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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03. 2022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 후기.

잘했어요. 짝짝짝.

 아무도 시키지 않은 한국사 능력 검정 심화 시험을 마치고 왔다. 일단 고사장으로 어느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책걸상이 라떼와는 차원이 다르게 좋아져서 깜짝 놀랐고, 오랜만에 맞는 온풍기 바람이 너무 건조해서 당황스러웠고, 같은 고사장에 있었던 다른 수험생들이 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여서 내 나이를 한 번 더 실감했다.


 한 달 남기고 강의와 교재를 알아보고 준비를 시작했으니 시험 준비는 총 3주 정도 한 것 같다. 모든 것이 처음 배우는 듯 새로웠다. 또 진짜로 처음 배우는 것도 있었다. 나는 국사를 배웠던 세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한국사와 근현대사가 나눠지고, 필수가 아니었다가 필수가 되었다가 하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모양이다. 나는 8.15 광복에서 교과서가 거의 끝나고 그 이후 이념 대립 및 근 현대 파트는 한강의 기적, 문민정부 수립 정도로 시험에 거의 안 나오는 국사교과서로 배웠는데 요즘은 또 달라진 모양이다.


 나는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은 세대는 아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했지만, 6학년 때 초등학생이 되어 졸업은 초등학교에서 했다. 문민정부 시절에 초등학교를, 햇볕정책 시절에 중고등학교, 국민의 정부 시절에 대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반공 느낌 없는 시대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때 받은 국사교육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광복 이후의 이념 대립,  정권의 부정 비리 등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나 보다. 5.16을 배울 때, 교과서에는 군사정변이라고 나왔는데 선생님이 군사 혁명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 선생님께서는 미안해 얘들아, 선생님은 군사 혁명이라고 배워서 입에 그렇게 붙어버렸어. 쿠테타니까 정변이라고 바뀐 거야.라고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래서 그래도 제대로 된 근현대사를 배운 시대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나는 그나마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읽어서 사회주의자, 운동권들의 시각을 조금 알고 있었나 보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연합, 민족 유일당 운동의 전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나 좌익의 정부 수립을 위한 움직임 같은 것들은 요즘에나 배운다고 하니, 나도 어느덧 옛날 교육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 19개 맞았는데, 나중엔 44개 맞았다. 같은 모의고사.

 오랜만에 한 한국사 공부는 재미있었다. 이리저리 뒤엉켜 있던 흐름들이 한 줄로 정리되는 느낌이 제일 좋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배운 근현대사도 흥미로웠다. 가장 외울 것이 많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 특히 독립군, 독립부대의 이름은 너무 비슷한 것들이 많아 힘들었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하며 외웠다. 진짜 안 외워졌는데 결국엔 외웠다. 45년 광복 이후부터 12.12 사태 전까지는 개헌과의 싸움이었다 해도 무방하다. 외울 것이 너무 많았다. 대통령 한 번 더 해 먹겠다고 헌법을 계속 바꿔버려, 몇 차 개헌이 이어지는 선거의 결과, 이 개현이 일어난 배경? 모두 나쁜 놈들이 다 해 처먹고 독재하려는 거!!이지만 선다형의 문장은 그렇게 수준이 낮지 않으니, 그것 역시 외워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외우는 게 힘들었어도 자랑스러운 역사였는데 개헌의 역사는 솔직히 짜증이 났다.



 시험 문제를 풀며, 역시 문해력! 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요점 정리를 줄줄 외워도 문제에 주어지는 사료를 해석하지 못하고 키워드를 잡아내지 못하면 문제를 풀 수 없다. 강의 영상이나 영상의 댓글을 보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세부 사항을 외우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오래 걸릴 작업이 역시 문해력 키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은 역시 독서인가.



 처음엔 1급이 목표였다가, 공부가 만만치 않아 자신이 없어졌는데 80점 고비를 한 번 넘고 나서는 점수가 쭉쭉 올라 내심 100점을 바랐다. 결과는 가채점 결과 92점으로 1급 합격 예정이다. 3주간, 틈틈이 준비한 것 치고는 좋은 점수이다. 내용을 달달 외우는 머리는 물론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큰 흐름을 잡고 문제의 함정을 피해 가는 눈은 아직 남아있었다. 나를 칭찬한다. 신통방통.

 

 좋은 강의를 무료로 풀어 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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