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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11. 2022

도널드 덕처럼 살고 싶다.

디즈니 속 환상의 세계에서. 

 우리 집엔 디즈니 명작동화 전집이 있다. 얼마 전에 계몽사에서 복간판을 내었고 옛날 표지 그대로 나온 판이 있고, 흰색 바탕 표지가 있는데, 옛날 표지 그대로인 오리지널을 갖고 싶어 무려 당근 구매를 한 것이 벌써 몇 달 되었다. 우리 큰언니가 어릴 때 사서 나까지 본 책이니 낡고 낡은 책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것이 새 책으로 우리 집에 있는 것이 얼마간은 어색하기도 했다. 판매자 분께서는 아이가 흥미가 없어 내놓는다 하였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구매하였다. 내가 보려고. 


어릴 땐 공주 이야기들을 주로 좋아했던 것 같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백설공주, 웃지 않는 공주. 공주가 사는 성이란 곳은 어떤 곳일까. 운동장만해 보이는 식탁에서 서로 멀찍이 떨어져 먹는 음식들은 다 무슨 맛일까, 밤에도 저런 드레스를 입고 잘까 하는 것이 어린아이였던 나의 궁금증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함께 하고 어느샌가 사라진 디즈니 명작동화집이 우리 집에 왔다. 남편에게 사달라고 했다. 명품가방, 명품 옷 하나도 안 갖고 싶은데 이건 갖고 싶다고 좀 사달라고, 아이들을 위한 전집도 한 번도 구매한 적이 없는데, 내가 보겠다고 디즈니 전집을 사달라니, 뜨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주었다. 고맙게도. 




온갖 화려한 영상에 이미 많이 노출된 아이들이라 옛날 그림체로 이루어진 이 책들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구피가 멍청한 짓을 할 때마다 깔깔 웃고 쿵쿵거리는 거인은 무섭다고도 하며 양반 고양이에 나오는 아기 고양이들의 이름을 나 보다도 빨리 외웠다.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며, 나도 재밌고 옛날 생각이 나서 디즈니는 마흔이 다 된 나에게도 꿈이고, 환상이고, 행복이다. 다만 좋아하는 캐릭터가 공주님들에서 도널드 덕으로 바뀌었을 뿐. 


반찬 투정하기, 조카들한테 화내기, 일 하기 싫어서 슬퍼하기.


도널드 덕은 어느 책에서나 성격이 좀 괴팍하고 다혈질이다. 조카들을 할머니께 맡기고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무책임함도 있고, 어린 조카들이 게으르다며 일을 하고 오라고 내 쫓기도 한다. 마당에 만들어 놓은 수영장에 동네 개들이며 애들이 와서 진을 치고 노는 장면에선 정말 불같이 화를 내며 폭발하기도 하고, 어느 책에서는 스쿠르지 도널드가 되어 식재료를 쌓아 놓고 절대 내놓지 않는 저장 강박을 보이기도 하는데 조카의 등쌀에 수프를 끓여 내어 마을 사람에게 크게 한 턱 쏘고는 조카가 또 오면 곤란하다고 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물었다. 왜 또 오면 곤란하냐고. 무서운 일이 있을 때는 뒤로 숨기도, 얼떨결에 얻어 걸려 해낸 일에 젠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즈니는 그런 도널드를 그런 도널드이게 놔둔다. 착해져야 한다고, 친절해야 한다고, 정직해야 한다고 훈수 두지 않고, 도널드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다. Let him be who he is. 도널드는 있는 그대로 디즈니 세상의 일원이다.



그래서 디즈니가 좋고, 도널드가 좋다. 둘리가 불쌍하면 어린이, 고길동 씨가 불쌍하면 어른이라 하더니, 도널드 도마찬 가지인 것 같다. 도널드가 무서우면 어린이, 도널드가 부러우면 어른 말이다. 디즈니 명작동화의 영어 원문을 보면 Cried Donald.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한국어로는 말했어요.이지만 사실 도널드는 거의 쉰 소리에 가까운 고함을 치고 있다. Cry란 동사를 이렇게도 쓴다. 보통 울다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워너비, 그러나 현실.

 

디즈니가 세계의 환상을 도널드 덕을 보며 느낀다. 꼭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 세상,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 세상, 불만을 맘껏 표현해도 타인이 불편해하지 않는 세상 말이다. 정말 도널드는 불같이 화를 내고도 뒤끝은 없어 보인다. 여전히 그의 주위에는 친구들이 많고, 조카들도 그를 사랑하며, 마을 사람들도 그를 구두쇠라 흉만 보지 따돌리진 않는다.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일 뿐. 세상도 그도 그런 그의 성향에 딴지 걸지 않는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눈치 보는 나, 화가 나도 상황 파악을 해 가며 참거나, 조금 내거나, 아니면 엉뚱한데 폭발시키는 나로서는 그저 부럽다. 도널드처럼 살면, 도널드를 도널드로 살게 내버려 두는 세상이라면 우울증, 화병, 스트레스성 위염이 사라져 건강보험의 재정에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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