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아기들.
장수풍뎅이의 대가 끊긴 줄 알았다. 확신했다. 암컷이 성충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수컷이 죽었고, 암컷이 혼자 독수공방으로 지내다가 세상을 떴으니 말이다. 그게 8월 초이다. 그리고는 이래저래 정신없다는 핑계로 사육통을 베란다에 치워둔 채로 두어 달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통을 이제 진짜 치우려고 가보니. 헉. 하얀 거 저거. 설마 애벌레? 신랑이 외친다. 여보!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 이게 뭔 일일까. 통을 엎어보니 열세 마리다. 정말 아이들이 환호하는 동안 멘붕의 시간을 갖는다. 계획에 없던 아기가 열세 마리 생긴 기분이랄까. 큰아이, 작은 아이가 우리에게 왔다는 걸 알았던 순간에도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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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풍뎅이의 애벌레는 따로 먹이를 주지 않고 스스로 흙을 파먹고 큰다. 애벌레 때 잘 먹어야 크고 멋진 성충이 되어 나오고 성충이 되어서는 많이 먹어도 생명 연장에 도움을 줄 뿐 크기가 커지진 않는다 하니 애벌레 기간은 풍뎅이 일생의 성장기인 셈이다. 아마 얘네들이 땅속에 파묻혀 먹고살다가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 위로 기어 나왔을 때 발견된 모양이다. 흙은 이미 똥밭이었다. 지난번 애벌레 똥이 섞인 흙이 좋은 비료인 줄 모르고 그냥 버린 것이 아깝다 한 걸 누가 맘에 담아 기억해 주신 건지 굳이 이렇게 한아름 애벌레 똥 흙을 돌려주신다. 엄마네 집의 화초들이 겨울 보약으로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따로 싸 두었다.
집에 톱밥이 없으니 이마트로 당장 사러 가기로 한다. 지난번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리뷰대회에서 받은 상금 3만 원 신세계 상품권으로 애벌레에게 톱밥을 사주기로 했다. 애들이 생긴 줄도 모르고 배고프게 만들었으니 너무 미안하다. 나는 애벌레가 징그러워서 만지지는 못하지만 에미의 마음으로 7년째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애들이 배고프다 하는 소리에 굉장히 약한 편인데 이 작은 애벌레들이 땅속에서 먹을 것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아팠다.
지난겨울 처음으로 풍뎅이들이 비비탄 같은 알을 낳았을 때 너무 신기한 한편으로 알을 이렇게 많이 낳아서 어쩌나 싶은 걱정이 앞섰다. 서둘러 여기저기 단톡방에 알려서 분양을 보내고, 혹시 알을 또 낳았는지,지난번 애벌레는 얼마나 컸을지 하는 마음으로 자주 흙을 뒤적였는데 몇십 개의 알 중에 살아남은 것은 열 마리도 채 되지 않았다. 알들의 어미 아비 풍뎅이들은 꽤나 오랜 금슬을 자랑하며 정말로 장수하고 떠나서 알들이 많았는데 아마 한겨울이라서 계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많이 죽었을 거라 생각한다. 신랑은 이번에 우리가 애벌레 풍년?을 맞은 것은 8월 초에 사육통을 치워두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오히려 잘 큰 거라고 하는데, 그것도 일부 맞는 말이긴 하겠지만 나는 날씨가 정 반대인 계절에 일어난 일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라 했다. 냉난방을 하긴 하지만 여름과 겨울의 집 안 공기는 완전히 다르지 않냐고. 이렇게 옷도 안 입고 사는 작은 생명체들에게는 엄청 큰 변수가 될 수 도 있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겨울에 내가 애들이랑 같이 풍뎅이 사육통를 수시로 뒤적거려서 애벌레가 많이 살지 못한거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최근에 연달아 읽은 두 책이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아니 책은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보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다 다를 테지만 나는 두 권의 책에서 같은 메시지를 읽었다.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란다고 말이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의 할머니의 육아와 <설이>의 늙은 이모의 육아는 아이가 자랄 터전을 견고하고 튼튼한 빈틈으로 열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 빈틈, 방치와 방목 사이, 무관심과 무심의 사이 그 경계의 어딘가에서 나의 자리를 튼튼히 잡고 아이들에게 방목과 무심의 빈틈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던 차였는데, 풍뎅이도 그 빈틈 육아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렇게 잘 살아서 나타날 줄이야. 얘들아 그래도 아빠가 들여다봤으니 너희가 살은 거다. 오늘부터 한파라는데, 추운 베란다에서 정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흙에서 며칠 더 있었다간 다 죽었을지도 몰라. 바로 방치와 방목의 경계, 무관심과 무심이 나눠지는 길목이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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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아이들은 꿈틀 거리는 애벌레를 보며 열광하고 있고, 나는 여기저기 단톡방에 분양처를 알아보고 있다. 유치원에도 사실 보내고 싶은데 날이 추워져 주말이나 연휴가 지나면 추운 데서 죽을까 봐,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속상한 일만 될까 봐 말도 못 꺼내는 중이고, 겨울엔 농담 삼아 날 따뜻해지면 이것들 다 뒷산에 풀어줄 거라 했었는데, 이젠 여름이 지나 날이 추워지는 중이니 미안해서 풀어주지도 못하겠어서 꼼짝없이 올 겨울과 내년 봄까지는 풍뎅이들을 다시 돌봐야 할 운명에 놓였다. 3대에서 마무리되는 줄 알았던 장수풍뎅이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아이들은 성충으로 나오는 풍뎅이들마다, 애벌레들마다 다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하는데 내가 헷갈리니 통일하자 했다. 수컷 성충은 장숭이, 암컷 성충은 뎅뎅이, 애벌레들은 꼬물이로 말이다. 아직 성충으로 나오진 않았으니 다 꼬물이들만 있는 우리 집. 장숭이 4세의 탄생을 기다린다. 아마 크리스마스쯤 되지 않을까.
Beetle JangSung IV Coming Soon.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나름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원래 그 나이 때는 그런 거니까, 지금 버릇없이 군다고 못된 아이가 되는 게 아니거든. 어릴 때 그렇게 하고 어른이 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너처럼 이렇게 똑바로 서 있는 배꼼은 한 번도 본 일이 없어. 그래서 네가 그렇게 생각이 분명한 거야. 네 배의 중심에는 나침반이 딱 서 있었어. 아, 이 아이는 방향을 잃어버릴 일이 없겠구나. 나침반은 처음엔 원래 많이 흔들리지만, 결국 옳은 방향을 향하니까" 나는 이모의 치마폭에 머리를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나에게 나침반이 있어서 언제나 옳은 방향을 안다니, 내가 얼마나 헷갈리는데, 동서남북은커녕 앞도 뒤도 모르도록 깜깜해 멀미가 날 지경인데, 남들보다 백배는 더 흔들리면서 사는데 이모는 정말 바보다. 심윤경 장편소설 <설이> 중
부모의 빈틈 운운하며, 아이의 나침반을 믿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풍뎅이들이 나의 빈틈이 있었기에 잘 자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올 겨울엔 사육통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아이에게 아침부터 잔소리를 하고 유치원을 보냈다. 주말 내내 노느라 그림일기를 안 썼다고 말이다. 무심하게 내버려 두니 잘 자란 풍뎅이를 보며 띵까띵까 노는 아이들을 조금은 모른 척해야겠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