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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20. 2022

우리 동네의 가을.

빨간 나무와 함께.

 가을이  갔다. 수능이 끝나면, 김장을 하면, 롱 패딩을 꺼내면 등등 사람마다 언제 가을이 갔다고 느끼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나는 우리 동네의 빨간 나무의 단풍잎이 다 떨어지면 가을이 갔다고 느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빨간 나무는 빨간색을 꽤 오래 버티는 나무이고, 다른 나무가 노랑 빨강으로 물들 때 초록을 굳건히 지키다가 말라 바스락 거리기 시작할 때 빨강의 절정을 이루고 다른 나무들이 이미 나뭇잎을 다 떨궜을 때, 그제야 조금씩 빈틈을 보이며 빨간 잎을 떨어뜨리다가 한바탕의 가을비 소동이 나고 나면 가지만 남는다. 남들보다 진도가 한 템포씩 느리다.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가을을 가장 오래 보여줘서 좋다. 그래서 그 빨간 나무의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올해도 가을이 갔구나 하고 느낀다.


2020년, 다섯 살, 세 살이던 아이들.

 이 아파트 단지에 산지는 5년 되었다. 첫 해 가을엔 둘째 만삭에 세 살짜리 강아지를 걸리다 안다 업다 하고 다니느라 가을이 가을인 줄도 몰랐다. 왜 사람들이 그때 나를 볼 때마다 아이고아이고 하였는지, 이제 내가 그 또래의 애기 엄마들을 보면 알겠다. 아이고아이고, 엄마 힘들다, 엄마 힘들다. 두 번째 해 가을엔 둘째가 막 아장거리는 걸음마 쟁이였고, 첫째는 킥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네 살이어서 두 놈을 한 앵글에 사진 찍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때만 해도 두 아이는 형제이고, 동거인이긴 하지만 딱히 그렇다 할 놀이나 정서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 해에도 빨간 나무는 빨간 물을 들이고 가을을 맞이하고 보냈지만 나는 그 나무를 쳐다볼 여유가 마땅치 않았다.

2021년, 여섯 살, 네 살이던 아이들.


 세 번째 해, 그러니까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이 되던 해부터 가을 나무가 눈에 들어와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무의 색이 변하고 나뭇잎의 숱이 적어지고, 대머리가 되는 과정을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때, 엄마가 감상 젖는 것을 아는지 두 아들들도 촬영에 협조해주었다. 꼭 내 집 마당인 것처럼, 우리 빨간 나무라고 말하며, 빨간 나무가 대머리가 되었다는 말은 당시 24개월도 채 안 된 세 살배기 둘째가 한 말이다. 그렇게 2020년, 2021년, 2022년의 가을, 빨간 나무를 사진에 담았다. 어른들이 올해 단풍은, 올해 단풍은 작년보다 어쩌고 하는 얘기를 흘려 들었었는데, 정말 해마다 단풍색이 다르다. 그 해의 볕, 비, 바람에 따라 그리고 찬란한 가을의 날씨, 갑작스러운 한파의 여부, 가을비가 언제 얼마큼 쏟아지냐에 따라 단풍의 색과, 색이 올라오는 속도와 절정을 이루는 기간이 다 달라지나 보다. 올해는 지난주에 내린 가을비치고 많았던 비바람에 빨간 잎이 다 떨어져 내렸다. 빨간 나무가 크는데 아무런 기여를 한 것이 없는데도 아쉬웠다. 한순간에 빨간 잎을 앗아간 가을 비바람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랴, 자연의 섭리. 내가 관장할 수 없는 영역은 순종하는 수밖에.


2022년, 일곱살, 다섯살이 된 아이들.

 

 이렇게 빨간 나무와의 가을 사진을 3년째 남긴다. 내년엔 초등학생이 되는 큰 녀석이 엄마의 사진 촬영 요구에 순순히 응할까 싶다. 아니면, 초등학생, 유치원생으로 신분이 달라지는 아이들의 스케줄이 달라질 테니 나무 밑에서 매일매일 나란히 놀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내 품, 내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유년기이지만, 곧 엄마 품을 떠나 친구 손을 잡을 아이들이니 두 녀석이 나란히 있는 빨간 나무와의 가을 사진이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 아마 내년부터 힘들어져도 그러려니 해야지.


 나는 세 자매의 막내로 자라 지금까지도 언니들과 어제 수다를 떨고, 오늘 별일 없느냐고 안부를 묻는 일상을 살고 있는데, 형제만 있는 집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딸들보다는 조금 팍팍한 모양이다. 성인이 되어 각자 군대를 가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느라 2- 3년 동안 대면도 못 했다는 집들도 꽤 된다. 가족이 다 모인 적이 몇 년째 없다고도 하고 말이다. 우리 집도 두 형제이니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두 녀석이  평생 좋은 친구처럼 우애 좋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없는 것보다는 나은 형제가 되길. 그것 하나뿐. 이 세상에 우리 형, 내 동생 하나는 있는 것이 무뚝뚝하고 데면데면해도 실오라기 같은 위로가 되길. 그뿐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던 엄마를, 좁지만 둘을 품어주던 유년기 엄마의 품을 기억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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