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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20. 2022

아이의 세계 속으로

-이집트 편, 천하대장군 같은 투탕카멘이지만 괜찮아.

큰아이 유치원의 세계 여러 나라 프로젝트가 아직 진행 중이다. 어제는 알림장에 (초등 연계교육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알림장을 쓰는 연습을 한다) 이집트에 대해 알아보고 써오라고 숙제를 받아왔다. 언제까지 하는 거냐고 물으니 역시나 모른다는 아이. 숙제를 받았으면 바로 해야 하는 범생이 엄마는 집 앞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한 권 빌려다가 엄마랑 숙제를 해 보자 하였다. 아이는 지금 종이 접기를 해야 하니 싫다고 하면서도 5초 후에 이것만 다 접고 같이 가서 빌리자고 한다.


https://brunch.co.kr/@niedlich-na/43



도서관에 가면 전집들을 빌려 볼 수 있어서 좋다. 전집이 있어도 (구매한 적은 없다, 거의 물려받아 읽었다) 읽는 책만 읽고 결국엔 자리 차지하는 천덕꾸러기가 되는데 (이건 책 편식이 있는 엄마와 아이, 그리고 그걸 제대로 고쳐볼 생각이 없는 둘 다의 문제) 도서관에 가면 부담 없이 보고 싶은 책만 빌려 볼 수 있어서 좋다.


이집트에 대한 동화책이 있었다. 사막에 사는 아이가 카이로에 가고 싶은 나머지 사막에 같이 사는 낙타를 내쫓아 버리는 이야기로 시작해 간단한 이집트의 지리, 유물, 문화를 소개하는 아이용 동화책이다. 책을 두 번 읽어주고 내용을 기억해서 써 보자 하니 동공이 흔들리는 것이 아직은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막막한가 보다 싶어서 질문지를 주고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쓰게 했다. 질문지가 주어지니 답은 척척 해낸다. 나도 일곱 살 때 이렇게 똑똑하고 기억력이 반짝였을까 싶을 만큼.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A4용지를 꺼내 그림까지 그리게 해 주니 먼저 글을 쓴 후에 신나게 그림을 그린다. 고대 이집트의 문명을 아이는 신비로워한다. 투탕카멘, 미라, 황금, 독수리, 피라미드, 스핑크스의 거대함과 화려함,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강인함과 웅장함이 아이를 사로잡은 듯했다. 물론 아이의 그림 속 투탕카멘은 아기 천하대장군, 독수리는 수탉, 스핑크스는 강아지 같았지만 말이다. 책에 비둘기 요리도 나왔는데 비둘기를 너무 싫어하는 나는 기겁을 한 대목이었지만 아이는 역시나 흥미로워한다. 비둘기를 먹는다고? 엄마가 싫어하는 그 비둘기? 어떻게? 하고 물어보는데 나도 아는 게 없으니 엄마가 알아보고 내일 알려준다 하였다.




다음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유튜브로 비둘기 요리를 검색하였다. 나는 길거리에서 비둘기를 보면 저 멀리 돌아가거나 아니면 가만히 서서 비둘기가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면 만들어지는 길을 종종걸음으로 쫓아갈 만큼 비둘기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비둘기 요리라니, 남의 나라 문화에 색안경을 끼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어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영상들을 여럿 살펴보았다. 닭보다 작아서 먹을 게 없다는 것, 향신료 냄새와 비둘기 특유의 냄새가 식당마다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지만 대체적으로 비둘기 요리는 평이 좋은 편이었고, 더구나 손님을 대접하고 특별한 파티가 있을 때, 아니면 보양식으로 먹는 귀한 음식이라 했다. 아이가 하원한 후에는 영상들을 조금씩 보여주며 설명해 주고 엄마는 솔직히 먹어 보고 싶진 않지만 먹는 걸 구경해보고 싶다고, 그러니 나중에 함께 가서 네가 먹는 모습을 엄마 보여주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전날 쓴 글을 바탕으로 영어 작문을 하는 걸로 이집트 학습을 마무리하였다. 아이의 문장 자체가 단순하니 영작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아이가 스스로 하진 못한다. 내가 틀을 잡아주고 받아쓰기 수준으로 알파벳을 적어 넣은 후 함께 읽어보는 형태이다. 아이는 자기가 쓴 글이 영어로 바뀌는 점을 신기해하며 나일강, 사하라 사막 같은 고유명사들의 영어식 발음을 흥미로워한다. 내 발음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 사전을 찾아 사전식 발음을 들려주기도 한다. 아이는 이집트에 관한 글을 잘 써가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며 사뭇 고무되었고, 사실 알림장에 한 두줄 엄마가 써 주어도 되는 정도였는데 우리 모자가 또 유난 떨고 오버하였구나 싶은 생각에 나는 조금 면구스러워졌다. 어쨌거나 아이는 책 읽고, 독후 활동하고, 영어공부까지 훌륭한 학습을 엄마와 마무리했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일곱 살 때 했던 세계지도 그리기가 다시 생각났다. 그때는 5대양 6대주, 각 나라의 이름, 지도 그리기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아용 세계 여행 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는 없고, 어른용 백과사전도 사진과 여행정보가 있는 책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때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다가 겨우 자유로워진 1990년도였으니. 주변에 비행기 탄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어쩌다 자연농원이나 가면 지구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벅차던 꼬맹이였다.



시대는 이렇게나 바뀌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조금 뜸해졌지만, 방학이면 가까운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들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해서라도 비행기 한번 태워줘야 하는 분위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외여행이 흔해졌고 (부모의 부담이 적어졌다는 것은 아니고), 인터넷 검색으로 최근의 외국 모습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며, 각종 알록달록한 유아용, 아동용, 청소년용 전집으로도 여러 나라들의 역사, 문화, 유물들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는 넓은 세상을 맘껏 배운다. 마음속으로 세계 여행을 꿈꾸는지, 세계 진출을 목표로 두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나라의 여러 모습들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배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선택지를 받아 드는 것이니 학부모로서는 세상의 발전이 고맙다. 마치 나는 하얀색부터 검은색까지 있는 일직선의 그러데이션 색지를 받아 들었다면 아이는 채도, 명도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둥근 색상표를 받아 든 느낌이다. 보라색도 연보라부터 진한 보라색까지, 핫핑크, 인디핑크, 꽃분홍이 다양하게 있는 알록달록 예쁜 색상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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