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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05. 2022

둘째의 새 자전거

 둘째에게 새 자전거가 생겼다. 둘째에게 새것이란 첫째에게처럼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옷이나 신발은 그나마 험하게 입고 신어주는 고마운 형아 덕에 새것을 제법 가져보았지만, 책, 장난감, 승용완구 등은 언제나 물려받는 처지였으니, 자전거 떡하니 새것을 온전히 가졌다는 건 (아이는 모르겠지만) 역사적인 순간이다.


 두 살 차이 나는 형제라서 더 물려받는 것이 많았다. 한복도 형아가 딱 맞게 사서 예쁘게 입다가 물려준 걸 받아 입었고, 킥보드도 작은 걸 새 거로 먼저 타서 쓰다가 익숙해질 무렵 동생에게 물려주고는 조금 더 큰 새 걸 사서 형아는 새것, 동생은 헌것을 타는 형편이었다. 겨울 부츠, 여름 장화 이런 시즌 제품들은 둘째에게 새 걸 사주기가 왜 이리 아까운지. 난 둘째를 정말 예뻐하고 사랑하는데,  어쩔 수 없는 짠순이 엄마이다. 유모차도 그렇고 집안에서 타는 붕붕이도 그렇고, 어떤 날은 양말까지 다 형아가 입고 쓰던 착장으로 등원한 적도 있으니, 그 뒷모습이 웃기기도, 미안하기도 하였다.



첫째가 처음 자전거 타던 날.



그러던 녀석에게 새 자전거가 생기다니, 내가 사준 건 아니다. 며칠 전 형아의 자전거를 얻어 타다가 빼앗기고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는 것이, 제 것이라고 우기고 싸우지 않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여 사진을 찍어 시댁에 보냈는데, 그 표정을 보신 시부모님께서 당장 우리 애기 자전거를 사주겠다 하셨기 때문이다. 둘째는 할아버지와 똑 닮았는데 본인과 닮은 작은 사람이 속상해하는 모습에 단박에 넘어가신 듯했다. 한 집에 18인치 자전거를 두대 들이기가 뭣하여 둘째는 스트라이더라는 밸런스 바이크를 사 주어 둘이 번갈아 가면서 타게 할 요량이었는데 자전거가 있어야지 그걸로 성에 차겠냐는 어머님의 말씀에 우리 집에는 18인치 네 발 자전거가 두대가 생겼다.  


자전거가 생긴 마법의 표정


 나도 셋째로 자라서 거의 많이 물려받아 입고 쓰며 자랐다. 큰언니와 여덟 살 터울이 지는데도 큰언니가 입던 옷을 나도 입고 자랐으니, 잘 정리해 두었다가 막내에게까지 입힌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물려받은 것들 중 최고봉은 한복 두루마기이다. 큰 언니가 입던 한복 두루마기를 나도 입었는데, 그 옷을 심지어 우리 아이들도 지금 입고 있다. 옛날 손바느질로 지은 옷이라서 옷감도 좋고 튼튼하며, 빛깔도 고와서 요즘엔 어디 가서 사려해도 살 수도 없다. 물려받는 것, 자본주의 세상엔 역행하는 것 일진 몰라도, 튼튼하고 좋게 만들어 한번 사서 여럿이 쓰고 주야장천 쓰고 대대로 전하며 추억과 사랑을 묻히는 것이 지구 환경에도, 사람 정서에도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우리 아이들이 그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을 보면, 나도 30년 전에 이 옷 이 담고 있던 나의 모습, 지금 우리 아이들이 이 옷을 입은 모습에 마음이 말랑거리는데 우리 엄마는 오죽할까. 이 옷을 잘 갖고 있다가 혹시라도 내가 손자가 생긴다면 입혀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멀쩡했으니 앞으로 30년 정도도 너끈하지 않을까.


40년 전에 만든 옷 입어본 친구?


 여하튼, 우리 둘째도 둘째로 태어난 운명, 즉 정말 예쁨 받지만, 대신 받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그 운명을 잘 받아들이는 듯, 형아의 새 물건과 자기의 물려받은 물건에 대해 크게 불만이나 설움을 표한 적은 없었는데 자전거를 바라보던 그 표정에 지난 5년 세월이 응축되어 있었는지, 할아버지의 마음을 단박에 움직여 버렸다. 그냥 나한테 돈으로 주셨으면 스트라이더를 사 주었을 텐데 그럴 것을 아셨는지 튼튼하고 예쁜 자전거로 사 주시고 확인까지 하신다. 나도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런 표정 매일 짓는 것 같은데, 아이의 힘은 역시나 크다.


날이 추워져서 월동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작년에 큰아이가 입던 눈놀이에 필요한 스키복을 작은 아이에게 물려주고, 큰아이의 옷을 새로 살 생각이다. 첫째는 뭐든지 새 걸 사서 쓰고 입는 복, 둘째는 물려받는 대신 첫째에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은, 관대함? 넉넉함? 덜 예민함? 에휴, 둘째는 대충 키운다는 얘기를 뱅뱅 돌려 힘들게도 한다. 둘째는 알아서 잘 자란다.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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