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Nov 09. 2022

내가 바라는 세상

무슨 꿈이 있나요. 

12월 3일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심화과정 시험 접수를 마쳤다. 이젠 정말 빼박이다. 목표를 높게 잡는 버릇이 있어 심화를 신청했다, 세상 몇(십) 년 더 살았다고 학교 다니던 십 대 때보단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권력이 썩어가는 과정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맞다. 초심은 변하기 마련이고, 기득권은 고이기 마련이며, 고인물은 썩는 것이 이치라는 건 고대, 중세, 근현대 할 것 없이 똑같다. 그래서 큰 흐름을 잡고 이해하는 것은 생각 보다도 더 쉬웠지만, 암기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여기서도 총량 불변인가 보다. 인물과 저서, 지역과 기관, 기구들의 명칭이 반만년 역사를 통합하여 출제가 되니 우리나라 역사가 반만년이나 되는 것이 야속할 정도이다. 한 문제에 고려, 조선, 삼국시대, 통일신라, 발해가 다 들어있으니, 참고로 첫 기출 모의고사는 50문항 중 19개를 맞았고, 두 번째는 반타작을 했다. 그나마 배점이 높은걸 다 틀려버려 50점도 안 될 것 같은데 한 달 남았으니 80점 이상으로 올릴 수 있으려나. 


문제집은 하나 구매했고, 강의는 큰 별 샘 최태성 선생님의 무료 강의를 틈틈이, 때로는 앉아서, 때로는 집안일을 하며 듣고 있는데 입시 맞춤형 강의를 하시다가도 역사의 쓸모, 역사의 의의를 이야기하실 때가 있어 나이 든 수험생은 그런 것들에 더 감동을 받고 마음에 새긴다.  


 아는 것과는 상관없이 진도는 나가고 나가, 어느덧 개항기에 이르렀는데 사실 개항기 이후 근현대사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에 이르는 대하소설을 두 번씩이나 완독 했고 그 이후의 소설들도 광주 이야기, 제주 이야기, 전쟁 이야기, 전후 사회 이야기 등을 소설로 꽤나 읽었으니 어느 정도는 익숙할 거라고, 상식으로 아는 것들도 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론은 전혀 아니었다. 인물, 사건, 배경도 모자라 각종 조약을 맺는 개항기, 현대사이다 보니 이름도 비슷한 조약들을 시기별로 외워야 하고, 역시나 비슷비슷한 이름을 가진 단체들의 활동, 활동의 결과, 결과로 맺어진 또 조약들이 도무지 외워지지가 않는다. 내가 자신 있었던 것은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가진 한국인으로서의 뜨거운 가슴뿐, 머리는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 교재를 붙들어봐야 머리만 아프고 하기가 싫어질 것 같아 개항기를 주제로 하는 책을 두 권 구매해서 쉬어 가는 타임으로 읽었는데 각종 조약과 사건, 단체들을 외우는 데는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 시절 삶에 다가가며 그들이 가졌던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이 되었다. 



 최태성 선생님께서 강의에서 종종 하신 말씀이 역사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꿈이 담긴 이야기, 내 후손들에게는 신분제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꿈, 식민지 나라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꿈, 민주주의 세상을 살게 해 주겠다는 꿈,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 주겠다는 꿈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았는데, 소설 두 권도 그 꿈을 담고 있었다고 할까.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다 슬프다. 


내가 이 일을 맡아준다면 좀 더 수월하게, 사람들이 덜 다치고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만에 하나 당신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난 평생 내 가슴에 칼자국을 내며 살게 될 거야. 그렇게 사는 것보다는 나아. 독립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이 사상이 투철하고 사명에 불타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사상이나, 철학, 신념 이전에 인간에 대한 사랑이 먼저일 거야. 나도 그래 볼까 해. -변사 기담 中


열심히 사는 건 좋아요. 그런데 역사의 수레바퀴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을 향해서 같이 가주는 게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거든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열심은 결국은 실패하고,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 흥선 대원군의 궤적을 통해서 열심히 산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 중中


 내가 일제강점기를 살았다면, 뜨거운 마음에 찬물을 부어가며 그냥 숨죽여 목숨을 살았을 것 같은 생각에 일제강점기 시절의 소설을 읽으면 항상 빚을 지는 느낌이 있다. 이 분들이 이렇게 지켜낸 나라에서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우쿨렐레로 내가 바라는 세상이라는 곡을 연습하는데 박자가 어렵다고 가르쳐 달라 해서 노래를 찾아들어보다 눈물을 쏟고 말았다. 사람 많이 모여도 안전한 세상이라는 가사에서 말이다. 우리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다면 분명 이런 가사는 옛날에 바랐던, 지금은 이루어진 세상이어야 할 텐데, 아직도 이런 세상을 바라고 있고, 심지어는 아직 이루지도 못했다는 슬픔이 밀려와 아이 앞에서 눈을 비비는 척 울고 말았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생각한다. 아이가 부르는 내가 바라는 세상의 가사와 별 반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옛날 동요 파란 나라를 보았니에 가까운 세상을 다시 꿈꾸는지도 모른다. 꿈과 사랑이 가득하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파란 하늘 저 끝이 보이는 파란 나라말이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익숙하다 보니 파란 나라를 부르는, 다시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배우며, 발전하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기본을 마음에 새긴다. 내 아이들은 기본이 바로 잡힌 나라에서 살게 해 주겠다는 꿈을 꾸며 말이다. 



 아이는 박자가 어렵다 하니 천천히 노래를 불러보며 가사를 이야기 나누어봐야겠다. 참 예쁜 가사인데 요즘 같은 시국엔 너무 아프다. 


우리 늘 바라던 그런 세상 있어요. 모두들 여기 모여 함께 노래 불러요.
 어른들이 거짓말 안 하는 세상, 주차선을 바르게 지키는 세상  
사람 많이 모여도 안전한 세상, 하고픈 일 다 되는 마법 같은 세상.
사랑하는 친구와 매일 같이 모여서 넓은 잔디밭에서 맘껏 뛰게 해 주세요
꽃과 새가 노래하고 동물들과 어울려 햇살 가득 받으며 미소 짓는 우리들.
-내가 바라는 세상 中- 
작가의 이전글 일곱 살 아이의 문법 공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