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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23. 2022

일곱 살의 영어 띄어쓰기

그게 뭐라고.

 일곱 살 아이는 문장 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한국어로, 영어로 문장을 쓴다. 연필을 잡고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것이 기특하다. 한국어는 비문이 나오긴 해도 꽤나 능숙한 작문이 가능하고, 영어는 아직 작문은 못 한다. 엄마와 공부를 하며 문장을 구성하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십분 내외의 엄마표 학습으로 유창한 영어 작문은 아직 어려워서 무리하지 않고 있다.

 엄마 욕심으로는 글씨를 예쁘게 썼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글씨를 예쁘게 써야 하는지 아이를 설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 글씨를 알아보는 수준으로 쓰면 넘어가는 편이다. 글씨는 여러 사람이 함께 지키기로 한 약속이니까 정해진 대로 써야 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보도록 쓰지 않으면 글씨로써 의미가 없으니 예쁘진 않아도 또박 또박은 강조한다. 사실 이 부분은 아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부분이다. 웬일로 삐져나온 글씨를 지우고 예쁘게 고치는 날이 있고, 왼손을 주머니에 꽂아 놓고 오른손으로만 끄적끄적 칸을 채우는 날도 있다. 웬만하면 넘어간다. 나 시시각각 내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는데 아이가 오죽하랴, 충분히 이해한다. 그저 놀다가도 부르면 와서 십분 앉아 있는 것이 용하다.


그런데 띄어쓰기는 조금 얘기가 달라진다. 그날그날의 마음 가짐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익숙지 않아 생기는 실수 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알려줘야 하는데 솔직히 조금 귀찮다. 사실 나도 다는 모른다. 왜 띄어야 하냐고 묻는데, 이것 역시 규칙이기 때문에 정해진 대로 써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틀리다고, 그러나 네가 아직 어리고 배우는 과정이니 봐주는 거라고 나름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글은 아직은 깍두기공책을 사용하기 때문에 띄어쓰기의 감이 있다. 언제 띄는지는 헷갈려도, 한 칸 띄는 것은 안다. 한 칸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기에 그냥 줄 공책이나 줄 없는 공책에도 어설프지만 띄어 쓰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오늘의 글 짓기.이제 부족한 것은 학교가서 배우자꾸나.


 문제는 영어이다. 사실 내가 문제라고 해서 문제이지, 일곱 살짜리 영어 문장 쓰기에 문제라 할 것도 없다. 영어 공책이든, 일반 교재이든 한글 깍두기공책처럼 칸칸이 나누어진 공책이 아니다 보니 한 칸 띄는 것을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 귀여웠다. My 하고 한 칸 띄라고 했더니 여기에 한 칸이 어디 있냐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럼 그냥 조금 띄라고 했더니 그 조금이 기분 따라, 컨디션 따라 천차만별이라 오늘은 큰맘 먹고 영어 줄 공책에 세로줄을 그었다. 15센티 자를 대고 말이다. 아이가 한 글자 크기를 생각하며 그 정도씩 하나하나 줄을 긋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여 이것 역시 계속은 못 할 짓이라 한 페이지만 줄을 긋고 나머지는 복사를 하였다. 확대 복사로 몇 부, 보통 사이즈로 몇 부.


 교재에 직접 쓰는 것보다 쓸 수 있는 칸이 넉넉해서 아이는 좋아한다. 엄마가 한 칸 띄라고 할 때 어느 정도 띄어야 하는지 감이 오니 그것 역시 좋아하고, 자기가 보기에도 훨씬 보기가 좋으니 맘에 드는 모양이다. 그 띄어쓰기가 뭐라고, 한글도 아니고 쪼그리고 앉아 영어 공책에 그 공을 들이나 내가 생각해도 촌극이 따로 없다. 나도 학교 다니면서 국어시간에 띄어쓰기를 배웠는데, 배웠지만 다는 모르는 것이 띄어쓰기이다. 요즘은 손 글씨를 쓸 일이 많지도 않고 띄어쓰기 모르는 것은 정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알아서 고쳐주는 컴퓨터로 많은 작업을 하니 말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컴퓨터로 작업하는 숙제가 나온다고 하니, 중국어를 전공하여 대학교 다닐 때도 손으로 중국어 간체자를 써서 작문 숙제를 제출하였던 나로서는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뀐 것이 실감이 난다. (많이 옛날은 아니다, 20년 전)



 아이들이 잠든 밤, 큰아이의 글씨를 바라본다. 일곱 살의 글씨. 남자아이이고, 요즘 아이이니, 손 글씨 쓸 일이 많이는 없을 것이라 나는 더 글씨 연습을 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손에 힘을 주어 머리가 시키는 대로, 크게, 작게, 진하게, 연하게를 연습하고, 그 와중에 한 칸 띄고, 점찍고를 생각하며 아이의 머리는 발달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도 습관이 되어서 하루에 일정 부분 할애하는 쓰기 시간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림일기를 쓰라고 하면, 오늘 일과나 감상보다는 설명문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의 주제는 뱀과 도마뱀이었다. 요즘은 옆에서 봐주지 않고 엄마가 저녁 설거지하는 동안 혼자 쓰도록 하고 있는데, 작년 같은 주제로 쓴 글 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졌다. 엄마표 공부, 그거 조금 해서 뭐가 되나 싶었는데 아이의 속도만큼 늘었다. 아이의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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