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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08. 2022

일곱 살 아이의 문법 공부

생각보다 괜찮아요. 

 아이의 영어 교재를 새로 구매하였다. 알파벳을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되었고 그동안 파닉스 교재를 꾸준히 진행하여 5권까지 마쳤다. 마치긴 했지만 완전히 습득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헷갈려하고, 글씨를 거꾸로 쓰기도 하며, 몇 번을 반복하는데도 마치 처음 보는듯 NEW 한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참고로 아이의 엄마표 영어공부 시간은 10분 내외이다. 그 이상은 심심한 둘째의 공격에 공부하는 아이의 집중력도 흐려지거니와, 짧게 하고 끝내줘야 매일매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나도 욕심 내지 않는다. 그래도 그 10분의 힘으로 파닉스 5권까지 마쳤으니, 꾸준함의 힘은 실로 크다. 마쳤다고 했지 아이가 안다고는 안 했다. 


Teaching ≠ Learning  만고의 진리. 


파닉스 5권을 마치고 그 이후 과정을 다루는 옥스퍼드 파닉스 워드 책을 구매하긴 하였는데 단어 수준이 너무 어려워서 정말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하고 있다. television, station dangerous 이런 단어들을 굳이 읽고 쓰고 알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음가 복습과 읽기 정도로만 진행하기로 하고는 본격적인 영어 글쓰기 책을 구매하였다. 


 보통 쓰기를 가장 마지막에 진행한다고 한다. 인풋이 다 들어가고 난 후에 나오는 아웃풋이 바로 쓰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10분 내외로 진행되는 엄마표 수업에서 딱히 인풋이랄만 한 활동을 하기가 힘들고 영어를 듣고 말하고 노래하는 것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이기에 (흘려듣기, 영어 챈트 등을 틀어 놓으면 시끄럽다고 끄라고 한다) 유창성보다는 정확성에 목표를 두고 밀고 나가기로 생각하였다. 지금까지의 영어 일기, 영어 쓰기는 엄마가 틀을 잡고 불러주면 음가를 연습하며 받아쓰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한 문장이라도 스스로 만들어 보자 하고 말이다. 이 또한 꾸준히 쌓이면 꽤 성취도 높은 활동이 될 것이고 하루 10분, 엄마표 수업이라 가성비도 좋을 테니, 일단 해보자. 


이틀 동안 한 페이지 했다. 하다 보면 한 권 하겠지. 느릿느릿 거북이 학습. 

 

 영어 문장 쓰기라는 것이 사실 문법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아직 일곱 살이고, 하루 십 분씩 공부한 1년 차, 이제 2년 차에 들어간 학습자 어린이에게는 다소 버겁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아이는 의외로 쉽게 받아들였다. 엄마. 내가 모르는데 알아. (읭?) 라고 하며 말이다. I 다음에 나올 말이 is 가 아니라 am이라고 자연스럽게 동그라미 치는 모습이 제 스스로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물론 My brother and I와 같은 함정 문제에는 어김없이 빠지지만 말이다. 교재 한 페이지를, 아니 반 페이지를 하며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많이 한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 한 명과 여러 명, 한 개와 여러 개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설명을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그 개수에 따라서 뒤에 나올 말들이 다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확하게 구별해 줘야 하는 것이 영어라고. 내가 일곱 살짜리 앞에 앉혀두고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지만, 아이가 알아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것을 알기에 그냥 가르친다. 실제로 한글 일기 쓰기를 할 때 띄어쓰기를 하도 틀리기에 모든 조사에 동그라미를 쳐 가며 이런 것들을 조사라고 하는데 조사는 붙여 쓰는 거라고 얘기해 주었더니 그다음부터 틀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엄마 이것도 조사야? 하면서. 엉덩이 탐정이 하는 조사와, 주격 조사, 목적격조사가 같은 조사인 줄 알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 내용도, 아직 몰라도 돼 라고 하지 않고 최대한 설명해 주려 한다. 취사선택 取捨選擇 은 네 몫으로. 아무튼, 영어에서의 명사, 그리고 수량 표현에 대해서 열 문장 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숯불을 들고 있다는  자유의 여신상 그림이 귀엽다. 갈빗집 사장님도 아니고.


 잘하고 있는 건진 잘 모르겠다. 영어 문법을 처음 접하는 시기에 대해서 초등 중고 학년이다, 고학년이다, 중학생이다 논쟁이 분분한데도 일곱 살은 들어있지도 않으니, 내가 별난 짓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많이 듣고, 흘려듣고, 노래 따라 부르고, 틀리더라도 말 하게 하고 싶은데, 시끄럽다고 영어 CD 끄라고 하고 자기가 못 알아듣는 말로 엄마가 말을 거는 것을 너무 싫어하니, 어쩌겠나. 그냥 연필 잡고 설명하며 가르치는 수밖에. 혹시 어렵진 않아, 지겹진 않아? 하고 물어보니 아니 재밌어.라고 말하니 다행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영어를 배우는 방식도 다르며, 영어에서 먼저 발달하는 영역, 잘하는 영역이 다 다른데 아마 우리 큰 아이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납득을 해야 하는 쪽 인 것 같다. 그래, 엄마랑 연필 잡고 공부하자. 고등 문법까지 가르쳐 줄 수 있단다. 너만 괜찮다면.


수업이 끝나고 설거지를 하는데 옆에 와서 말을 건다. 


엄마, 나 지난번에 아쿠아리움에 가서 본 로봇 물고기 있잖아, 그거 영어로 뭔 지 알 것 같아. 로봇 피시! 

맞았어! 근데 몇 개? 한 개면? 

어 로봇 피시! 

맞았어!!! 근데 여러 개면?? 

로봇 피시스! 

땡!!!!!!!!! 피시는 여러 마리도 피시야. 그래서 여러 개니까 어 빼고 피시 쓰면 돼, 어가 없으니까 로봇 피시라고 해도 여러 개인 줄 알 수 있어!!!

OK!!! 알았어!!!!!!!!!! 


엄청난 지식을 깨우친 듯 신나게 돌아서는 아이에게, 물고기가 먹는 생선일 땐 관사를 쓰지 않는 불가산, 여러 어종을 이야기할 땐 fishes로 쓰기도 한다는 것까진 차마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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