공자에 전직 영어강사인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받아 들었다며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저런 핑곗거리는 많았다. 사실 애 둘이 유치원에 갔다가 세시에 오는데, 그동안 집안일이며 저녁거리를 준비하면 커피 한잔 마실 내 자유시간을 공부에 할애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어학 시험이라면 충분한 경험이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간과한 건, 내 머리는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게다가 오늘 뭐 먹지 귀신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코로나가 아직은 한창일 때라 애들이 미열에 기침, 콧물만 있어도 등원을 하기는 힘들었으니 그것을 고려하면 잘한 것이었다. 하지만 ~ 치고는 잘했다. 고 위로하기는 싫었다.

Not bad. 做得还好. 이 모든 문장에서 ~ 치고는, 그럭저럭 을 빼버리고 그냥 순수하게 잘하고 싶은 내 마음은 욕심일까. 내 머리는 쓸모 없어졌다고 술이 술술 들어갔지만 어쩌랴, 총량 불이라고 내 머릿속에선 어학능력이 사라진 대신, 아이 키우기 능력이 자리 잡았으니, 내 머리는 이미 최선을 넘어 초과해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칭찬해 줘야지 어쩌겠나 하고 칭찬으로 마무리하였다. 술김에.


올해는 상반기에는 이사에 뭐에 정신이 없었다. 영어 시험을 재도전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방문한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홀라당 까먹은 나의 역사 지식을 발견하고는 너무 부끄러워서 한국사 시험에 도전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언제나 목표는 높게 잡는 편이라, 한국사 심화 1급이 목표다. 아마 한두 단계 밑의 결과만 받아 들어도 성공이지 싶다. 친구의 추천으로 큰 별 샘의 강의를 듣는다. 큰 별이라고 해서 블링블링한 여자 선생님일 줄 알았는데 최태성 선생님이었다. 태성, 그래서 큰 별 샘. 학생의 마음으로 수업을 듣는 시간이 좋고 행복 한 걸 보면 나도 아직 배움에 대한 열정은 남아있는 모양이다. 다만 머리가 수능 공부하던 20년 전 같지 않아 정말 어제 배운 것이 생각이 안 난다는 게 문제이지만.


아이는 줄넘기를 서른 번, 나아가 백번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말 열을 내며 쿵쿵 뛴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유산소 운동을 저렇게 해 대니 살이 더 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다. 나는 한국사를 배우며 심화 1급의 의지를 불태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을 내며 강의를 듣는다. 시험 합격증을 손에 넣진 못하더라도 다음에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면 지난번처럼 당황스럽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낫다.


아이의 발전, 더 잘하려는 마음만 칭찬할 것이 아니다. 나도 칭찬한다. ~ 치고는 잘했다가 싫다며 열을 내었지만, 바꿔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했다가 되니, 적어도 세월이 더 흐른 후에 지금의 나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불태우는 꼭 닮은? 모자를 다 칭찬한다.


너는 줄넘기를 하거라, 엄마는 고구려는 제가 회의, 신라는 화백회의, 백제는 뭐더라???? 정사암, 또 까먹었네. 이걸 외울 테니 말이다. 참고로 금동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사진을 20년 만에 보고는 반가워서 꾸벅 인사할 뻔했다. 우리 역사 배우기는 참 재미있다.


누구나 훌륭한 강의를 무료로 듣게 해 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험은 12월 3일이다. 합격 수기를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합격 수기가 없다면. 그냥.... 그랬으려니.... 해 주십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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