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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01. 2022

풀리지 않는 문제.

과연 정답은?

둘째가 태어난 후, 아이를 키우며 내가 하고 싶은 거 “뭐 해야지.” 하지 않는 것이 모두의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살 첫째와 갓난아기 둘째를 키울 때는 그럴 생각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조금씩 두 아이의 육아가 안정을 찾으며, 읽고 싶은 책이, 보고 싶은 드라마가 생겨났고, 먹고 싶은 간식이 생각났다. 그런데 애들 재우고 이거 봐야지, 이거 해야지 하고 계획하는 순간 잠들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의 대 폭발 후 그런 계획조차 하지 않는, 모두에게 가장 이로운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잘 살았는데, 올해는 애들이 둘 다 유치원에 가고,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자유시간에 대한 욕심이 올 하반기부터 강해졌다. 밀린 책 봐 야지, 새 글도 써야지, 베이킹도 해야지, 밥도, 반찬도 하던 대로 해야지,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도 가끔씩은 정주행 하다 보니, 벌써 12월이다. 내가 뭐가 하고 싶은 욕구를 분출하니, 당연한 수순으로 아이들을 재촉하고, 화를 낸다.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렇게 확보한 내 시간에 내 할 일을 마치면 기분이 이상하다. 이게 맞나. 욕심인가.  

막판 스퍼트, 시험을 망쳐도 여한이 없겠으나, 다른 면으로 여한이 남게 생겼다.


오늘도 그랬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한국사 능력 검정 심화 시험이 내일모레라 모의고사 풀 것이 있었고, 성당에서 장례미사 반주 요청이 들어와 가겠다고 약속을 해 놓은 상태였다. 오후엔 아이들의 공부방 수업이 있으니 수업 준비를 해야 해서 오전에 애들 보내고, 스타벅스에 가서 모의고사를 푼 뒤, 미사를 갔다가 집에 와서 집을 치우고 수업 준비를 해야겠다. 모의고사 해설 풀이는 오후에, 혹은 밤에.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애들이 할 일은 내가 아침 챙겨주고 머리 감고, 옷 갈아입는 동안, 아침 먹고, 옷 갈아입고, 등원 준비를 하는 것이었는데 뭉그적 대다가 시간이 촉박해져 애들을 들들 볶으며 재촉을 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평소엔 내가 등원 준비를 거들어 주는 편이니 이렇게까지 시간이 촉박하진 않은데 오늘은 유독 그랬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지혜와 온유를 주시길 청하는 기도를 했다.


겨울엔 등원 준비에 시간이 더 걸린다. 입어야 할 옷이 많기 때문이다. 애들을 들들 볶으며 버스 타러 뛰어가다 넘어진 둘째를 번쩍 안아 들고 버스에 넣은 뒤, 할 일들을 대충 마치니 정신이 든다. 이게 맞나. 내 계획에 맞추려고 애들을 너무 잡아 끌 듯 몰아세웠다. 하나를 포기할걸.


 내가 아무 계획도 하지 않은 채로 애들만 보면 애들을 들들 볶으며 화내고 싸울 일은 적다. (없다.라고 쓸 수가 없다. 그래도 화내고, 싸우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 욕구도 갖지 않는 로봇이 아니고, 이것 저것 끄떡없이 다 해낼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고, 언제나 오래 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아니하는 사랑이 큰 엄마도 아니다. 그래서 엄마 일 말고, 다른 내 일이 하고 싶은데, 그러면 나 포함 모두가 들들 볶인다.


뭐가 맞을까. 그래도 나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맞을까. 모두의 안녕을 위해 그냥 예전처럼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좋을까. 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화내지 아니함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하원하면 또 사과해야겠다. 아침에 엄마가 너무 몰아쳐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아들들이라 그런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쿨하다. 다행히.  

애들한텐 천사가 아니었던 오늘.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언제나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 감싸주고 믿고 참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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